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비가 내립니다.
어제는 바람까지 몹시 불어 우리집 앞 나대지 풀들이 마치 어린왕자에 나오는 밀밭인양 나부껴 장관을 이루더군요.
식물들이 모여 있는 것은 잘 견디고 하나씩 외따로 있는 것은 바람에 꺽였습니다.
다행이 오늘은 바람이 잦고 왼종일 비만 내립니다.
대도시 아파트에 살 땐 그저 '비가 오는구나.' 바라보고 책 읽다가 영화 보다가 하며 시간을 보냈는데,
시골에 오니 비오면 마음이 바빠집니다.
산을 깍아 만들었으니 배수가 늘 문제입니다.
물길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요.
현재까지 저 앞 길에 구멍이 뻥 뚤리고
입구쪽 전선이 소나무에 걸려 있는 것외에 다른 일이 없으니 다행이지요.
동네 분들이 수시로 나와 배수로를 점검하고 집 안팍에 물길을 냅니다.
시골에 살다보니 어린 시절 생각이 마구 납니다.
그 가운데 큰 몫이 '엄마'지요.
하루종일 부엌에서 일만 하시던 엄마...
어릴 때 학교 다녀오면 부엌입구 마루에 엎드려 숙제하고 수련장을 꼭 풀어야 놀게 한 울엄마...
부엌에서 불 때시며 구구단을 외게 하고
'국민교육헌장'을 먼저 외우시고 일하시는 옆에서 외도록 했던 생각...
공부를 무척 하고 싶으셨는데 외할아버지가 학교를 보내주지 않아 공부에 한이 맺혀
'너는 공부 많이 해라'며 공부하면 신나하시던 씩씩한 엄마...
어찌나 식구가 많은 지 보름만에 쌀 한 가마, 보리 한 가마를 먹어 치워 엄마 손엔 손톱이 자랄 새가 없이 제멋대로 닳아 있었지요.
밥 때가 되면 항상 동네 사람들이 껴서 밥 먹어 우리 식구끼리 먹는게 꿈이었대요. 내가.
사랑채에 행상꾼, 땅꾼, .. 그 사람들 어려운 살림살이 들어주면서 눈물 흘리시던 엄마...
그렇게 베푸셨기에 지금까지도 뵈러 오는 분들이 끊이지 않는답니다.
밭에 쫒아가서 일하려 하면
집에 가서 공부하라고 쫒아내고
책 읽으라고 소년한국일보를 구독해 주고
집에 책 팔러 온 한국문학전집을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시고 사주시던 엄마입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자 더 억척스럽게 자식들 키우시느라
늘 낡은 옷을 입고
쌀 보따리, 반찬 보따리 짊어지고 서울로 나르시던 분.
그런 분이 8년 여 몸져 누워 계시다가 이제 마감하시려 합니다.
미련하게 사시는게 속 터져서 싸우기도 많이 하고
울기도 많이 했는데...
비 오는 날이면 또 생각납니다.
빗물 받아 왼종일 빨래해서 풀먹여 다딤이에 올려 놓고 밟으시면서 숙제 물어보고 뺄셈, 곱셈 가르쳐 주시던 일...
병석에 누워 계실 때
딸한테 온갖 핀잔을 다 듣고도
입 꾹 다무시곤 돌아서 나오는 내게 '미워하지 마라. 너가 더 아프다'하여 울게 만들고...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그래 그런가 요즘 내가 생각해도 덤덤합니다.
이천 두 번 다녀오니 장시간 운전 때문인지 무릎이 아파 비 핑계 대고 이렇게 집에 머물고 있답니다.
참 우리 엄마가 노상 말하셨어요.
자식에게 정성을 기울이라고... 그리고 그 댓가를 바라지 말래요. 그애가 그 자식에게 잘하는게 댓가랍니다.
시골에 사니 지식이 참으로 쓸모가 없습니다.
고추 몇 그루 심어놓고 바람에 넘어갑니다.
동네 나가보니 태풍에도 끄덕없도록 이중으로 매어 놓았더군요.
제대로 못한다고 오늘도 신랑에게 꿍시렁 꿍시렁...
일요일, 태풍까지 몰아친다는데 우리는 마을잔치 합니다.
마을분들 점심초대와 집 공개.. 화~알짝!
날씨 때문에 네 집에서 나눠 점심을 대접하려 합니다.
시골에 들어오면 입주식을 치뤄야 몸과 마음이 편하답니다. ^^
그래서 회의... 술... 시장보기...ㅎㅎ.
일요일에 잘 치르도록 기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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