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서둘러 타지마할로 출발한다.
낮 시간에 사람들이 밀려 들어오기 때문이다.
저 앞으로 타지마할 흰 대리석이 안개에 싸여 신비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찬란한 햇살 아래에서 대리석이 환하게 빛나고 보름달 밤이면 더욱 영롱한 빛을 발한다는 타지마할.
사진으로 보면서 실제로 볼 수 있을까 하였는 데, 이제 그 앞에 서있다.
타지마할(마할의 왕관)은 무굴제국 황제 샤 자한이 17년 동안 14명의 아이를 낳고 15명 째 아이를 낳다가
1629년 사망한 왕비 뭄타즈 마할을 위하여 20여 년(1631년~1653년)에 걸쳐 완공한 높이 58m의 무덤 건축물이다.
샤 자한은 전쟁터에도 꼭 왕비를 데리고 다녔고 더구나 거의 해마다 아이를 난 셈이니
왕비가 몸이 몹시 허약해졌을 터이다.
죽은 후에도 이러한 건축물로 사랑을 표현하였으니 그 사랑이 축복인 지, 죄악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샤 자한은 이 건축물을 조각한 장인 3백 명의 손목을 잘랐다.
다시는 이와 똑같은 조각을 만들어내는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게끔.
게다가 샤 자한은 야무나 강 건너편에 자신의 무덤을 똑같은 양식의 검은 대리석으로 지으려 했단다.
아마도 검은 대리석의 타지마할까지 세워졌다면 후세대에게는 축복이었으리라.
위대한 유산은 수 많은 사람들의 아픔과 피로 일구워지는 역사에 마음이 착잡해진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타지마할은 오늘도 빛나고, 비둘기는 타지마할 안에까지 유유자적 드나들고 있다.
타지마할 들어가는 문
타지마할. 건설 시 연간 20만 명, 코끼리 천 마리 동원됨. 이란 출신 우스타드 이샤가 설계했다.
보름달이 뜬 밤, 특별관람을 허용한다.
입구
흰 대리석 조각. 벽면이 전부 조각으로 이루워졌다.
대리석에 색칠? 'No!'
피에트라 두라 기법-대리석에 꽃 등의 문양을 판 뒤, 그 홈에 각각 다른 색의 돌이나 준보석을 박아 넣었다.
아침과 한낮, 석양과 보름날 밤 등 시간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고.
대리석 조각
뭄타즈의 관(사실은 가묘라고. 진짜 무덤은 본당 지하에 은폐).
허술한 관리 덕에 무덤 안 사진도 찍었다. "No Flash!" 라는 푯말이 없으니 관람객이 사진을 펑펑 찍는다.
나중에 관리원이 "No Flash!"라고...ㅠㅠ 비둘기가 이 안에 자유롭게 드나들어 안타까웠다.
샤 자한이 죽은 후 뭄타즈 옆에 누웠다.
가묘가 놓여 있는 주변을 병풍석으로 감쌌다.
대리석을 투각으로 조각하고 준보석(43가지나 된다고...)인 돌로 박아 불빛을 비추니 영롱한 빛으로 빛난다.
무덤 밖 기둥 장식. 무덤 주변 기둥은 조각이 더 정교하다.
바깥 문 조각. 글자도 파 내어 검은 대리석으로 박았다.
코란 내용과 심판의 날이 다가오면 뭄타즈 마할과 샤 자한이 부활할 것이라는 내용이라고...
어찌나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지 감탄을 거듭하다가 밖에 나와 건물 주변을 한 바퀴 돌은 후, 무덤으로 다시 들어갔다.
우측 아래. 주변을 전부 대리석과 붉은 돌로 박았다.
뒤쪽. 사원과 학교로 쓰였던 건물이 타지마할 뒤 양쪽에 있다.
타지마할에서 나오려는 참에 '인도성지순례'팀을 만났다. 어디서 오셨냐고 물으니 '정토회'라고...
엉! 순간 마음이 바빠졌다.
같은 실에 근무하던 이정희 선생님이 정토회에 속해 떠나셨는 데...
이 사람 저 사람 붙들고 물었으나 쌤을 만날 수 없었다...
아그라 성.
16세기 말 무굴 제국 3대 악바르 황제가 수도를 델리에서 아그라로 옮기면서 건축하기 시작해서
손자 샤 자한이 타지마할을 건축하면서 더욱 발전시켰다.
