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인도19일째] 아잔타 석굴 - 먼지를 보호막 삼아

정인숙 2010. 2. 17. 13:40

 # 오전 4시. 설핏 잠이 들다가 깼다.

여기는 보팔 대합실이다. 결국 열차가 언제 올지 모를 정도로 연착, 연착...

 

처음 델리 역에서 '웬 노숙자가 이리도 많담?' 하였는데 바로 그 노숙자 신세가 되었다.

지난 밤 한 두시간 연착하리라 생각한 열차가 오늘 다섯시 넘어야 들오올 수 있다나... 그것도 장담을 할 수 없단다.

자정 전에 일찌감치 자리를 잡은 사람들은 그나마 괜찮다.

 

긴 소파 위에 모두들 자리를 잡고 잠이 들었으니 어디에서 잠을 잔담.

가방을 발치에 놓아 길이를 연장하고 침낭을 꺼내고... 담요를 덮고... 다들 피곤하니 잠자리야 어떻든 곯아 떨어진다.

 

인도인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바닥에 담요를 깔고 덮고 눕는다.

 

플랫폼 주변에 나가보니 일행 중 남자분들이 발차 번호를 살피며 서성거리고 있다.

그쪽 'Waiting Room'은 소파도 없이 철제의자뿐이라 꼬박 밤을 새우셨나보다.

이쪽 'Ladies Room'이 무사한가 살피면서...

 

Vicky는 열차 연착이 마치 자신의 잘못인 듯 미안해 어쩔줄 몰라한다.

한국에서 24살이면 아직 부모의 도움 받으며 학교 다닐 나이인데 직업전선에서 저리 뛰어다니니 기특하기도 하다.

 

밤 사이 플랫폼과 선로 청소를 하여 한결 깨끗하다.

커피를 사들고 돌아서는 데, 맞은 편 노점에서 사탕 껍데기를 버린다.

순간적으로 다가가 주으니 이 사람들이 아주 계면쩍은 표정으로 "Thank You"를 연달아 한다.

이 나라는 대대적으로 청소 작업과 쓰레기 버리지 않기 교육을 시켜야 할 듯. 누가 시켜야 할까나.

 

5시에 열차가 도착하였다.

그나마  다행이다.

부사발까지 7시간. 다시 아잔타까지 1시간 30분.

오후 5시 반이면 아잔타 석굴이 문을 닫기에 더 늦게 출발하면 오늘 아잔타 석굴을 못 볼뻔 하였다.  

 

 

  자고 일어나니 내 앞자리 풍경이 이렇네요...

 

 

# 열차에 올라 한잠 청하고 일어나니 8시다.

열차는 데칸고원 사이를 한없이 달린다. 11시 반. 부사발 역에 도착하다. 휴~! 아잔타 석굴을 넉넉히 볼 수있다.

 

아잔타 석굴에 인도 사람들이 많다. 평상시에 이렇지 않았다는 데...

아! 오늘이 인도의 독립기념일(1월 26일)이라 휴일이란다. 색색의 사리를 곱게 차려 입은 인도 여인들이 아름답다.

 

계단을 조금 오르니 계곡을 따라 곡석으로 펼쳐지는 Caves. 석굴들.

전체가 돌산이고 하부에 굴을 뚫었다. BC 2세기 부터 조성된 석굴들.

 

8세기 이후 인도에서 불교가 쇠퇴하면서 무려 1,100 년간이나 밀림속에 숨겨있다가.

1819년 호랑이 사냥에 마선 영국군 병사가 우연히 발견하게 되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천 년동안 쌓인 먼지를 보호막 삼아 화려한 색채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는 데, 보수 작업 후 색이 빠른 속도로 바랜다니...

앞으로 50년을 보장 못할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입구  1번 석굴 앞에서

 

 

연꽃을 들고 있는 보살상.

일본 법륭사의 금당 벽화와 닮았다.

(플래쉬 사용 못함) 1번 석굴 안에 들어서니 안이 상당히 넓고 벽화도 선명히 남아있다.

기원 후 5C 굽타 시대에 지은 것이어도 안료가 좋은 지 색채가 그대로 남아있다.

 

 

 천정에 그려진 벽화

 

 출가하기 전의 부다, 부다의 탄생, 태자 시절의 부다 등이 불화로 그려져 있다. 

  둔황석굴 벽화보다 훨씬 잘 보존상태가 좋고 아름답다고 그쪽 다녀오신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석굴 안쪽에 자리잡은 부처상

 

 10번 굴.

1819년 가장 먼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호랑이 사냥에 나선 영국군 병사가 길을 잃었다. 반대편 산등성이에 서 있다가 이쪽으로 무언가 입구가 보여 발굴을 시작했다고 한다.

 

 

 천정을 받치고 있는 동자들. 허리 휘겠다~~^*^.

 

 

 천정벽화

 

 마야 부인의 태몽을 상징하는 벽화

 

 출가 전 화려하게 궁정생활하는 부다

 

 

 

 조각상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19번 굴. '조각가들의 보물상자'

  

 

# 오후 4시. 보존 상태가 좋은 중요 석굴들을 설명을 들으며 돌아보니 어느 새 끝에 왔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으랴... 다시 굴 하나 하나에 들어가 세밀히 살피며 기억속에 새겨 넣은다.

 

 

 

 

 26번 굴.

인도에서 가장 큰 부다의 열반상. 잔잔히 미소를 지으며 잠이 드셨네요. 7m.

 아래엔 슬퍼하는 제자들. 위에는 손짓하는 천사들.

 

 

 이쪽에 서도 저쪽에 서도 사방 어디에 서도 나를 보고 미소 짓는 동자를 그린 벽화

  

 

 

함께 사진 찍자고 청한 인도인. 일행 중 역사 교사 부부와 함께.

 

 중간 중간에 짓다 만 석굴도 꽤 있습니다.

산 허리를 깍아 굴을 파고 그 안쪽 깊숙이 불상이 있고 옆에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방이 있네요.

 

 

 

 

심하게 손상된 벽화

 

# 총 29개 석굴군이다. '찬란한 문화유산'이란 표현은 바로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Vicky에게 '대단한 조상들을 두었다'며 부러워하자 보호를 잘 못하여 큰일이라고 걱정한다(더구나 불교유적이니~).  

이런 어마어마한 유산을 보호막이나 지키는 이도 없이 관람객에게 그대로 내보이니... 여유일까. 경비 때문일까. 인식의 차이 때문일까.

 

한국 관람객들을 종종 마주쳤다.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석굴 입구에 'No Flash!'라고 쓰여 있는데도 석굴 안에서 플래쉬를 펑펑 터 뜨리며 기념 사진을 찍는다.

인도인 가이드도 아무 말도 않고...

 

# 석굴을 보고싶어 갈망했는 데 소원도 풀어겠다. 호텔도 시설이 좋다. 난방도 되어 따뜻하다. 

어제 밤 고생은 다 잊고 기쁨으로 가득 차 오른다. 뿌듯한 마음에 맥주로 목을 축이고 잠자리에 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