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4. 월요일
요아니아 - 마테오라 - 데살로니키
새벽에 호텔 밖으로 나섰다. 규모가 상당히 큰 도시... 호숫가를 거닐며 규모를 가늠해보니 어마어마하게 큰 호수이다. 아직 사방이 어둑한데 저멀리 동쪽에서 빠알간 기운이 솟아난다. 해가 떠오르는 호숫가를 거닐며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과 호수를 바라본다. 이제 여행일이 오늘까지 이틀밖에 남지 않았다. 지금껏 무사히 다닌 것에 하늘과 땅, 주변 모든 것에 감사하며 새벽공기를 흠씬 들이마셨다.
도도네 유적지에 도착하니 설산이 바로 가까이 보인다.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의 유적지에 우리들의 발소리가 자박자박 들린다. 도도네는 제우스가 아버지 크로노스를 피해 성장하던 곳이다. 이곳에서 참나무의 흔들림을 들으며 신탁을 내려주던 디오네는 후에 제우스의 부인이 된다. 제우스가 노닐며 자라던 참나무이기에 참나무는 이곳에서 성스러운 나무로 여겨진다. 아르고 원정대는 바로 이곳의 참나무를 베어다가 배의 선미를 만들었다.
신성한 참나무가 자라는 땅에 극장과 제우스 신전, 제우스의 부인 디오네 신전, 아프로디테 신전, 바실리카 등이 있다. 안내판을 보며 위치를 가늠하여 바실리카 위 돌을 밟아보고 제우스 신전의 돌을 만져본다. 그리스에서 돌아가면 내게도 신의 기운이 생기지 않을까. 날마다 신전을 돌아다녔으니 말이다.
원형극장에서 조샘이 판소리 한소절을 불렀다. 극장 좌석을 수리중이던 인부들도 잠시 일손을 멈추고 낯선 곡조의 노래를 경청한다. 삼천여 년 전의 원형극장에서 우리 판소리가 울려 퍼지리라고 그 당시 사람들은 상상조차 못하였으리라. 팀의 막내 초등학생도 가요를 소리 높여 부른다. 그 꼬마는 여행내내 신화를 줄줄 꿰며 자신만의 해석을 내려 깜짝 놀라게 했다. 어린아이임에도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꿋꿋함이 몸에 배여있는 아이... 잘 자라는 아이를 보며 우리나라의 미래가 그려져 흐뭇해진다.
메테오라로 가는 길에 설산이 보인다. 이곳은 곳곳이 해발 이천 미터가 넘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하얀 설산이 이어진다. 기암괴석의 계곡에서 맑은 물이 흐른다. 거기에 스토리가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으니 상상력이 뛰어나리라싶다. 그래도 자신만만한 우리의 꼬마 어린이를 보니 한국도 그에 못지않으리라 생각이든다. 한국에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다는 소식에 마음이 불안해진다.
메테오라 공중 수도원이 멀리 보여 탄성이 새어나온다. 가까이 가니 어떻게 저런 뾰죽한 바위 꼭대기에 집을 지었을 지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 은둔형 수도원들은 1356년부터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투르크족이 테살리아 지방을 점령한 뒤인 15~16세기에는 수도원이 더 많이 생겨났으나, 현재는 6개가 남아있다. 그곳으로 가는 수단은 밧줄과 그물... 지금도 물건 운반은 밧줄을 이용한다.
남자수도원인 삼위일체 수도원을 방문하였다. 바위를 타고 올라가서 절벽위 집안으로 들어가니 작은 예배당이 나온다. 전형적인 비잔틴 양식의 그리스 동방교회이다. 그리스 정교회는 서방교회만큼 규모가 크지 않다. 작은 예배당 안에 프레스코화가 가득 그려져 있다. 땀을 식히며 이콘의 그림같은 비잔틴방식의 성화를 살펴본다. 밖을 나오니 햇살이 따뜻하여 꽃이 활짝 피어있다. 하늘 아래로 산, 그 뒤도 산, 옆도 산이 포개진다. 여기 오르기 전, 밖에서 봤을 땐 아슬아슬할 것만 같은 바위 위 수도원이 여기에서 보니 사방이 멋진 풍경으로 가득하다.
올림푸스 산을 왼쪽으로 끼고 테살로니카로 달린다. 디온을 지나며 알렉산더의 동상을 보았다. 이곳은 알렉산더가 원정을 갈 때마다 제사를 지내던 곳. 알렉산더 집안이 여기서 시작하여 펠라에 가서 융성해졌다고 한다. 알렉산더가 태어나 자란 마케도니아 펠라가 여기서 멀지 않다.
까뜨리니에를 통과한다. 아그네스 발차가 부르는 '기차는 8시에 떠나네' 음악이 흐른다.
당시 카테리나는 그리스 민병대의 최종 집결지였다. 카테리나로 떠나는 기차는 8시에 떠나고...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 연인을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사람의 심정이 애절하게 흐른다. 이곡의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생애도 겹쳐 떠오른다. 나치에 저항한 레지스탕스에서 반독재 운동으로 수차례 수감된 사람. 평생을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사람...
이런 분들의 헌신이 있기에 이렇게 편안하게 여행을 다니고 있는거겠지.
음악을 들으며 가슴이 뛴다. 자유와 민주주의란 단어에 가슴이 뛰던 시절. 그 열정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증거겠지.
테살로니카 지역은 1912년에 오스만 제국과 치열하게 싸워 쟁취한 지역이다. 그 후에도 그리스는 자유를 쟁취하고자 끈질기게 싸웠다. 나찌에 대항하여 싸웠고 군사독재에 대항하여 또 싸웠다. 값지게 얻어낸 자유 민주주의를 마음껏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도도네 유적지
발굴 번호를 매단 돌들.
극장. 감독관 1명, 인부 2명이 좌석을 천천히 수리하고 있다. 발굴도 오래 걸리고 복원도 오래 걸리고 수리도 오래 걸린다고.
색깔이 다른 좌석이 수리하여 복원한 것.
신성한 참나무.
메테오라 지역의 수도원들
물건을 운반하는 밧줄과 고리.
수도원 입구와 외부 전경
신들의 집 올림푸스 산(해발 2,919 미터). 그리스인들이 신성시 여기던 산에 지금은 트레킹 코스가 나 있어 등반이 가능하다고 한다. 등반이라니... 이제는 꿈도 못꿀 일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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