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9. 목요일
서산 - 런던 - 숙소
드디어 런던으로 출발한다. 영국에 다녀와보지 못하고 영어선생 노릇을 해왔다. 그것도 27년 간이나. 퇴직하고 맨 처음으로 하고픈 일이 런던에 가서 영어연수를 받는 거였다. 나에게 닥친 일들의 우선순위를 매기다 보니 내가 하고픈 일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실구름 같이 연기만 폴폴 흘리고 있었다.
런던은 온통 비싸다니 그럼 영국의 어느 시골 마을, 아니 호주 어디 끄트머리라도 다녀와야 영어에 대한 울렁증이 사라질 거 같았다. 어언 시간은 흐르고 67세가 되어서야 런던에 입성할 수 있다니.
새벽 5시 반에 출발하였다. 고맙게도 남편이 데려다준단다. 이게 웬 떡이야 하며 차에 올라 새벽공기를 가르고 공항으로 달려간다. 출근시간 전이라 1시간 반쯤 지나 영종대교를 건넌다. 일산에서 내리 살려나 했는데 서산에 가서 벌써 14년째 살고 있다. 일산 방향으로 고개가 자꾸 돌려진다. 나의 40대, 열정이 넘치던 그 시절을 그려본다.
여행을 떠나기 전, 몸이 많이 아파서 병원을 전전했다. 허리가 아파서 엉덩이가 아프고 다리가 저리고 발바닥도 뜨끔거리며 걸음을 방해했다. 언제든지 씩씩하게 걸으려니 했던 예측은 어긋났다. 긴 여행을 떠나야 하니 MRI 검사까지 하고 수술할 정도로 심하지 않다는 결과를 듣고 한 달치 복용 약을 받았다. 근이완제, 진통제, 소화제... 근본치료가 아닌 약들.
캐리어에 들어간 약봉투가 한 자리를 차지한다. 한 달치 약에다 타이레놀, 지사제, 감기약, 알레르기약, 각종 연고, 밴드, 파스 등등. '70이 다가오니 그렇게 싸갖고 가야 해. 괜찮아 아프지만 말고 돌아와야 해' 스스로 위로해 가며.
옥경이가 아침으로 토스트를 싸왔다. 토스트와 커피를 마시니 라운지에 들를 마음이 사라졌다. 친구를 놔두고 나 혼자 들어가는 것도 이상하고. 옥경이와 코드를 잘 맞춰가며 이 여행을 끝내야겠지.
비행기를 탔다. 만석. 개학을 이제 하는지 유학생들이 꽤 많다. 내 옆자리도 유학생 커플. 결혼은 안 하고 동거인 거 같은데 남학생이 수시로 애정표시를 해댄다. 신경에 거슬리는 건 아니어도 신경이 쓰인다. 둘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양쪽 집안에서는 아직 모르는 거 같다. 동거 학생커플이라... 남의 일이라 머리로는 받아들이지만, 내 아이에게 닥친 일이라면 충격이 클 거 같다. 사회의식은 진보성향이면서도 가정에서는 보수적?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보다. 예전 좋아하던 사람을 다시 만나 좋아하는 감정이 일어나지만, 지금의 삶과 그간의 공백을 메꿀 수 없어 헤어지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 시절이 지나갔으니 사랑도 묻혀야겠지. 유대인을 주제로 한 또 한 편의 영화를 보고 잠들다. 식사 두 번하고... 14시간이 수월하게 지나갔다. 잠도 얼추 자고.
런던 히스로 공항에 내렸다. 미리 검색한 대로 엘리자베스 라인을 타고 시내로 진입... 한 번 갈아타고 모닝턴 크레슨트 역에 도착. 리프트가 없다 헉! 한 층 올라가야 리프트가 나온다니. 캐리어를 옮기느라 낑낑 매니 누군가 도와준다. 고마워라~
길 건너 골목에 위치한 숙소에 무사히 도착. 깔끔한 아파트다. 관리인이 늦게까지 상주하여 더욱 편리하게 들어올 수 있었다. 오늘 할 일은 모두 무사히 잘 끝났구나.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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