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6, 토
페레우스 항구 - 페레우스 고고학 박물관 - 점심 - 지하철 박물관 - 비잔티움 박물관 - 리케이온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젖혀보니 아직도 컴컴하다. 상쾌한 공기에 정신이 번쩍든다. 아침 뷔페는 진수성찬으로 차려져있다. 지난 이탈리아 여행과 비교하니 별안간 급이 확 올라간 느낌이다. 빵으로 배를 채우면 곤란하니 되도록이면 채소와 과일 위주로 많이 먹으면서도 단백질은 꼭 챙기고 있다. 아프면 안되니까. 커피도 직접 서빙해주니 금상첨화...
페레우스 지역으로 버스가 달린다. 태양이 어제 못비춰주어 아쉬었다는 듯이 활짝 문을 열었다. 토양과 날씨에 따라 역사가 결정지어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온통 바위와 돌투성이에 태양이 이리 내리 쬐이는 땅이니 올리브와 포도가 잘 자란다. 아테네인들은 그외 다른 작물을 구하기 위해 저 바다로 힘차게 나아갔다.
도시 전체가 건물들이 낮으니 참 안정된 기분이다. 이곳에서는 건물에 압도당하여 쭈그러드는 느낌이 없이 어깨를 펴고 살 수 있을거 같다. 더우기 시내 곳곳에서 발굴하느라 파헤쳐놓은 곳이 한 두군데가 아니다. 역사를 품고 사는 정겨운 모습이다.
피레우스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조르바가 춤을 추던 춤곡이 흐른다. "단스?" 하며 핑거스냅에 맞추어 춤을 추는 조르바와 두목. 그리스의 바다는 그 곡과 얼마나 잘 어울렸던가... 그리스에 관한 책 - 그리스 신화, 일리아드는 대충, 오딧세이아, 그리스인 이야기, 그리스 문화에 관한 책 등-을 읽고 마지막으로 '희랍인 조르바'를 읽었다. 벌써 몇십 년이 흐른 책이건만, 묘사 방식이 뛰어난 걸 새삼 느끼며 ... 예전보다 그리스 지리나 역사에 관해 좀 알고난 뒤라 훨씬 더 흥미롭게 읽어나갔다.
그런데, 앤소니 퀸은 주인공 조르바역을 하기엔 몸집이 커서 아쉽다. 춤곡에 따라 함께 춤을 추자고 가이드가 부추기지만, 몸을 움직이지않는 나. 조르바가 보면 얼마나 한심할까 하니 웃음이 난다.
니코스가잔차키스가 묻혀있는 크레타 섬에 꼭 가보고 싶었는데 이번 여행에서 못가서 아쉽다. 일찌감치 자유를 온몸으로 느끼고 실천하고 다닌 작가.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그의 묘비명이 잊혀지지 않는다.
동양 불교로 치면 깨달은 사람이구나....
조르바가 속삭인다. '날 따라 춤을 춰봐~'
이 나라는 국가도 자유를 칭송하는 노래란다.
이 토양과 이 햇살과 이 바다에 이 나라에 걸맞는 작가, 니코스카잔차키스를 머리속에 그려본다.
축구에 열정적인 나라답게 승리한 팀과 선수들을 기념하는 상징물이 공원에 세워져 있다.
피레우스 성벽. 철조망 너머에 남아있다.
페리클레스가 페르시아 전쟁 후에 여기에서 아테네까지 성벽으로 둘러싼 길을 조성했다. 폭이 100미터 정도에 12킬로가 넘는 길. 당시 파르타가 맹렬히 반대했지만, 페리클레스가 협상한다고 스파르타에 가있는 동안 빨리 공사를 끝내라는 계책까지 써가며 완공했다. 탄탄한 난공불락의 아테네를 만들었지만, 결국 아테네는 이 길로 페스트까지 몰고와서 페리클레스가 죽고, 많은 시민들이 죽었다.
27년 간을 끈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패배하는 조짐이 이때부터 시작했건만. 페리클레스 사후에 지도자의 리더십 부재로 혼선을 겪는데다 시민들 의견이 분분하여 난파선이 좌초하 듯, 스파르타에게 지고 만다.
그런데, 그리스 역사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자꾸 아테네 편을 드는지 이상했다. 아테네와 페르시아가 싸울 때도, 스파르타와 싸울 때도 내 마음은 자꾸 아테네를 응원한다. 페르시아가 전쟁에 패배한 것을 시초로 서양이 동양을 깔보기 시작했음에도. 객관화를 유지해야함에도 숨가쁘게 돌아가는 전쟁사를 읽으면서 아테네로 기우는 마음을 어쩔 수가 없었다.
이 사자상도 베네치아한테 빼앗겨 모조품이라네. 진품은 베네치아에 있다. 언제쯤 제자리에 올 수 있으려나.
저 멀리 테미스테클레스의 묘지가 있다는데.... 이상하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후에 페르시아로 넘어가서 거기서 죽지 않았나? 이 사람들도 분명 가묘인걸 알면서도 해군력을 키워 살라미스 해전에서 멋지게 페르시아를 물리친 테미스토클레스를 기리는 마음으로 묘역을 가꾸는가... 관광객에게 스토리를 안겨주는 효과까지 얻으면서.
