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폴란드로 간 아이들

정인숙 2019. 5. 10. 17:12

 

 

 

폴란드하면 아우슈비츠가 떠오르고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쇼팽을 연주하던 가늘고 긴 손가락이 어른거린다. 예전에 잠깐 들렀던 바르샤바와 크라코푸의 광장과 성당, 다른 유럽에 비해 남루하지만 푸근한 인상과 친절한 사람들, 덕택에 체리를 푸짐하게 먹었던 기억..

 

아이들이 왜 폴란드에 갔을까. 남과북을 어우른 추상미감독과 이송 탈북 배우가 아이들이 왜 폴란드에 갔는지 그 여정을 쫒아간다. 한국전이 한창 벌어지던 1951년, 북한은 전쟁에만 집중하겠노라 동유럽 사회주의국가에 전쟁고아들을 보낸다. 폴란드로 간 300여명의 아이들. 2차대전 동안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은 폴란드 사람들은 이들의 '엄마, 아빠'가 되어 살뜰히 보살핀다.

 

그뿐이 아니다. 러시아에서 잘 돌보지않아 방치된 1200여 명도 폴란드로 들어온다. 그래서 고아들은 총 1500여명으로 늘어난다. 세상에나.. 깜짝 놀랐다. 저렇게 많이 폴란드로?

 

추감독과 이송씨는 프와코비체 고아원이 있던 자리를 찾아가고 그 당시 원장과 교사들을 만나보니 그 시절 사진이 쏟아져 나온다. 서양인들 앞에 잔뜩 겁먹고 열차에서 내리는 아이들.

내가 어릴 때 흔히 보던 단발머리 까까머리 아이들. 옷차림새는 나 어릴 때 이전, 짱뚱한 한복차림이다. 흰색과 검은 색 옷.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길거리를 헤메다 낯선 곳, 러시아에서 고초를 당하고 폴란드행 기차를 타고 오면서 얼마나 무섭고 슬펐을까. 지금껏 보던 얼굴이 아닌 사람들, 낯선 풍경...

 

폴란드 교사들은 두려움으로 움치러들기만하던 아이들을 사랑으로 보살폈다. 전쟁의 상흔을 무용과 음악, 연극으로 짜여진 교육과정을 거치면서 무엇보다 사랑으로 슬픔을 매만져주는 선생님들 덕분에 웃음을 찾고 얼굴에도 윤기가 돌았다. 폴란드에서 잘 살고있으리라 지레 짐작하며 다음 장면에 푸근하게 나이든 한국인을 기대하다가 이게 웬일인가.

 

그렇게 폴란드 사회에 적응하면서 살아가리라 여겼는데.. 북한에서 소환령이 떨어졌다. 59년에 그들은 한 명도 빠짐없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폴란드에 아이들이 있었나싶을 정도로 깨끗하게. 김귀덕 아이만 남겨놓고. 귀덕이의 무덤만이 그듦이 존재했음을 알려준다.

 

당시 원장선생님의 주름진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70여년 세월이 흘러도 잊지못할 아이들과의 일상을 기억하며 아이들에게 사랑을 전한다.

 

저 사진에서 밝게 웃던 아이들은 어디로 사라진걸까. 지금쯤 70대로 접어들었을 사진속 아이들의 근황이 궁금해진다.

죽음을 경험한 아이들이 폴란드에 마음을 붙이고 살다가 다시 정책상 소환되다니. 인간을 동물 취급한거 아닌가싶다.

 

북한으로 돌아간 뒤 아이들은 자신을 다시 폴란드로 불러달라고 편지를 보낸다. 하지만, 사회주의체제에서 개인의 욕구를 언감생심 꿈꿀 수야. 아이들이 떠난뒤, 아이들 신변에 위협이 될까 매몰차게 편지를 끊은 늙은 아빠선생님은 눈물을 훔친다.

미안함에, 미약한 개인의 힘으로 벽을 깰 수 없기에.

 

폴란드에 취재차 간 추상미와 이송의 이야기... 밝고 복스러운 이송은 도무지 탈북전 생활을 들려주지 않는다. 동생이 배를 채우느라 감자 두 알을 쥐고 다녔다며 슬쩍 입을 뗀다. 전쟁고아들 이야기에 북에 두고온 가족이 그리워 여러번 울음을 터뜨리며. 남한에 오니 아이들이 빵 두 개를 쥐고서 배가 불러 먹다가 버리더라도 배고픈이에게 주지 않는다며 .. 심지어 통일을 하면 내 것을 빼앗어가는거 아니냐며 항변하는 남한사람들을 콕 집어낸다.

짧은 다큐에서 두 축이 달린다. 50년대에 북에서 폴란드에 간 아이들과 2천년 대에 북에서 남한으로 온 아이들...

 

인종도 역사도 말도 다른 포란드 사람들은 이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면 지금의 우리는 어떤가 돌아보게 한다. 내 몫을 빼앗가지 않을까 호시탐탐 살피며 사선을 넘어온 아이들에게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있지는 않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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