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1일, 2014년. 오랫동안 꿈꿔온 시코쿠에 도착했다.
일본어에 능숙한 미애를 졸라 떠난 여행이다.
봄부터 내내 허리아프고 무릎 아프고... 구월 초엔 팔에 깁스까지 하여 오른팔도 시원치않다.
이러다간 여행을 꿈만 꾸지 떠나지 못할거란 두려움이 퍼뜩 들기도 하는 날들... 미애가 시코쿠에 가자고 한다.
나는 그냥 지나가는 소리로 일본 시코쿠 순례길을 돌아보면 좋겟다 했는데 잊지않고 떠나자한다.
미애야! 고마워.
그런데, 행선지를 받아보니 순례길과는 거리가 멀다.
사코쿠에 순례길 말고 이렇게 볼게 많다니 ... 새삼 나의 무식을 깨닫는다.
사카모토 료마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시바 료타로의 소설 '료마가 간다' 전집 열 권을 끈기있게 읽고, 소세키의 '도련님'을 읽고 '처음 읽는 일본사'를 대략 흩고 길을 나섰다.
11월 12일. 나오시마섬으로 출발!
하늘이 맑다. 우리의 첫 날을 반겨주나보다.
우리의 숙소 센추리 호텔 부근 지리를 엊저녁에 파악해두어 부두를 쉽게 찾았다.
미애와 혜린이가 일본어를 잘아니 나는 뒷짐지고 물러나 쫓아만가도 된다 ㅎㅎ.
아침에 역근처에서 엑기도시락을 구입했다. 물과 커피, 간식도 준비하고 저 배를 타면 된다.
티켓을 구입하고 배에 오르기 전, 배 사진을 찍고자 일행과 잠시 떨어졌다. 승선하려니 티켓이 없다??
아뿔싸! 침착해야한다를 되뇌이며 주머니를 뒤졌으나, 찾을 수가 없다. 매표소로 뛰어가 티켓을 사서 배에 올랐다.
그나마 여유있게 부두에 나왔으니 다행이다. 친구들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배에서 나오려고 한다.
갑판에 올라 벤치에 앉아 주머니를 뒤지니 티켓이 얌전히 붙어있다.
이를 어쩐담.... 미애가 잽싸게 내려가서 환불해왔다. 에구구~~! 첫번 째 해프닝.^^
이 사진을 찍자고 혼줄이 났다. 여유롭게... 침착하게 다니자.
몸이 마음과 달리 민첩하지가 않다는 것을 명심하자구.
나오시마행 배 갑판에 앉아 배구경을 하다.
다카마쓰시가 멀어진다.
나오시마섬에 도착하니 부두 앞에 신사가 보인다.
셔틀버스를 타고 돌아보는 방법, 걷는 방법, 자전거를 타는 방법이 있다.
자전거를 타기로 합의하고 자전거 대여.
평지는 달리고 오르막은 끌고 올라간다. 혜린이가 아주 여유롭게 자전거를 몰고있다.
미애는 책임감 때문인지 뒤를 지킨다.
길가에 앉아 통행인의 안전을 지켜주는 불상.
상큼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니 행복이 밀물처럼 스며든다.
바람이 한국보다 한결 부드럽다. 여긴 아직 한국 시월의 날씨다.
지추미술관 도착. 입구에서 관람인원을 조정한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정원을 거닐었다. 모네의 정원을 모방한 듯, 수련이 자라는 연못.
아직도 온갖 꽃이 조금씩 남아있다.
꽃나무를 이것저것 섞어 심어 최대한 자연스럽게 꾸몄다. 인위적인 표시가 나지 않으면서 깔끔하고 조화롭게.
지중미술관이 무슨 뜻일까. 미술관으로 들어가는 길이 땅 속에 노출콘크리트 벽으로 이어져있다. 그래서 지중이구나. 미술관을 지은 다음에 다시 흙으로 덮어 밖에서 보면 전혀 돌출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섬의 경관을 전혀 해치지 않고 미술관을 지은 것이다.
하얀 옷을 입은 안내원의 지시에 따라 신발을 벗고 클로드 모네의 전시관으로 들어갔다. 흰 벽에 오직 5개 작품이 걸려있다. 천정 옆면에서 자연 채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수련들이 수줍게 떠있는 연못.. 멀리서 보아야 색감이 살아난다. 서울의 미술관에서 보던 그 작품들과 느낌이 다르다. 안도 다다오는 모네의 마음을 헤아리며 작품을 전시했나보다.
두 번째 방에선 제임스 터렐이 마술을 부린다.
사각형의 벽면 모서리의 사각형에 빛을 쏘아내어 입체감을 나타낸다. 분명히 아무것도 없는데 사각형이 돌출되어 있는 양, 우리 눈을 속인다.
그 다음 '오픈 스카이'에 매료되어 앉아있었다. 사가형 콘크리트 건물에 하늘을 뻥 뜷어 놓았다. 하늘에 구름이 흘러간다. 그대로 그림이 연출된다. 여기에 하루종일 앉아 있으며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과 바람, 구름, 빛이 어우러져 놀라울만한 그림이 연출되겠지. 사방이 조용하면 자연의 소리까지 들려올거. 새소리, 풀벌레 소리등. 나오시마의 청명한 날씨에 딱 맞는 구상... 작가와 건축가의 호흡이 이렇게 맞았구나 깨닫게 해준다.
세 번째로 마주하는 작가가 월터 드 마리아. 하얀 옷을 입은 안내원이 여덟 명만 입장하게 한다. 'Time / Timeless / No Time' 빛의 량과 방향에 따라 까만 대리석 돌이 다르게 변한다. 이 방은 오직 이 작가의 이 작품을 위해 지어졌다. 우리들은 계단을 오르내리면 벽면의 기둥을 살펴보고 대리석에 내 모습을 비춰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행복한 세 작가와 건축가.
미술관내에선 사진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카페가 있는 바닷가에서 경관을 바라보았다. 작은 섬 나오시마를 예술의 섬으로 탈바꿈시켰다. 그뒤 수많은 관광객들이 드나든다. 발상의 전환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섬이다.
지추미술관을 나가는 길에 아쉬어서 찍었다.
자전거를 찾으러 주차장에 가다 뒤돌아보니 지추미술관 매표소가 다시 보인다. 역시 낮은 콘크리트 건물이다. 자연 능선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들어앉았다.
이번엔 이우환미술관이다. 점차 바람이 거세진다. 여기도 촬영은 금지. 이우환화가는 붓으로 물감을 찍어 한번에 내리친다. 안도 다다오는 그의 작품만을 위한 집을 만들어 간결하면서도 강렬하게 작품을 선뵈고 있다. 대구에도 이우환미술관을 건립할 예정이라는데 예산문제와 기존화가들의 반발로 지어질 수 있을런지..
이우환 미술관 입구.
미술관 내부로 들어가기 직전의 야외. 여기도 사진촬영을 제지한다. 모르고 찍은 사진.
미술관 밖. 사진찍는 미애가 하나의 풍경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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