항구 주변을 거닐면서 바닷바람을 맞는다. 자유여행을 하면 가고픈 곳을 맘대로 쏘다니느라 다리가 아픈데 비해 관광버스로 목적지에 가서 내리 다시 타고 하다보니 시원한 공기가 그립다. 사람들도 차창이 아닌 직접 대하고 싶고, 거리도 집도 유리창 없이 대하고픈 마음. 버스 차창이 유리벽이구나 하고 깨닫는다.
이번에는 피레우스 성벽이 있던 길을 따라 좀 걸었다. 한 시간 정도 걸으면 좋으련만, 한 삼십분 걸으니 끝. 박물관 클로징 시간 때문에 일찍 서둘러야 한다니.
항구에 정박해 있는 페리선을 한국에서 건조했단다. 지금은 그리스를 제치고 세계 1위 조선업을 달리고 있는 한국이 새삼 자랑스럽다. 외국에 나오면 국력에 따라 사람들 시선이나 대음이 달라진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피레우스 성벽은 많이 소실되고 조금씩 남아있다. 그나마 남아있는 것도 철조망에 가려서 잘 보이지가 않는다. 2,500년 전 흔적을 저리도 소홀히 대하다니 참 안타깝다. 한국같으면 저렇게 방치하지 않을텐데...
관람하기 좋게 전망대라도 만들어 누가 지키게 하면서 싸게 입장료를 받으면 유적지 보존에 일자리 창출에 관람객도 좋고... 다들 한마디 하시네.
점심으로 체코음식점에서 슈아첼을 먹었다. 대형 돈까스... 한국에서도 극히 싫어하는 음식을 그리스에서 먹어야한다니. 소화가 잘 안될거 같아 조금 맛만 보고 샐러드로 배를 채웠다.
기생충 영화 포스터. 이젠 문화에서도 한국이 앞서간다. 길가 어느 건물 입구에 붙어있다. 아마도 극장인가보다.
파라사이트를 저렇게 쓰는구나. 그리스 알파벳 익히기. 그리스어로 읽으면 파라시타 이겠네.
페레우스 고고학 박물관에 들어서다. 사자상이 우리를 맞아준다.
피레우스 성벽을 나타낸 지도.
직선인줄로 상상을 했는데 바닷가를 따라 가는 길도 꽤 있다.
어린 아이들 장난감으로 씌였던 작은 조각상들
아르테미스 여신상. 화살통을 메고 다녔으니.
아테네 여신상. 지혜와 용맹, 게다가 아름다움까지 ... 내게는 단연 최고의 여신상이다.
이천오백년 전에 만든 섬세한 유물들을 보고 뒷마당으로 나오니 야외까지 유물이 넘쳐난다. 우리의 고조선시대에 이런 찬란한 문명을 꽃피운 계기가 무엇일지 다시 궁금해진다.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문명이 발달한다는데...
박물관 해설사분과.
오전 시간이 지나면서 하늘이 활짝 열리는 듯 쾌청하고 따뜻해진다. 옷을 겹겹이 껴입고 나섰더니 땀이 나서 하나씩 하나씩 슬슬 벗어제친다.
피레우스 항구를 떠나 다시 시내로 들어왔다. 가이드가 지하철박물관이 볼만하다고 안내한다.
2004년 올림픽을 대비하면서 지하철을 만들 때 나온 발굴지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땅만 파면 유물이 나와서 지하철 공사에 상당히 애를 먹었다지.
학생들 작품이 한쪽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과거와 현대를 아우르는 공간, 거기에 시민들과 아이들까지 껴안고 살아가는 아테네시를 느낄 수 있다.
국회의사당 앞. 여기도 일정한 시간에 근위병 교대식을 한다.
교대식보다 더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킬로스 두상이 있는 거리. 비슷하게 생긴것 같은데....
에우리피데스
소포클레스
아이스클레스
비잔티움 박물관.
베네치아에서 많이도 보았던 그림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쏟아져 나오던 작품들을 다시 만난다.
그때 유심히 봐서 그런가 이번에는 생소하지 않고 이해가 빨리 된다. 다시 보니 이방인이 아니라 정든 사람을 보는 느낌이다.
그리스의 세력이 점점 줄어들어 영토가 작아진 지도.
그리스란 나라 명칭은 원래 없었다. 같은 민족으로 같은 언어를 쓰던 사람들을 통틀어 이들이 부르던 명칭은 '헬레네스'. 국명은 '헬라스'.
한 나라가 아니라 높은 산과 강으로 막힌 지형탓에 각 도시국가로 나뉘어 통치했다.
그러니 내내 전쟁이 끊일 수 없었다. 각 도시국가들은 휴전 기간을 만들어 그동안에 홀림픽 경기에 몰두했다.
수도사들이 그린다는 이콘을 주의깊게 보았다. 수도원에서 하는 평생 과업. 나무를 잘라 말리고 그리는...
앞과 뒷면 모두에 그림이 그려진 이콘
건물의 그림을 붙여놓고 발굴한 유물조각을 그 위치에 놓아 이해를 돕는다.
쌍둥이 석관. 쌍둥이 석관이 왜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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