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이탈리아여행 4일) 아카데미아, 페기 미술관, 그림속을 거닐다

정인숙 2019. 9. 22. 01:13

2019. 9. 21

아카데미아 미술관 ㅡ 페기 구겐하임미술관 ㅡ 점심 ㅡ산타마리아 델라 살로테 성당 ㅡ 스쿠올라 그란데 산로코 ㅡ 산타마리아 글로리아사 디 프라리 성당 ㅡ 리얄토 다리



아침에 일어나 샤워하고 거울을 보니 얼굴에 트러블이 잔뜩 올라왔다. 왜 이럴까. 너무 피곤했나?  물이 맞지 않아서?  음식이 맞지 않았나?  화장품이 맞지 않았나?  다행스럽게도  피부연고를 챙겨왔다. 연고만 바르고 아무 것도 바르지 않은 채 길에 나섰다.  베네치아 본섬에 가는 버스를 탔다. 사람이 많지 않은데도 한쪽만 몰려있는 느낌. 일행 두 분이 버스 입구에서 오르지 못해 애태운다. 앞사람이 꽉 막고서 비켜주지 않았던 것.



버스를 내리고 선착장으로 가다가 알아채렸다. 배낭을 털렸네... ㅠ. 이니쌤의 배낭 속에 들어있던 점퍼와 공금 주머니가 사라졌다... 공금은 괜찮다하여도 점퍼는 이번에 새로 사왔다는데 어쩌나.  아침부터 기분이 영 말이 아니다. 이니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 버스에서 뭔가 께림직했는데 내 물건 챙기기에 급급햇으니 미안하여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하겠다.



이니쌤이 먼저 불쾌함을 털고 일어섰다. 다시 선착장으로 가서 배를 타고 아카데미아 미술관에서 하선했다. 친구가 앞서 나가더니 오늘 입장료가 프리란다. 털린 돈이 금새 보상을 받았네...^^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베네치아학파 그림이 몰려있다는 곳. 이 미술관은 원래 산타마리아 델라 카리타 수녀원이었다. 1807년 나폴레옹이 베네치아를 정복하면서 일부 미술품을 파리로 가져가고 이곳에 각 성당에 흩어져 있던 미술품을 모아놓았다. 덕택에 편안하게 관람하나..



확실히 색채가 화려하다. 베네치아에서는 '선'보다는 '색'을 중시여겨서 데생을 하지 않고 바로 색채를 입힌다니 화가들의 직관이 놀랍다. 정말 명암 대비가 뚜렷하다.  

조반니벨리니 형제 그림이 상당히 많다. 티치아노 그림도 있고 틴토레토 그림도 있고..




두 시간을 훌쩍 넘겨 그림속을 거닐다 미술관을 나왔다. 다음은 소운하를 따라 골목을 헤메며 페기 구겐하임미술관으로 고~.  페기 구겐하임(1898 ~ 1979)은 베네치아에 정착해 살면서 가난한 예술가들을 지원하며 그들의 작품을 사준 것이 수집품이 되어 미술관이 되었다.  돈을 참으로 가치있게 쓰셨네...



피카소, 호안미로, 칸딘스키, 달리 등...파리에서 많이 본 현대 미술이 방마다 멋지게 걸려있다. 작은 정원에도 조각품이 운치있게 자리를 잡았고 ....운하를 끼고 있는 쉼터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머리를 식혔다.



점심을 먹으러 어느 식당에 들어갔다가 낭패를 당했다. 오징어 먹물 파스타를 주문했는데 삼십여 분 지나서 나온 것은 호박이 들어간 크림 파스타, 이거 아니라고 해도 늙은 아저씨가 큰소리로 윽박지르며 오징어 파스타란다. 웬만하면 먹어줄텐데 짜고 맛없고...



 결국 오징어먹물파스타로 바꿔 먹었다. 식당에 다른 손님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쳐다보니 바꿔준 듯 하다. 게다가 자릿세를 왕창 받았다. 어느 식당에 가도 기본 맛을 유지한다더니 다시는 식당에 가고싶지 않다.



배를 타면서 바라본 초록색 돔이 멋진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떼 성당에 들어가 또 그림을 본다. 이 성당은 1631년 시작하여 50년 걸쳐 완공. 당시 흑사병으로 베네치아 시민의 1/3이 죽어나가자 성모마리아에게 봉헌하는 성당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 후, 신기하게도 흑사병이 물러갔으니 신의 힘일까, 의학의 힘일까. 

100만 개의 나무 기둥을 박아 바닥을 다진 후, 성당을 건립하였다니 시민들의 신앙심으로 이룩한 멋진 성당이다.

안에 들어가니 빛이 사방에서 들어와 환하다.  보물실에 들어가 티치아노와 틴토레토의 그림을 올려다본다.  앉아서 볼 수가 있어 다행이다.



