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30일, 월요일
로마 테르미니역 - 아씨시역 - 키아라 성당 - 로카 마조레 - 점심 - 산 루피노 성당 - 성프란치스코 성당 - 아씨시역 - 로마
아씨시행 기차가 7시 58분 출발이다. 이른 아침에 한식으로 식사를 마쳤다. 갖가지 한식 반찬이 입맛을 돋구워 밥을 든든히 먹었다. 따끈한 국이 있으면 금상첨화이련만...
테르미니역에서 전광판에 게이트가 뜨기를 기다려 서둘러 간다. 제일 먼 게이트라 걸음이 빨라진다. 기차에 올라타보니 이미 좌석에 앉은 사람들이 상당하다. 이상하다... 이 사람들은 어떻게 벌써 자리에 앉았을까. 우리는 게이트가 알림으로 뜨자마자 움직였어도 간신히 도착했는데...10시 7분에 아씨시 역에 도착하였다. 버스를 타고 앉아보니 옆에 한국인 여성이다. 젊은 여성이 열흘 휴가받아 로마에서 부터 밀라노까지 여행을 한단다. 혼자 여행에 응원을 듬뿍해주고.
위부터 내려올 셈으로 키아라성당 입구에서 하차하였다. 고요하고 아름다운 거리 모습에 감탄하는 찰나에 웬 할아버지가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있다고 이끄신다. 들어가보니 옛생활물품을 모아놨다. 만물상이랄까. 재미있게 구경하고 나오려니 기부금함을 가리키며 돈을 넣으란다. 다른 할아버지는 나가지 못하도록 입구를 막기까지... 이런~~.
할아버지들의 해프닝을 금방 잊을만큼 움브리야 평원이 저 아래에 넓게 펼쳐져있다. 키아라 성당에 가기 전,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셨다. 공기가 좋아서 그런가 커피가 아주 맛있다. 지난 봄부터 커피가 몸에 받지 않는 듯하여 마시지 않았는데 여기에 오니 매일 커피를 마셔야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로마에서는 로마식인지..
골목길을 돌아 키아라 성당에 들어선다. 키아라수녀(클라라 1194 - )는 부자로 태어났으나, 프란체스코 성인의 설교를 듣고 가난한 삶을 살면서 병든 사람들을 간호하고, 가난하고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을 돕는 등 기도생활을 실천하며 살았다. 후에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가난한 클라라회(작은 자매회)'를 조성하여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클라라 수녀의 삶을 지향해서인지 성당 안이 소박하며 경건하다. 많은 사람들이 움직임만 있을뿐 조용히 살펴보고 기도한다. 지하에 내려가니 클라라 수녀가 입던 수녀복이 해지고 덧댄 낡은 모습으로 사람들을 맞는다. 그 앞쪽 무덤에는 기도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있고. 옷을 보니 숙연해진다. 이니샘은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올린다. 이 많은 사람들을 감화시키는 삶. 그 분의 뜻이 행동으로 길이 남아서겠지.
성당을 나와 골목을 걷다가 오르막으로 오른다. 아씨시는 해발 420여M 고원에 자리잡고 있다. 프란시스코 성인과 클라라 수녀의 고향인 아씨시는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지닌 순례지이다. 꼭대기에는 로카 마조레가 튼튼하게 지키고 있다. 예전에 요새였던 곳. 아씨시와 움브리아 평원을 내려다보니 기분이 상괘해진다.
산에서 내려오다가 골목 계단 옆에 레스토랑으로 들어갔다. 안에 들어가니 경치도 아름답고 정원도 예쁘게 가꿔놓았다. 피자와 파스타를 맛있게 먹고 다시 계단을 내려왔다. 이젠 성프란치스코 성당으로 가야지. 꼭꼭 감춰 아껴두었다가 나중에 찾아보는 기분으로 설레인다.
코뮤네 광장을 지나 골목 어귀에 들어서자 프란체스코 성당(1253년 완성)의 종탑과 지붕이 보인다. 이천 친구들이 극구 추천하며 꼭 가보라고 한 곳. 아씨시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꿈꿔본 곳. 성당에 들어섰다. 측랑이 없는 네이브 위쪽 벽에 파란 색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바로 조토의 그림이 교회 가득차 있다.
성 프란치스꼬(1182 - 1226)는 부유층 자제로 태어나 부유한 삷을 버리고 가난하고 청빈한 삶을 살며 당시 교회들의 부패와 영적 쇄신을 위해 설교하고 다녔다고 한다. 고통과 희생의 헌신적인 삶을 살면서 빈민들과 함께하고 평화를 정착시키려 이슬람 지역인 이집트에도 다녀오기도 했다. 추종자들과 '작은 형제단'을 만들어 사랑과 헌신, 봉사하는 삶을 모토로 지금까지 이어져온다.
조토의 그림은 프란치스코의 생애를 알려주고 있다. 파란 색을 바탕으로 인물들이 생생하게 이야기를 전한다. 조토 이전에는 금빛을 바탕으로 평면적으로 그렸다. 조토가 그리면서 그림에 입체감도 드러나고 인물들이 살아났다. 조토가 르네상스의 아버지인게 그림을 통해 확실히 드러난다. 성인이 설교를 하니 새들이 귀를 쫑긋하고 경청한다. 터빈을 쓴 술탄과 이슬람 사람들 앞에서 설교하고 그들이 귀하게 예우하는 그림도 볼 수 있다.
파란색을 한동안 올려보다가 앱스 쪽 빈의자에 앉아 전체적으로 바라보았다. 가만히 있으니 평안과 성스러움이 온몸을 감싸는 듯 하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자발적으로 가난하게 살면서 빈민들과 함께 생활하기는 어려운 일이거늘 그런 헌신적인 삶을 어떻게 살았을까. 지하에 내려가니 온통 파란색 그림이다. 조토군단이 예수의 일생을 그렸다. 프란치스꼬 성인의 무덤 앞에 다가갔다. 저절로 숙연해져서 신자들 방식으로 기도를 올려본다.
문득, 평화의 기도문이 스쳐간다. 40여년 전, 화양동 성당 뒷편 교실에서 밤마다 울려퍼지던 그 기도문이 바로 프란치스꼬 기도문이었구나.
어려운 시절, 어설픈 교사들과 일하느라 지친 학생들이 공부가 끝나면 읊던 기도문이 프란치스꼬 성인이 지어 기도하였다니. 실천하기 어려워도 함께 읊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던 기도문을 되뇌어본다.
주여,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운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 사랑하게 해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신을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벌써 5시가 넘어간다. 기차가 6시 27분에 출발하니 올리브나무들이 펼쳐진 평원을 가로질러 걸어가기로 했다. 언덕 아래를 내려와 걸어가는 길. 온통 올리브나무다. 그런데 승용차들이 이 길로 끝없이 지나가니 걷기가 편치않다. 30여 분을 걸어도 마을이 안보인다. 농가 안쪽에서 전지 작업을 하는 부부에게 '스타지오네?' 를 물어 길을 확인하고는 다시 걷는다. 숨가쁘게 걸어 역에 도착하니 6시 10분. 물을 마시며 잠시 쉬고는 기차에 올라탔다. 까무룩히 잠에 빠지다가 로마에 도착. 다시 분주한 도시에 오니 긴장감에 움추러든다.
혼자라면 가지 못했을 아씨시에 동료들의 도움으로 잘 다녀왔다. 그곳의 평화로움과 성스러움을 가득 안고서 잠자리에 들다.
로카 마조레
성 프란치스코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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