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파리 - Day7, 베르사이유와 La Ruche

정인숙 2018. 6. 7. 22:09

2018. 5. 17 (목)

베르사이유 - 라 뤼스


날씨가 점점 더워지고 있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지만, 한 낮에는 덥다.

변덕많은 파리 날씨라지만, 아직 비를 맞지 많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베르사이유는 교외선RERC을 타고 나가야해서 일찌감치 숙소를 떠났다. 8시 출발~


전철을 갈아타고 드디어 RERC선 탑승~ 관광지로 향하는 열차답게 만원이다. 어코디언과 트럼펫 연주팀도 한바탕 연주를 하고...베르사이유 도착하니 꼬마들도 시글벅쩍 견학을 가고있다. 프랑스에서는 학생들이 견학가는 것은 무조건 무료라고 하던데... 어딜가나 견학팀이  버글버글하다. 루브르에서 프랑스조각실  방마다 학생들이  스케치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부러웠다. 바닥에 철퍼덕 앉아서 대리석 조각을 열심히 스케치하는 아이들이 후대에 또 문화를 일구워내리라.


베르사이유에 들어가서는 곧장 거울의 방으로 입장. 사람이 많으면 들어가기가 힘들다고 하여서. 유럽노인들은 단체로 다니며 설명을 열심히 듣는다. 거울의 방에 가는 길목, 천장화에 따라 방이름을 붙였다는데 들어가 볼 수가 없다. 입구부터 빽빽히 들어찬 노인들....

거울의 방에 들어섰다. 연회를 벌였다는 이 방은 온통 거울로 이뤄져있다.


마리앙트와네뜨가 쓰던 방은

 페쇄. 사실 그녀는 여기보다 트리아농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지..

전쟁그림으로 가득 찬 방에서 잠시 다리를 뻗고 밖으로 나왔다.


삼각으로 사각으로 깍아놓은 정원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으니 우리들 세상이다.

우리만의 자리에 들어앉아 맛있게 점심을 먹고 일어섰다. 이 드넓은 정원에서 왕족과 귀족들이 놀았다 말이지~~나 잡아봐라~하고 놀았을까?

여자들은 높은 가발에 높이 꽃은 장식품 때문에 어찌 걸었을꼬... 프랑스 국민들이 분노할만한 넓이다. 화려한 치장은 기름에 물붓는 듯 했을 것이고.


호숫가 찻집에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시니 몸이 풀린다.  여행와서 아무래도 커피사랑에 빠진 듯하다. 하루에 두 세 잔을 꼭 마시게 되니.. 

 넓은 잔디밭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앉아서 쉬고, 아이들은 뛰놀고, 연못에선 노저으며 나아가는 작은 배들.. 권력을 휘두르며 만들어놓은 천국에서 후손들이 혜택을 보고있군.


표지판에 트리아농 표시가 보인다. 키큰 나무들 사이를 걷노라니 트리아농이다. 마리 앙뜨와네트가 살았던 프띠 트리아농... 베르사이유 궁에 비해 상당히 작은 집에 들어가니 마리 앙뜨와네트의 체취가 느껴진다. 가구니 방 침실이 다 예쁘다. 뾰얀 피부 매만지기와 옷치장,  아이들과 즐겁게 지내기가 일상사이던 그녀에게 닥친 엄혹한 역사를 어떻게 감당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그녀의 딸만이 홀로 살아남아 어릴 때 기억을 책으로 엮었다는데...

베르사이유, 그중 프띠트리아농을 돌아다니다보니 내 머릿속엔 마리 앙트와네트로 꽉 찼다. 그녀는 정말 운이 없는 여성이었을까...

사실 프랑스의 국고는  루이 15세의 무절제한 생활과 스페인과의 전쟁, 미국독립전쟁으로 이미 거덜이 났다는데..


1789년 7월 14일, 혁명군이 바스티유 감옥에서 무기를 탈취하고 베르사이유로 쳐 들어왔다. 그날, 루이 16세는 사냥을 마치고 일기에'별일 없음'이라고 적었다지.  그뒤, 틜리히 궁으로 옮겨지고 1793년 1월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참수형을 당하고 그 목이 깃대에 꽂힌다. 그 해 10월 16일, 마리앙트와네트도 단두대에서 참수 당한다.