성당 밖 계단에 앉아 지나는 배들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어 준다. 여기를 지날 때 여기 앉아 있던 사람들이 했던 것처럼. 바람이 시원하고 사람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니 또한 행복해진다.



골목을 돌아 스쿠올라 그란데 산로코에 도착. 내부에 들어가니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벽 전면을 그림으로 도배했다. 곳곳이 금칠로 번쩍거린다. 이곳은 원래 봉사단체 조합 같은 곳인데, 상인들이 돈이 많아지자 내부에 그림으로 치장하고자 공모하게된다. 이때 틴토레토가 한쪽 벽면에 이미 그림을 그려놓고 돈을 받지 않겠다고 수를 써서 몽땅 수주하게되었다.  눈길이 닿는 곳마다 틴토레토의 그림이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계단 양쪽 벽부터 모든 구석구석이 대형 그림으로 도배를 했다. 이럴수가~~.



이층에서는 내일 음악회가 있다고 준비중이다. 내일은 피렌체로 떠나는 날이니 올 수가 없어 매우 아쉽다.

틴토레토 그림이 주는 격정적 구도와 색감에 압도당하고 정신을 못차리는 중에  친구가 글로리아사 성당이 바로 앞에 있으니 그림을 보고 오라고 권한다.  '내 머릿속에 더는 못 들어가~!' 하다가 슬쩍 성당 안에 발을 들여놨다.



앱스 깁숙한 곳에 오로지 성모승천상만이 그려져있다. 아무것도 모시지 않고 성모 승천상만이 있는 교회 앱스. 너무나 강열하여 나도 모르게 끌리 듯 앞으로 나아간다. 위 아래가 다른 색상에 지상에서 손가락 하나가 위를 향하고 천상에서 아기천사의 발가락이 아래를 향한다. 작가의 의도가 '모두가 연결된다' 일까.



리얄토 다리를 찾아간다. 다리 근처로 갈수록 사람들은 어찌나 많은지 광장에서 잠시 쉬자니 고개 돌리면 리얄토 다리다. 이니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다리 쉼을 충분히 한 후, 리얄토 다리를 건넜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바다 가까이 내려왔다. 오늘도 잘 보냈네...




베네치아 학파의 대가 티치아노가 그린 '피에타' 1577년. 막달라 마리아가 다급히 외치는 모습과 예수의 늘어진 몸과 달관한 표정. 이전 그림과는 확실히 다르다.


'리날도와 아르미다'프란체스코 하예즈. 1813년.  십자군의 리날도와 적군 여왕 아르미다의 사랑 이야기. 헨델이 '울게 하소서'를 작곡한 모티브.


'에우로페의 납치' 프란체스코 수카렐리,1740년. 제우스가 흰 황소로 변신하여 에우로파를 납치하는 모습. '유럽' 단어의 시초.


산마르코 광장인가 했더니 알렉산드리아에서 행한 '성 마가의 설교' 조반니 벨리니와 젠틀리 벨리니. 1504 - 1507년. 한쪽 벽면을 다 차지한 대형 그림이다.


'폭풍우' 조르조네. 1505년. 풍경화의 시초라 함. 조르조네는 나무목판에 그림을 그리던 시대에 캔버스를 사용하였고 유화물감 제조법을 터득하여 유화를 그린 이탈리아 최초의 화가였다. 베네치아는 피렌체나 밀라노에서 피신해온 세력가들이 자유롭게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개방성을 지녔다. 조르조네도 이러한 바탕 위에 자신만의 기법을 쌓아 캔버스 위에 바탕색을 두껍게 바른 후, 그 위에 그림을 덧입혀 명암대비를 극대화시켰다. 그는 티치아노의 스승으로 당시 제 1인자의 자리를 구가하였으나, 32살에 아름다운 부인과 사랑을 나누다 흑사병에 감염되어 죽었다. 



그 후에, 제자 티치아노는  캔버스에 유화기법을 가장 잘 구현하는 화가로 등극하였다. 크지 않은 이 그림이 신비하여 오래도록 보았다. 낙원에서 쫒겨난 아담과 이브가 일과 출산의 족쇄에 묶였다는 해석. 당시의 도시 모습과 지금이 별반 다를게 없어 더 신기하다.



'십자가의 처형' 좀더 앞선 세대의 그림이다싶으니 1460년대 그림.


조반니 벨리니의 성모자상. 오른쪽 여인이 상당히 현대적인 미모.


그림 그리는 아이가 눈길을 끌었다. 'Allegory of Painting' 프란체스코 마조토 1768년.



아래 연주하는 세 천사가 예쁘다. '아기 예수 성전 봉헌식' 비토레 카르파쵸 1510.










스쿠올라 그란데


살루테 성당




티치아노의 '성모승천상'




종탑에 종을 울리게 하는 기어. 이 사진을 어디서 찍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리얄토 다리 위에서.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사진 불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