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3일.
잘자고 일어났어도 약간 피곤하다. 여행을 다니면서 내게 가장 문제인 배변이 어려워 뱃속이 한가득이다. 그래도 기운을 차려 오늘 일정을 소화해야하니 호텔 조식을 맛있게 먹고 길을 나섰다. 다카마쓰역에서 오전 8시 16분 출발하여 한번 갈아타고 기나시역에 도착한다. 일본인들은 검은 정장을 입고 검은 가방을 들고 출근한다. 여자들도 거의 무채색으로 입었다. 출근발길이 바쁜 가운데 놀러가는 아줌마 무리... 한국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언만, 여기에선 생소하다. 우리일행 이외엔 다들 바쁜 발걸음이다.
시코쿠에 있는 88개의 절 순례코스. 그중에 한 군데만 걷기로 했다. 네고로지 根香寺에서 시로미네지白峰寺까지 걷는 길이다.
다카마쓰에서 한 이십여 분 열차를 타고 나오니 한적하다. 외국인 순례자도 안내서를 뒤적거린다. 날씨가 쾌청하다. 역무원에게 물어서 방향을 잡고 걷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순례객을 보기가 어렵다. 산길이 아니고 포장도로를 알려주어 편안하게 걷긴 하는데...
할아버지 손 잡고 등교하는 아이.
도시락인지 물병인지 갖고 다닌다. 일본에선 급식제도가 아주 잘 정착되었다는데...뭐지???
조금 오르니 산등성이 너머까지 귤밭이다. 향긋한 귤냄새가 퍼지는 산책로를 걷는다. 여기가 귤산지인가보다.
마쓰야마 특산물인 타르트에서도 귤내음이, 과자에서도 귤내음이, 아이스크림에서도 귤 향이 진하다. 귤가공품이 제주도보다 더 다양한거 같다.
길가에 묘지가 정갈하다.
학생들이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아 달려 들어가는 저기 하얀 건물이 고등학교인 듯.
학교 시설물이 저렇게 훌륭하다니... 그 안도 구경하고 싶다.
주변 구경을 하며 오르다보니 본격적으로 산길에 접어들었다.
포장도로를 걷자니 약간 지루하기도 할 참에 미애가 히치하이킹을 해보자한다.
드디어 실행! 지나가는 1톤 트럭을 세워 태워주실 수 있느냐고 상냥하게 물으니 흔쾌히 태워주신다.
미애의 미소가 단번에 성공! 60대 후반쯤 되는 아저씨가 우리를 태워 산을 훌쩍 넘었다.
산길을 오르면서 유난히 향나무 분재가 눈에 많이 띄었다. 이 마을은 향나무 분재와 귤이 주산물인듯하다.
트럭주인 아저씨도 분재원을 운영하시는 분이다.
세계분재협회 임원이시던가, 상을 탔다고 했던가... 자신을 소개하신다.
집옆에 이어진 분재농원이 깔끔하게 모습을 드러낸다.
아저씨와 인사를 나누고 보살님의 가호를 받으며 다시 걷는다. 갈림길에서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헤메이다 근처 귤밭에서 사람 목소리를 듣고 아주머니를 불렀다. 밭 한가운데서 나오시면서 귤을 한가지 꺽어 건네주신다. 귤도 받고 길 안내도 받고... 오늘은 이곳 분들 신세를 많이 지네... 아리가또고자이마쓰^^.
드디어 헬로 표시가 나왔다. 포장도로 안쪽이 숲길이다. 조금 더 걸어 숲길로 들어섰다.
출발한지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표지판이 영 나오지 않아 애를 태웠다. 이 길이 맞나 갸우뚱하며 삼십 분 가까이 걸었다.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고...
절 표시판이 보인다. 깔끔하게 정리된 숲길이다.
햇빛이 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숲에 사람 한 명이 걸을만한 길이 이어진다.
저 아래 하얀 옷을 입은 순례객이 지나간다. 숲을 둘러보고 공기를 들이쉬고 .. 떠들다보니 그 분이 눈 앞에서 금새 사라졌다.
온전히 우리들만의 길이다.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코쿠 - 리쓰린 공원 (0) | 2014.11.28 |
---|---|
시코쿠 - 네고로지 根香寺, 가을빛에 물들다 (0) | 2014.11.28 |
시코쿠나오시마 - 안도박물관, 미야노우라항 (0) | 2014.11.27 |
시코쿠 나오시마 - 베네세하우스뮤지엄, 혼무라마을 (0) | 2014.11.27 |
시코쿠 나오시마 - 지추미술관 이우환미술관 (0) | 2014.11.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