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0일.
한 달에 한 번 가는 천수만 산악회 날이다.
7시에 부석신협 앞에서 출발이다. 버스에 오르니 이제 낯이 익은 얼굴들이 반갑게 맞아주신다.
물과 사과, 큼지막한 떡 한 덩이, 절편, 과자, 쵸콜릿 등이 내 앞에 쌓인다.
시골인심이 후하다더니 서울에서 답사 떠날 때와는 사뭇 다르다.
서울에선 세련된 중장년 어른들이 조용히 차에 올라 조금씩 아침양식을 받아 조금씩 조용히 먹는데 비해
여기는 출발부터 시끌벅쩍하고 푸짐하다. 동네 사람들끼리라 더 활기찬 느낌이랄까.
오늘 일정은 계룡산 등반.
갑사에서 출발하여 연천봉, 관음봉, 삼불봉을 지나 남매탑으로 내려오는 6시간 코스와 금잔디고개에서 남매탑으로 내려오는 세 시간 코스에서 선택하란다.
6시간 코스... 내 허리와 무릎 상태로 힘들까? 좀 힘들겠지만, 도전하기로 했다. 이제 언제 다시 오랴~~. 내 생애 마지막 계룡산 등반이라 생각하니 힘이 솟는다.
갑사 입구. 새 봄 아침 공기가 싱그럽다.
신록으로 내 마음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연초록 잎이 온 천지에 떠있다.
갑사 주변엔 황매화가 가득 피어 마음을 빼앗는다.
여기에서 여섯 시간 등반 팀과 세 시간 등반 팀이 갈린다.
우리쪽은 14명, 그쪽은 20여 명.
연천봉이라... 가보자.
현호색이 나를 붙잡는다. 뒤에 쳐져서 사진을 찍자 총무가 부른다.
사고 위험 때문에 되도록이면 단체 행동해야 한다고... 후다닥 올라오니 다른 사람들이 쉬고 있다.
그틈을 타서 선두에 올랐다.
총무는 산행 내내 제일 뒤에서 회원들을 챙기느라 애쓴다.
총무에게 나이를 물어보니 마흔넷이라 한다.
에너지가 넘치는 총무를 보니 갑자기 내가 늙어간다는 것을 실감한다.
나도 한때 펄펄 기운이 넘쳤겠지 하며 위안한다.
현호색과 개별꽃이 지천이다. 도비산에 가면 야생화가 만발했겠네...
헉헉거리며 땀범벅이 되어 올랐다.
드디어 연천봉이다.
쉼터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뒤에 오는 회원들을 기다렸다.
산에서는 뒤에 처지면 더 힘들다.
나같이 잘 오르지 못하는 사람은 무조건 앞에 가야한다.
관음봉에서 '관음봉은 어디있지?' 하고 찾았다. 힘들으니 정신이 없나보다.
무릎보호대 덕인지 무릎은 아직 괜찮은 듯하다. 허리도 괜찮고... 조심, 조심하면서 한 발 한 발 내딛었다.
관음봉에서 단체 사진 찍고 점심을 먹었다.
밥은 단체로 제공하고 반찬만 가져오라해서 대충 싸갖고 가니 펼쳐 놓기가 민망하다.
모두들 정성어린 반찬을 갖고 오셨다. 배불리 점심을 먹고 커피도 마시고... 다시 출발이다.
예전에 계룡산에 두어 번 올랐었다.
그땐 계룡산이 이렇게 웅장하고 거대한지 깨닫지 못했다.
세 시간 남짓 돌았던 기억.. 한 번은 한 여름, 한 번은 한 겨울이었지.
한 개의 바위가 한 봉우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 돌이 깍여서 길을 내준다. 암반 산행이다.
삼불봉에 오니 안심이 된다. 이제부턴 하산 길만 남았다니... 아이스크림을 선물받았다.
오늘은 온통 신세만 지고 다니는 날이군.
이곳까지 아이스크림 통을 메고와 팔다니... . 한 개당 2천 원, 이백 개 메고 올라온다니 총 매출액은 40만원...
불법이겠지만 그 수고가 안쓰러워그 아저씨 얼굴을 다시 올려보았다.
조심조심 발을 디디며 끝없을 것 같은 계단을 내려와 남매탑에 다달았다.
탑을 둘러 볼 여유가 생긴다. 휴우~~! 그 옛날에 청량사가 여기 있었구나... 오층 석탑과 칠층 석탑에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자연석을 쌓아 올린 듯한 탑이다. 달밤에 여기서 탑돌이 하면 근사하겠다.
드디어 동학사 계곡에 도착하다.
간단히 완주 축하주를 나누며 오늘의 노고를 서로 치하했다.
누구보다도 내 자신한테 뿌듯하다. 한 단계 올라선 듯한 이 충만감.
한 줄기 바람이 휙 불자 꽃비가 날린다. 마치 우리를 반겨주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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