아그라 성은 타지마할을 축조하면서 너무 많은 재정을 낭비한 샤 자한이
말년에 아들 아우랑제브에 의해 유폐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샤 자한은 야무나 강 너머의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보이는 무삼만 버즈에 갖혀 있다가 숨졌다고.
아그라 성 입구에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순간, 저 앞에 이정희 선생님이 보인다.
어머머~. 우리의 극적인 만남이 이루어졌다.
선생님은 일행들과 먼저 들어가야 하고 나는 순서를 기다려야 해서 저 안에 들어가서 만나자고 해 놓고 헤어졌다.
성 안에 들어와보니 지금껏 본 어떤 성보다 넓다. 거기다 미로~~. 어디서 이정희 선생님을 찾아야 하나~~.
조각이 떼어진 모습
움푹 들어간 조각? 아니다. 원래 색색의 문양이 새겨진 유리 거울이 박혀있었단다.
샤 자한이 기거하던 무심만 버즈. 장식을 좋아하는 왕답게 이 곳이 가장 화려하다.
이곳이 욕실이었던가, 간이 분수던가....
무심만 버즈 외관
누군가가 보석돌을 파갔다.
아그라성 바깥 해자. 물이 없어 잡초만 무성.
대리석에 새긴 힌두어 안내판
왕이 이곳에 서서 저 멀리 성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내려본다고.
인사를 하지 않고 들어서면 '캑!'이라고 Vicky가 행동으로 ...
역시 거울 장식을 다 파갔다....
발굴과 복원에 힘쓴 영국인 무덤을 인도인들이 예쁘게 만들었다.
한국음식을 한다기에 찾은 네팔 식당.
라면은 네팔라면을 팔고 수제비는 양파와 감자를 넣고 밀가루를 반죽하여 민 뒤, 칼로 베어 넣었다.
간만에 맛있어서 두 그릇 째 비우고... 감자도 삶아 달래서 ... 감자 삶는 동안에 타지마할 뒤 야무나 강을 찾아갔다.
뒤에서 바라 본 타지마할
야무나 강물에 비춘 타지마할
뱃사공 아저씨.
뒷쪽에 가서 야무나 강을 바라보니 시커멓다.
냄새가 나지 않을까 싶었는 데, 새들이 눈에 띄어 배에 올랐다.
화학 폐기물로 더러워진 것이 아니기에 새들이 살고 있나보다.
건너편 마을 주민들의 이동수단이기도 한 듯, 인도인 모자와 함께 탔다.
이 아이는 이곳에 대해 손짓을 하며 열심히 알려준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짓으로 서로 이해하니...
건너편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무심한 강물에 노래소리가 스며든다.
이 강물이 갠지스강으로 흘러간다고...
군인들이 총 들고 지키고 있다. 오후 심심하던 차에 나타난 동양인들. 이들의 구경거리였다...
뒤 쪽에 돌 깨는 사람들이 꽤 있다.
바짝 말라 몸피가 아주 작은 할머니들은 차마 못 찍었다.
이 분은 사진 찍으라고 흔쾌히 승낙하신다.
돌 깨는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돌을 깨는 일을 한다고 책에서 읽었는 데 설마 그럴리가...
이정희 선생님을 만났다....!
숙소에 들어오니 정토회 회원들이 여기서 오늘 밤 묵는단다.
아래층에서 회의중... 조용하게 열심히 소감문을 작성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낮익은 얼굴을 발견 "이정희선생님!".
법륜스님이 성지순례 중, 구걸하는 아이들에게 '왜 학교에 가지 않는냐'고 물으신 것을 계기로
이곳 인도에서도 가장 낙후된 마을에 학교와 병원을 세웠다. 수자타 아카데미.
불가촉민들이 사는 둥게스와리에 세워져,
전원 자원봉사자들로 운영되는 수자타 아카데미 이야기를 감동깊게 전해주신다.
전정각산 아래에 있으니 꼭 다녀오라고 하시면서...
이정희 선생님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밤 8시에 출발하는 가야행 열차에 몸을 싣는다.
'여행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13일 - 쉬지 말고 정진하라 (0) | 2010.02.08 |
---|---|
제12일 - 열차는 여전히 흔들흔들 (0) | 2010.02.08 |
제10일, 아그라 - 오! 내사랑, 뭄타즈 (0) | 2010.02.05 |
제9일 - 손자국을 남기고 불길 속으로, 블루시티 조드푸르 (0) | 2010.02.04 |
제8일, 사람들 사이에 길이 나다 - 조드푸르 (0) | 2010.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