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밤길을 더듬어 부여 외곽 기와마을에 짐을 내렸다.
가로등도 없고 주변에 인가도 없는 듯한 체험관 숙소에 우리를 안내해주고 훌쩍 떠나가는 아저씨.
아침이 밝았다.
창밖을 내다보니 기와집 몇 채가 보인다. 예전에 기와를 굽던 마을이라 기와마을이라는군.
마을길을 어슬렁거리다 산책로에 들어섰다.
풀이 무릎까지 올라온다. 운동기구도 정자도 있건만, 도통 사람의 흔적은 보이질 않는다.
하긴 동네를 어슬렁거리니 집집마다 개들이 짖어대어도 만난 사람은 고작 두 명뿐이다. 할머니와 할아버지.
부여군 전체 인구가 7만여 명이라니...
앞차를 쫒다가 길을 잃어도 몇 번 돌아다니니 지리를 꿰 정도다.
시내도 한산하고 고층건물이 없어 편안하고...
궁남지 연꽃.
청개구리를 발견하여 기뻤지만, 잠시 살표보니 개구리가 우릴 구경하고 있다.
'언니들, 반가워유~~.'
물양귀비.
벌개미취에 나비가 앉았다. '나비야, 제발 날개 좀 펴보렴...'
궁남지 정자.
바람이 시원하고 눈이 시원한 곳.
쉬이 자리뜨기 어려운 곳.
연꽃을 친구삼아 사진 찍는 여인네들.
부소산성에 올랐다.
지난 해, 갈대와 억새가 어우러져 평화롭던 둔덕이 사라졌다.
4대강 보 준설이 여기도 한창이다.
모래를 퍼내어 논과 밭에 쌓아놓고 ... 강이 어지럽다. 물도 황토빛 물로 변했다.
잘 살게 해줄거란 분홍빛 꿈을 꾸는 무심한 사람들.
허긴 난 제대로 항의 한번 했던가.
수학여행 나선 아이들처럼 등긁게, 빗을 고르는 여인들. '지갑 열어유~~'
정림사지 오층석탑.
백제를 멸망시킴 소정방이 '백제를 정복했다'는 글귀를 새겨놓았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픈 인간의 욕망은 세월을 뛰어넘는가보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하고 인간의 삶이 바뀌어도 인간 마음의 진화는 아직도 요원하니까.
석탑의 끄트머리가 날렵하게 올라가있다.
마치 백제 시대 건물 양식을 닮듯.
천 오백년의 세월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스쳐갔을까.
전각안에 얌전히 앉아 계시는 비로자나 석불.
만화에 나오는 인물을 연상케한다.
신동엽 생가로 발을 옮겼다.
부인 인병선씨의 글, '우리는 살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언제까지나 살며 있는 것이다.'
언젠가 인병선씨와 작가들이 신동엽시인 생가를 지키고 시비를 세우느라 동분사주하던 글을 읽었다.
이젠 마음 편히 짚풀생활사박물관 일에 전념하시리라.
생가 마루에 앉아 살펴보니 여기저기가 지저분하다.
담배꽁초, 음료수 병, 과자봉지...
'공익 한 명 보내서 지켜야한다'고 이구동성.
현재 공사중이라니 나아질까.
더 이상 쇠락하지 않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할듯.
신동엽 시비를 찾았다.
대뜸 오자를 찾아내는 쌤들이다. 왜 오자가 생겼을까.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젊은 시절 생을 마감한 시인은 여전히 젊은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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