그녀는 마지막에 시누이 엘리사베스에게 편지를 쓰며 신께 용서를 구하고 아이들의 안위를 걱정한다. 마지막 편지를 쓰는 도중에 사형집행인에게 끌려나가 죄수 마차를 타고 콩시에르주리에서 콩꾸르드까지 돌팔매질과 욕설을 당한다. 그리고는 담담히 단두대에 오른다.


오스트리아를 그리워하던 왕비는 벨베데르궁을 본따  정원을 만들었다. 표지판을 쫓아 들어서니 다른 세상이다. 작은 오솔길에는 꽃이 만발해있고 호수에는 새들이 드나든다. 농가가 있는 길로 접어들자 붓꽃과 작은 꽃들이 만발해있다. 비밀의 정원을 발견한 느낌이다. 농민들의 생활을 이해하기위해 지었다는 집들은 그 시절 농가라기에는 호화판.  관광객을 위해서인지, 왕실을 기념하기 위해서인지 잘 가꾸어 놓은 마을에선 관광객들이  그 풍광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다.


호젓한 숲속에 좀더 앉아 있고프나, 한명옥샘 작업실에 가야 하기에 일어섰다. 나오는 길에 화장실에 가니 길게 늘어선 줄. 이 화장실 때문에 일행들과 헤어졌는데... 아무래도 시간이 너무 걸릴 거 같다. 다른 화장실을 찾아 큰 트리아농으로 뛰어갔다. 거기는 텅 비어있다... 사람이 많이 몰리는 작은 트리아농에선 화장실이 한 칸이라 문제인데..


베르사이유를 나와  열차를 갈아타고 트램으로 환승. 시내로 접어들어도 한산하다. 계단을 오르내리지 않아도 편리하고 트램은 노약자에겐 최고의 운송수단인 듯하다. Georges Brassens역에서 내리니 한샘이 환하게 웃으며 다가온다. 두번 째 해후라 비즈로 인사를 나누며 하하호호~. 한샘의 안내로 근처 공원에 갔다. 파리 15구역은 공원과 주택가로 이루워졌는지 조용하다. 우리 호텔이 있는 샤또랭던 역과는 사뭇 다르다.

평일임에도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이 꽤 많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신록에 흩어진다. 아름답다...


드디어 화가의 작업실에 도착. 라 뤼스(La Ruche)는 파리시에서 지원하는 화가들 전용 작업실이 있는 집이다.  에펠이 골조를 만들었고 샤갈, 모딜리아니, 오랑누리미술관에서 자신의 내면세계를 강렬한 색채로 그려 그 자리에 머물게 한  생 수틴, 기욤 아폴리네르도 거쳐간 집.  멕시코에서 접한, 프리다 칼로의 남편인 디에고 리베라도 파리에서 여기에 둥지를 틀었단다. 지금도 이십여 명의 화가들이 각자 자기 작업실에서 작업에 몰두할 수 있는 곳.  이곳을 배정받으려면 상당한 어려울텐데 벌써 이십년 가량 여기에 둥지를 틀고 있다는 한샘. 그의 방이, 작업 공간이 보고싶었다. 


온갖 꽃과 나무들이 자라난 정원을 둘러보고 드디어 화가의 방으로 입성.  우리모두는 와~! 하며 감탄... 한국에서 전시하였던 작품들도 보이고 현재 작업중인 작품도, 숨겨놓은 보물들도 보여주고 ... 전시 화보도 들쳐본다.  치즈, 과일을  곁들여 와인을 음미하고... 이야기를 끝없이 나눈다. 파리 유학시절, 한국에서의 전시, 파리생활, 요즘 관심사 등등 궁금증이 끝이 없다. 밤이 어느덧 깊어 일어날 시간, 근처 캄보디아 식당에서 따끈한 쌀국수로 속을 달래고 숙소로 돌아오니 11시가 훌쩍 넘었다. 


우리가 찾아간 관광지 베르사이유도 인상깊었지만, 파리에서 살고있는 현역 화가와의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깊이 자리잡았다. 사람과의 관계, 나와의 관계... 거기에다 활짝 열고 환대해주는 한샘 덕택에 파리의 쌀쌀한 밤공기가 한결 훈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