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0일, 목요일
12시간 비행시간 동안 내내 자다가 먹고 또 자다가 먹고... 예전에는 허리, 다리, 무릎이 아파서 한 시간마다 일어나 돌아다녔거늘 작년 초 멕시코에 갈 때 15시간을 타고가면서 습관이 바뀌었다. 비행기 타면 피곤하니 일단 쿨쿨~ 식사 나오면 와인 한 잔에 취해서 또 자고... 이번에도 8시간은 족히 잔 듯 하다. 온열안대도 준비해 왔으나, 꺼낼 새도 없이 곯아 떨어졌다. 비행기에서 잘 자서 그런가 인천 공항에 내렸는데 컨디션이 아주 좋다. 무사히 여행을 마쳤다는 안도감에 일행들과 감사와 격려의 포옹으로 인사를 나눴다. 김포에 거주하는 양샘이 서산가는 버스 시간까지 기다려주었다. 여행을 같이 했어도 일정을 달리 다니다보니 제대로 이야기도 못나누었다. '같이 또 따로'는 효율적이긴 하지만, '미운정 고운정' 든다는 한국인 정서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 듯하다.
오후 네시 반경 서산행 버스를 타고 다시 잠들었다. 올해의 미션이 무사히 잘 마쳤기에 뿌듯함이 밀려온다. 오랜 숙원이던 이탈리아 여행을 마쳤구나. 이젠 이탈리아 이야기를 듣거나 읽으면 내 머릿속에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 더 이상 미지의 세계가 아니니까.
서산터미널에서 남편과 해후. 이 사람이 그동안 살이 빠졌는지 좀 야윈 듯해 한참 웃었다. 시골에 내려와 정신없이 몸무게가 불더니 올해 조금씩 빠지는 중에 혼자 지내며 덜 먹었으니. 시내 밥집에 가서 김치찌개를 시켜서 양껏 먹었다. 오랜만에 먹으니 칼칼한 맛이 시원하면서도 짠 맛이 확 느껴진다.
어두워서야 집에 도착. 외등을 켜놓고 마당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가을 꽃들에게 인사한다. 구절초와 국화, 청화쑥부쟁이, 백일홍, 천일홍, 메리골드가 집 주변으로 한 가득이다. 여기가 천국이구나~~ 하며 편안함을 만끽한다.
여행기를 쓰면서 내가 갔던 곳을 하나하나 되짚어본다. 베네치아, 파도바, 피렌체, 친퀘테레, 로마, 아씨시, 나폴리, 폼페이, 쏘렌토, 아말피, 포지타노...
각 도시마다 색깔이 다르고 내용물이 달라서 행복을 선사해주었지. 말로만 듣던, 책으로만 접하던 르네상스의 현장에서 건축, 조각, 그림을 직접 보면서 가슴이 뛰었고 거기에 실린 역사이야기를 떠올리니 쉽게 자리를 뜰 수 없었다. 각 방면의 천재들을 맞이하면서 오백 년, 천 년을 넘나들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슴 벅찬 즐거움에 피곤한지도 몰랐나보다.
베네치아에 홍수가 나서 많이 잠겼다는데 산마르코 광장의 아름다운 건물들과 유물들을 잘 지켜낼 수 있을런지... 건물 지하에도 꽉 찬 유물들을 서둘러 운반했을까. 벽면과 천정까지 그득찬 프레스코화는 어쩌지... 수위가 187cm까지 올랐다니 스쿠올라의 틴토레또 그림은 괜찮을런지...오랜 세월을 견뎌온 베네치아의 건물들이 잘 버틸거라 믿는 마음. 오늘 뉴스에선 아르노강까지 범람위기에 놓여있다고 전한다. 피렌체의 베키오 다리 주변 상점에 물이 차있다. 베키오 다리도 거의 침수 직전이니 안타깝다. 중세 모습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평안을 주던 곳에 평안이 깃들기를 바랄뿐.
한 나라 한 나라를 집중적으로 다녀도 늘 시간이 부족하다. 떠나기 전에는 이번에는 여유롭게 다니자 다짐하고도 막상 떠나면 내 몸이 다니는 지, 내 머리가 다니는 지, 내 마음은 잘 따라 다니는 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로 정신없이 찾아 다닌다. 도시가 눈에 익을 정도면 다시 새로운 곳으로 떠나고 ... 도착하면 캐리어를 끌고 호텔을 찾아가면서 마음은 두근두근. 여기서는 또 어떤 새로움으로 가슴이 쿵쾅댈지 잔뜩 기대하면서.
그리고 무사히 마치고나면 나는 마음으로, 정신으로 한층 더 성장해나간 걸 느낀다. 일상 생활이 여행으로 인해 여유로움과 힘을 얻는다고나 할까.
여행을 가기 전에 열심히 준비했어도 현장에서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이번에는 동행자들이 외국에서 살아보았고 여행경험이 많아 대처를 잘해 도움을 많이 받았다. 약간의 트러블은 좀더 성숙하기 위한 디딤돌. 다름은 틀림이 아니니까. 또 하나, 여행을 계속하려면 영어를 좀더 유창하게 해야는데 공부하기는 싫으니 ... 모자르면 모자른대로 살아가지 뭐~ 이러니 발전이 안되나. 내가 앞으로 다닐 수 있는 기간이 얼마나 될런지... 해마다 두 나라씩 상세히 다녀보면 좋겠다. 몸은 좀 덜 지치도록 단련하고, 마음은 충동적이지 않도록 단련하고, 머리엔 지식으로 단련해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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