여행기

<영국여행 11일차 > 벨파스트의 눈물

정인숙 2024. 10. 26. 17:57

2024. 9. 29. 일요일
타이타닉 박물관 ㅡ 점심 ㅡ 샹킬 과 폴스 거리(벽화와 분쟁 지역)

9시에 집을 나섰다. 공원과 산책로가 잘 조성된 바닷가 부두를 끼고 걷는다.  타이타닉 박물관으로 가는 길이다.  멀리 타이타닉 박물관이 보인다. 

박물관에 들어서니 풍성한 사진자료와 물건들로 18, 19세기 벨파스트의 황금 시절을 보여준다.  산업의 중심지로 맹활약하던 벨파스트.  관람코스를 따라가니 배의 건조과정에 빠져들어 간다. 

5층 이상 높이의 배 위에서부터 모노레일을 타고 내려오면 음향을 넣은 건조과정을 스크린과 조형물로 익히게 된다. 그런 후,  당시 세계에서 제일 큰 조선소인 H&W사가 만든 타이타닉으로 안내한다.

타이타닉의 전체 모형과 구조, 시설물을 조성해 놓고.. 4D 안경을 쓰고 직접 승선한 것처럼 체험시키고... 등급별 선실도 조성해 놓았다.  
 
 
 

모노레일 승선. 관람객들은 이 모노레일을 타고 배 건조과정을 볼 수 있다.

타이타닉호는 벨파스트에서 건조되어 1912년 4월 10일 영국의 남쪽 사우스햄프턴에서 출항한다.(영화에서 출항 장면이 사우스햄프톤) 프랑스의 셰르부르와 아일랜드의 퀸즈타운에 기항한 후,  대서양을 횡단하여 4월 17일 뉴욕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4월 15일 높이 20미터인(9/10는 바닷물속에 잠겨 있다) 빙산과 충돌하여 침몰, 총 승선 인원 2,225명 중 구조된 사람은 713명... 1512명이 사망하였다.

영화에서 보듯이 승객 대다수는 영국과 스칸디나 반도 등에서 새로운 삶을 찾아 미국으로 가는 이민자들. 구명정은 단지 20척으로 승선인원의 반만 태울 수 있었고 구명정에 타지 못해 바다에 뛰어든 수많은 사람들은 저체온증으로 사망했다. 배에 남은 사람들도 천여 명이었다. 
 
전시실에는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과정과 무전교신 내용을 빼곡히 사진을 덧붙여 설명해 놓았다.  중앙 홀에는 사망자의 사진과 가족사항, 유품들을 차례로 전시해 놓아 몇 개를 읽다 가슴이 먹먹해져서 읽기가 힘들어졌다. 

관람객이 많은데도 다들 숙연해져서  침묵만 흐르는  슬픔과 애도의 방. 벽면에는 선실별, 성별, 세대별 생존자의 비율을 전광판으로 선명하게 보여준다.

한 층을 내려오니 생존자의 육성 인터뷰와 서면 지를 빼곡히 정리해 놓았다. 이 건물 전체가 그들을 애도하는 곳이구나 깨닫는다. 
 
102년 후, 날짜도 비슷한 2014년 4월 16일,  세월호에서 일어난 참사가 저절로 떠오른다. 총 사망자 304명. 한창 꿈 많고 웃음 많은 청소년들이 우리 눈앞에서 바닷속으로 수장되다시피 빠져 들어갔다.  TV에선 하루종일 생중계 해대고... 믿기지 않는 현실이 눈앞에 일어났던 것이다.

그런데, 사고 원인도 오리무중에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제대로 된 추모비도 추모공간도 마련 못한 채  시간만 보냈다.  그에 비해 이 박물관은 철저히 분석하고 깊이 애도하면서 자신들의 오만함을 반성한다.  

생존자의 구명조끼

일등선은 생존율이 63%가 넘고
이등실은 41%, 3등실은 25%...

월리스 하틀리와 바이올린.
당시 33살 악단장 월리스는 단원들과 타이타닉호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승객들의 마음을 안정시켰다. 무려 3시간을..

월리스의 바이올린은 약혼자인 마리아가 약혼기념으로 선물한 것. 월리스는 어떠한 순간에도 바이올린을 간직하겠다고 약속.
그 약속대로 몸에 바이올린을 묶은 채로 발견되었다.

타이타닉 건조 회사인  H&W

타이타닉 박물관을 나와서 울적해진 마음을 추스르려면 점심을 잘 먹어야 했다. 근처 레스토랑에 갔으나,  느끼함만 잔뜩.. 식사를 그럭저럭 마치고 버스를 탔다. 시내로 나와 벽화거리로 찾아 나섰다.

샨킬거리는 영국계 개신교도들 마을이고 폴스거리는 아일랜드계 카톨릭교를 믿는 사람들이 주로 거주하였다. 시내에서 외곽으로 나가 샨킬거리로 들어섰다.  택시 정치투어를 신청할까 하다가 직접 찾아가 보자고 나선 길.  한 군데 벽화를 둘러보고 또 다른 곳은 찾기가 힘들다.

구글을 검색하고 사람들에게 묻고 하여 가까스로 양쪽마을의 접전지였던,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던 곳까지 왔다.  
영화'벨파스트'의 버디가 살던 마을은 종교에 상관없이 어우러져 살다가 바리케이드를 친다.  버디는 어디쯤에 나타날까.  마냥 친하게 지내던 이웃이 생명을 위협하는 존재로 변하던 시절... 살기 위해 벨파스트를 떠난 사람들은 지금쯤 다시 돌아왔을까.  이제는 안전해진 고향을  돌아보며 지난날 자신의  흔적을 찾아보겠지. 

 

 

바리케이드.  양쪽 마을 입구에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다.  과거를 잊지 않으려는 듯 전시물처럼 설치해 놨다.

벽화를 이용한 간판. 내내 심각하다가  마지막 그림을 보고 웃었다.
 
저녁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벨파스트의 슬픔을 대하고 온 날인 데다 날씨마저 스산해져  마음이 울적해진다. 음악을 들으며 가방을 챙기다 밖을 내다본다.

저 교회에서는  개신교도이든 카톨릭이든 이슬람이든 불교이든  서로 다름을  존중하여 평화롭게 사는 세상을 위해 기도드리리라 믿고 싶다. 영화 '벨파스트'에서 버디의 아버지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