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5. 25 (금)
오베르 쉬르 우아즈 - 팡테옹
어제 밤에 12시가 넘어 숙소에 들어왔다. 피곤이 온몸 구석구석 파고든다. 오늘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갈까하고 계획을 잡았지만, 썩 내키지가 않는다. 가는 길이 너무 멀어서 자칫 잘못하면 길에서 시간을 다 허비할까봐. 낼모레 떠나니까 익숙한 길을 다니고싶은 마음도 크고.
그래도 힘을 내서 오베르로 향한다.
RER C선을 타고 퐁뚜와즈 전 정거장(쌩투앙)에서 내리라고 알려주었는데... 쌩투앙에 가니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가려면 퐁투와즈까지 가야 한단다. 어찌된 일이람... 다음 기차를 기다려 퐁투와즈에 가니까 오베르 가는 기차가 방금 떠났다... 이런~~ 앞으로 한 시간 지나야 기차가 온단다.
역에 화장실이 없어서 애먹이고.. 택시를 타고 가기로 하고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도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 파리를 벗어난 외곽이라 그런가...
저쪽에서 체격이 큰 아주머니가 캐리어를 끌고 오다가 영어를 할줄 안다고 웃으며 다가오신다. 그분은 콩고에서 왔다며 택시를 잡아 승차까지 도와주었다. 휴 ~ 이제 가는군... 그런데, 택시기사가 자신이 약속이 있다고 그시간까지 못돌아온다고 못가겠다네... 헐~~
역 앞에서 택시를 기다려도 보이지도 않고 ...투어리즘도 보이지 않고... 어쩐담.. 우버를 지금이라도 깔아야하나 어쩌나 땡볕아래서 궁리하고 있는데 택시가 보인다. 택시로 10분 정도 달리니 작은 마을이 나온다. 기사가 여기저기 알려주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어쨋든... 고생끝에 오베르에 도착했다. 다들 지치고 힘들어 말이 사라진 상태. 이럴때 잘못 말하면 관계가 틀어지기 십상. 투어리즘센타에 찾아가 지도를 받아들었다.
라부여인숙, 교회, 밀밭, 묘지... 오늘 찾아갈 곳이다.
내 발걸음은 한없이 무거운데 마을 골목길이 참 예쁘다. 라부여인숙을 찾아가니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한꺼번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갈 수가 없어 인원을 채워 들여보낸다. 삼십여 분 기다려서 들어갔더니 영상을 보여준다. 어~! 잘못 왔나?? 왜 영상부터 보여주지??..고흐에 대한 영상이다.
이 마을에 머무는 70여 일 동안 날마다 무거운 이젤과 화구를 들고 밀밭으로, 마을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이글거리는 태양아래 밀밭에 서서 고집스럽게 그려댔다. 거의 하루에 한 점 정도로 완성해 나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궁금해진다.
고흐가 마지막으로 묵었던 방, 밀밭에서 권총을 쏴 피 흘리며 삼일 동안 누워있던 방... 그 방에 들어갔다. 순간, 아~ ! 다가오는 충격.... 가슴이 먹먹해진다. 슬픔이 차올라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텅 빈 방에 의자 하나 달랑 놓여있다. 계단도 삐그덕거리고 어디선가 오래된 곰팡이 냄새도 나는 오래된 방. 지붕아래 작은 창으로 햇볕이 들어온다. 두 평 정도의 방에 서서 설명을 듣는둥 마는둥.. 이렇게 아무것도 없이 살면서 오로지 그림에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붓고 갔구나.... 프랑스에서는 자살한 사람 방은 세를 놓치도 않고 수리도 하지않고 아무도 들이지 않는 관습이 있다고 한다. 그래도 100여 년 전 모습을 이렇게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다니. 고흐를 아끼는 마음을 뒤늦게 알아차리니 고마움이 차오른다. 라부여인숙 주인님, 고맙습니다....
