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노인들

정인숙 2019. 5. 15. 21:10

 

Dedicated to all the old people of today

....and of tomorrow.

 

 

'이 영화를 오늘날 모든 노인에게 바친다'로 끝나는줄 지레 짐작했다. 아뿔싸! 내일의 노인이 뒤이어 나오네... 가슴이 '쿵~!' 내려앉는다. 그전에는 머리로만 막연히 느끼던 당연한 섭리를 이제 육십이 넘어가니 '내 앞에 닥쳤구나' 실감한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걸.

 

전직 은행지점장이던 에밀리아는 치매 증상이 나날이 심해져간다. 아들은 더이상 참을 수가 없다며 요양시설에 맡긴다. 아들가족도 삶을 살고 누릴 권리가 있으니 그 누구탓도 아니다. 수영장까지 갖춘 요양원에서의 생활이 애니메이션으로 그려진다. 섬세한 그림이 살아 움직여 끌어당긴다.

 

에밀리아는 룸메이트 미겔을 따라 다니며 시설투어를 한다. 그는 수영장을 보면서 매우 기뻐하지만, 미겔은 보여주기위한 시설이라고 냉소한다. 미겔은 요양원내에서 적절하게 돈을 갈취하여 차곡차곡 모은다. 그는 혼자 살기 힘들어 자발적으로 입소한 케이스인 듯.

 

에밀리아는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지갑을 잃고 또 다른 날엔 시계를 잃는다. 미겔이 훔쳐갔다고 믿고 둘이 한바탕 싸움을 벌인다. 내가 보기에도 분명히 미겔이 가져갔을거 같은데.. 아니라고 강변하는 미겔.

 

얼마전 상영했던 TV드라마 '눈이 부시네'에서 치매를 앓고 있는 주인공 혜자의 시선에서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거다. 에밀리아는 환자다. 잘 집중해서 따라가야지...

 

하루종일 아들에게 전화한다고 헤메고 다니는 할머니, 남들이 말하는걸 따라 말하며 돌아다니는 전직 방송국 MC 할아버지, 쨈이건 버터건 무조건 주워모으는 할머니, 치매걸린 남편을 수발하고자 같이 들어온 할머니...

 

인종도 나라도 다르건만 요양원 생활도 치매증세도 똑같다. 한국에서나 스페인에서나 죽어야 나갈 수 있다는 요양원.

 

드디어 미겔이 주동이 되어 세 사람이 탈출하였지만... 자유는 잠시 ..

미겔이 전재산을 털어 구한 오픈카를 에밀리아가 운전하여 어딘가로 달린다. 그것도 한밤중에.

정신이 없는 에밀리아가 운전을 제대로 할까 했는데 아니나다를까 그만 도로 끝에다 차를 처박고만다.

 

이 사고로 다들 부상을 입고 에밀리아는 상태가 안좋아져 윗층 집중치료실로 이감된다. 혼자 지내게된 미겔은 상심하여 모아둔 약을 털어놓고 죽으려다가 약병을 놓친다. 미겔이 에밀리아 침대 밑에 들어가보니 양말 속에 시계와 지갑을 숨겨서 스프링에 매달아놨다. 이런~! 미겔이 사기꾼이 아니었구나.

 

미겔도 에밀리아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의지했었나보다. 그는 치매중환자들만 거주하는 윗층에 올라가 에밀리아와 다른 환자를 돌보며 다시 웃음을 찾는다. 노노케어와 반려견케어로 서로 의지하는 주인공들을 보면서 그리 멀지않은 장래, 바로 나에게 닥쳐올 일이다싶으니 가슴이 무거워진다.

이제는 요양원이 삶에서 필수 시설이 되어버렸다. 친정 어머니, 시어머니가 요양원에서 생을 마치셨으니 꽤나 낯익은 풍경들이다. 한때 진저리치던 노인환자 특유의 냄새도 그리워질만큼 시간이 흘러 내가 노인세대로 다가간다. 누구도 피할 수 없으니...

 

쓸쓸하고 슬픈 애니메이션. 이야기만큼이나 색채가 참 따뜻한

영화였다. 원제 'WRINK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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