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이탈리아 여행 16일) 폼페이 유적지

정인숙 2019. 10. 4. 04:12

나폴리 - 폼페이 - 쏘렌토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한다. 신석기시대부터 오스칸족이 자리잡고 살다가, BC8세기에는 그리스에 속하다가, BC5세기쯤에는 삼니움족이 차지하다가, 로마 동맹시가 되었다가, BC89년 완전히 로마로 편입되어 로마의 휴양지로 이름을 날리던 폼페이시. 인구 최대 5만 명까지 추정되던 이 도시에 대혼란이 일어났다. 이튿날 화산 폭발이 멈추었고 도시는 아비규환인채로 그대로 묻혀버렸다. 화산재의 높이가 무려 6, 7미터라니 살아나올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었을까.



아침에 다행히 비가 그쳤다. 라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간단히 배낭을 꾸려 쏘렌토로 간다. 가기 전에 폼페이에 들르기로. 10시 11분 기차를 타고 35분 후에 도착하였다. 기차안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린다.  비가 다시 쏟아진다.  배낭을 역에 보관시키고 영어 투어팀에 합류하여 폼페이 유적지에 들어간다. 생각보다 상당히 방벽이 높다. 7미터 가량 뒤덮혀있었다는데 이층 삼층 건물들은 지붕은 날라간 채로 위를 내밀고 있었을 듯.



어제 고고학박물관에서 옛도시 시뮬레이션을 본 덕택에 도시 이해가 잘된다.  이곳은 화산재에 묻혀있어서  고대생활의 모든 면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이 되었다니 불행중 다행인가.



도시 외곽부터 들어가서 극장- 원형경기장- 에 먼저 들어갔다.  비가 그칠거 같지 않더니 점차 줄어들더니 원형경기장에 들어섰을 때는 완전히 멈추었다.  이런 행운이...









반원형의 원형경기장을 둘러보다. 로마의 원형경기장은 소리가 잘 전달되도록 설계되었다. 가이드가 그 성능을 증명하려고 노래하실 분을 찾는다. 우리 일행 둘이 나서서 아리랑을 멋지게 불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했다. 위로 울려퍼지는 소리가 청아하다. 이곳에서는 주로 연극을 상영했을 듯하다. 고대 그리스 비극을 주로 상영했으리라...



돌로 된 좌석마다 번호가 새겨져있다. 저기 좋은 대리석으로 만든 자리에는 상류층이 앉았으리라 상상하며 그날의 떠들석함을 떠올린다.




벽을 어떻게 쌓았나도 살펴보고.. 상가 거리로 나아가니 화덕이 있는 빵집이 있고 식품 가게등 흔적이 보인다. 당시 상당히 번성한 도시였던만큼 가게들 규모도 상당하다.



도로를 유심히 살펴보니 디딤돌 사이가 움푹 파였다. 우마차가 다니면서 닳고 닳았다고. 마차 넓이를 정확히 계산하여 지나가게끔 만들었다.

로마군은 공병기술이 우수하여 하룻밤 숙영지를  구축할 때도 정확하고 튼튼하게 뚝딱 지어놓았다니 이쯤이야 기본이겠지.





이천 년이 넘는 세월에도 하수도는 여전하다.




누구의 집일까. 우물이 있는 마당이 보인다.  이천 년 전, 저 우물에서 물을 길어나르는 모습을 떠올리니 삶이 참으로 덧없다싶다.








미처 빠져나가지 못하고 웅크린채 숨을 거둔 사람들. 거의 이천여 명이 그자리에서 파묻혔다고 한다. 폼페이 유적은 16세기말에 터널을 파다가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1748년에야 처음으로 발굴을 시작하였다.



이탈리아의 고고학자 주세페 피오렐리는 발굴을 하면서 여기저기 보이는 구멍에 시멘트를 부었더니 사람 신체 주형이 나왔다고. 이후 주형기법을 개발하여 문구, 가구등 형태를 추정하였다. 뜨거운 화산재에 그대로 녹아 구멍이 생겼다니 ... 저 사람들은 얼마나 참담하고 처잠했을 지 가슴이 아파 가까이 가기가 힘들었다. 고고학 박물관에서도 두려움에 떠는 사람들 주형을 보았는데 이 방식으로 만들어내었구나...