고흐의 방에 들어섰을 때의 충격 때문일까. 발걸음이 무겁다. 언덕길을 올라가니 오베르 쉬르 우아즈 교회가 그림에서 나오는 그 모습 그대로 모습을 드러낸다. 교회 앞 잔디밭에 앉아 하염없이 교회를 올려다보았다. 저 교회를 그리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 그림과 비교하니 그때와 길이 좀 달라졌다. 무심한 오월의 꽃들이 담장에 즐비하게 피어 향기를 내뿜고있다. 고흐가 봤으면 이것도 그렸겠지싶다.
고흐는 마을 언덕 위 공동묘지에 동생 테오와 나란히 묻혀있다. 형을 절대적으로 믿어주고 지원해주던 든든한 후원자, 테오는 형이 죽은지 6개월 후에 홀연히 떠나고 그 부인이 고흐의 그림과 스케치화, 편지글등을 잘 간직하여 세상에 빛을 보게 되었다. 이 두 형제는 죽어서도 서로 토닥이며 위로하고 있을까 ... 그들을 보며 이 세상에 단 한사람, 자신을 믿어주는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깨닫는다.
동생 테오에게 쓴 편지글에서 고흐의 고뇌와 그림에 대한 열정, 삶에 대한 의지를 대하며 눈물을 흘렸던 시절이 떠오른다. 무너지려다 일어서서 다시 붓을 들고 자신을 토닥이며 다잡던 그는 왜 죽으려했을까. 진정한 삶을 추구하다가 너무 막막해졌을까. 묘지 위로는 그 흔한 나무도 없다. 그냥 하늘아래 누워있는 듯 하다. 깜깜한 밤이면 그림처럼 별이 춤추며 쏟아져 내리겠지...
밀밭으로 들어가봤다. 그리 넓지 않은 밀밭이 묘지 옆 언덕에 펼쳐져있다. 고흐가 오베르에 온 것이 1890년 5월 21일...5월의 태양도 이리 뜨거운데 6월, 7월에는 얼마나 뜨거울까. 햇빛에 빨갛게 데어도 모자 쓰는 것도 잊은채 그림에 내달리던 고흐는 이곳에서 1890년 7월 26일 권총으로 자신의 복부를 쏘고 29일에 눈을 감는다. 그자리는 어디쯤일까 가늠하다가 아뜩해져서 그늘로 들어섰다. 몸도 마음도 무겁다. 고흐의 고뇌가 내 몸으로 들어온 듯 삶이 막막해져서 그런가.
터덜터덜 큰길가로 왔다. 돌아가는 길이 또 걱정이다. 기차는 네 시가 넘어야하니 두 시간을 더 기다려야하고.. 택시를 타볼까하니 택시를 잡을 수가 없다. 투어리즘센타에 가서 물으니 버스를 알려준다. 오호~~! 퐁투아즈까지 가는 버스가 곧 도착할거다.. 내내 무겁던 마음을 벗어났나. 금새 화색이 도는 내 얼굴... 버스를 타서 기차티켓을 내니 사용불가란다. 버스가 마을길을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예쁜 집들과 잘 가꾼 정원을 보니 마음이 밝게 돌아선다. 가라앉다가 다시 추스려지는 마음...고흐의 삶과 죽음을 간직한 마을은 이렇게 삶을 깨우쳐주나보다.
파리로 돌아와 팡테옹에 갔다. 오늘은 죽은 자들과 대면하는 날이구나.. 지하 묘지에 에밀졸라, 볼테르, 위고 등 프랑스가 자랑하는 위인들이 묻혀있다. 퀴리부인을 찾다가 묘지 안쪽 영상실에 앉아 위인들의 장례식 장면을 보았다. 흑백필름으로 돌아가는 영상, 편안함... 설핏 잠이 들려한다.
팡테옹 퇴장 시간에 맞추어 나왔다. 태양은 아직도 저 위에 떠있다. 오늘 밤도 야경을 보러 나갈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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