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칠갑산의 가을

정인숙 2013. 10. 31. 19:35

 

 

 

 

 

 

 

 

 

 

 

 

 

동네 엄마들과 가을산행을 다닌다.

이번 주는 좀 멀리 떠났다. 칠갑산...

운전 잘하는 은경씨가 쌩하니 운전하여 서산을 빠져나가 홍성을 지나 청양으로 접어든다.

천문대쪽이 수월하다고 그리로 올라간다더니 방향을 바꿔 장곡사쪽으로 오르자한다.

 

장곡사는 산비탈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절.

작년 늦가을에 남편과 찾았을 때도 지난 여름 친구부부와 갔을 때도 작으마한 부처님이 평안히 맞아주던 절이다.

 

장곡사로 들어가는 길엔 은행나무, 감나무들이 높직하다. 고개를 빼고 올려다본다.

가을빛에 노랗고 붉게 제 색깔을 내고있다. 인간도 나이 들어 저렇게 늠름하고 곱게 물들으면 얼마나 좋을까.

 

괘불탱화 사진을 들여다보고 세월의 흔적을 말해주는 법고와 통나무 밥그릇도 보고 부엌에 걸려있는 조왕신도 보고

상대웅전으로 올라간다.

상대웅전 오르는 길에 처사님이 감을 따고 계시다.

긴 장대에 주머니를 달아 따신다.

잘 익은 감을 몇 개 건네주셔서 맛을 보니 아주 달다.

 

상대웅전에는 국보인 약사여래불과 보물인 비로자나불이 얌전히 앉아계시다.

신을 벗고 안에 들어가 삼배를 올리고 나온다.

나를 위해 가족을 위해 이웃을 위해...

 

이제부터 산행이다. 총 8Km.

두 번이나 왔어도 산행은 처음이다. 여기부터 정상까지가 사찰로.

소나무 길이 아름답게 이어져있다. 간간이 계단도 나오고 쉬엄쉬엄 오르다보니 정상. 571m. 지금껏 다닌 주변 산 중에 제일 높다.

정상에 앉아 지니고 온 음식을 나눠먹고 땀을 훔친다. 이미 속옷까지 흥건히 적었다. 함께 오를 수 있고 즐겁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벗들이 있으니  땀 흘림쯤이야 ....

 

산 아래 굽어보니 산이 겹겹이 펼쳐져있다.

오우! 충청의 알프스라더니 말이 무색치가 않다. 저 아래서 인간들이 아둥바둥 살아가고 있구나...

 

오던 길이 아닌 반대 방향, 장곡로로 접어들었다.

무릎이 괜찮을까 걱정했는데 무릎 보호대를 해서인지 아직은 무사해서 또 기분이 좋다.

제발 육십세까지라도 산에 다니면 얼마나 좋을까나.

 

조금 걸으니 올라오던 길과는 달리 엄청 가파르다.

로프를 잡고 뒤로 쭉쭉 내려간다.

지난 번 교통사고로 어깨가 시원찮은데 괜찮으려나.

하지만, 지금은 내려가는게 주 목적이다. 마음을 모아 내려가는 데만 집중한다.

자갈밭이라 잘못 헛디디면 굴러 떨어진다. 집중! 집중!

 

어느 정도 내려왔나 싶으니 또 내리막길이다.

뒤에서 영아씨가 헉헉대며 힘들어한다. 끝도 없다고...

다시 땀범벅이 되어 내려오기를 수차례. 이정표가 나왔다. 아직도 3km가 남았단다. 시간은 세 시가 가까오는데...

오솔길이 나오면 속도를 내고 오르막에선 기운을 내고...

가을 산이라 마른 잎이 서걱거린다. 낙엽쌓인 길에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았다.

간간이 가을색으로 물들은 나뭇잎을 볼 수있다. 가을에 비가 적게 내려 단풍이 예쁘게 물들지 못했단다.

 

내려오다보니 내가 제일 앞장서고 있다. 이렇게 대견할 수가 ㅎㅎ.

1.7km 부터는 사람소리가 들린다. 사찰로까지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정상을 넘어 장곡로에 들어서선 우리끼리였다.

 반갑다, 인간 세상이.

 

마지막 코스는 거의 6,70도 경사에 계단이다.

밧줄을 잡고 계단을 디디며 조심스레 내려온다.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드디어 하산! 세 시 사십 분이다.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산을 내달은 기분이다.

 

'맛있는 집'이란 식당에 들어서서 비빕밥을 시켰다. 온갖 나물 반찬에 도토리묵, 두부까지 허겁지겁 먹는다. 이 집 음식이 맛있는 건지, 산에 다녀와 맛있는 건지 구분을 못할 정도로 삽시간에 그릇을 비운다. 충청도 산은 대체로 부드러운 능선에 낮은 산이어서 어렵다 여기지 않았는데 복병을 만나 숙제를 해결했으니 뿌듯하고 흐뭇하다.

 

집에 돌아와 씻고 남편 밥해주고 나니 피곤이 몰려온다.

다녀온 이야기를 적다 말고 쓰러져 잠들고 아침에 깨었다. 열한 시간 정도를 잤나보다.

눈도 퉁퉁 손도 발도 퉁퉁 부었다. 혓바늘도 돋았네,  이런~~!

그래도 상쾌한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