고고학 박물관에서 본 수없이 많은 벽화의 흔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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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식 목욕탕.  우리네 구들장과 비슷하게 벽돌을 쌓아놓고 그 사이로 열기가 지나도록 지었다.











골목마다 배수가 잘 되도록 양끝에는 움푹 패였다.





매춘업을 했을거라 여겨지는 작은 방들.

각종 성행위 그림이 그려진 벽화를 보고 선택했을까.

고고학 박물관에 선명한 그림들이 많고 여기는 거의 희미하게 남아있다.









골목 길을 거닐며 이집 저집 들여다본다.  조금 큰 집에는 바닥이 모자이크화로 장식되었다. 열주에 둘러싸인 큰 안뜰이 있는 집도 있다. 작은 집들은 큰 집들 뒤편에 늘어서있고 간혹 이층집인지 계단도 남아있다. 2천 년도 넘는 그 옛날의 모습에서 사람들만 사라진 거 같다. 앞으로 이천 년이 지나면 우리 생활모습이 이렇게 남아 있을런지.



포로로마노에서 시간에 쫒겨 충분히 보지 못해 아쉬었는데, 가슴아픈 장소이어도 고대 로마사람들이 살던 곳을 거닐며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상상하니 다소 아쉬움이 가신다.  아직도 1/4정도가 남아있다니 얼마나 넓은 장소가 이천년 넘게 그대로 묻혀서 잠자고 있는건지...



세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아쉬움에 유적지내 노천카페에서 점심을 먹기로 했다. 바로 정면에 베수비오산이 보인다. 모든 것을 집어삼킨 화산 위로 구름이 드리워져 꼭 연기가 피워오르는 듯 하다. 노천카페에서 유적지를 다시 내려다보며 비온 뒤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맛있는 음식까지 기대하기란 무리였나보다. 맛없는 피자로 간신히 요기만 하고 기차역으로 갔다.


 






아테네 신전, 아폴론 신전, 비너스 신전 등에 둘러싸인 포룸.










앉은 채로, 웅크린 채로, 둘이 꼭 끌어 안고서, 어린 아이가 누워있는 채로 .... 아무런 준비없이 그대로 당한 사람들.

 





들어가는 입구는 모자이크화로 타일을 깐 안뜰이 넓은 집.









베수비오 산




쏘렌토에 도착하니 4시가 넘었다. 기차역 뒤편으로 걸어간다. 여기는 호텔이 멀어서 게스트하우스를 잡았다. 사진이 멋져서 제일 좋은 숙소일거라고 기대하였지만... 그래도 교통 편리하고 전망좋고 방이 널찍하니 만족.  발코니로 나가면 테이블이 놓여있다.  기차역 플랫홈에 곧 기차가 도착하려는지 사람들이 많이 나와있다.



바다 건너 베수비오산이 보인다. 화산이 터졌을 때 여기 사람들도 얼마나 놀랬을까. 바다 건너 여기까지 용암이 흐르고 화산재가 날라왔을거 같다. 쏘렌토 바닷가로 나갔다. 내일 아말피로 갈 티켓을 사두고 해가 지는 바다를 바라본다. 오른편으로 베스비오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옆 벤치에는 러시아에서 왔다는 아줌마들이 레몬첼리에, 바다에, 이탈리아 음악에 취해서 무엇보다 좋은 친구들과 여행을 와서 떠들썩하다. 리몬첼리도 한 잔 얻어마시고... 폼페이에 다녀와 끔찍했던 기분이 이분들 덕택에 환해진다. 밝은 기운이 옮겨온거 같다. 갑자기 사위가 어두워지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저녁식사를 잔뜩 사들고 와서 발코니에 나앉아 불빛이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맛있게 먹고 즐겁게 떠들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돌아오라 쏘렌토로~ 드디어 쏘렌토에 왔구나를 실감하며 편안하게 잠자리에 눕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