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게 유적지에 들어가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열주가 저멀리까지 늘어서있다.
파란 하늘아래 대리석 기둥이 반짝인다.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돌로 단단히 쌓아올린 아치문이 세월을 껴안고 남아있다.
한때 영화를 누린 흔적, 돌무더기들 사이를 걸어본다.
기원전 1500년경 히타이트때 건설된 페르게는 고대 팜필리아의 주요 도시였다.
셀레우코스 왕조, 페르가몬의 지배를 거쳐 로마시대에 들어가면서 페르게는 팜필리아의 중심 도시로 번영했다.
(원래는 실리시아에서 리키아까지 지중해를 따라 활 모양으로 뻗어 있는 길고 좁은 땅이었지만, 로마의 지배를 받을 때 북쪽의 피시디아를 대부분 포함하게 되었다.
원주민과 이주민인 실리시아인 및 그리스인으로 이루어져 있던 팜필리아인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 적이 한번도 없으며, 아나톨리아의 정복자들(프리지아인, 리디아인, 페르시아인,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의 후계자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로마인)에게 끊임없이 혹독한 시련을 당했다.
BC 1세기에 팜필리아인은 피시디아인 및 실리시아인들과 함께 지중해에서 해적 노릇을 했다. 로마 시대에 이르러 팜필리아인은 대부분 그리스 문화에 동화했고, 페르가·아스펜두스·시데에 팜필리아 문명의 유적을 남겼다. -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서)
기독교 성지 순례로도 이곳은 중요하다.
성 바오로가 첫 번째 선교여행으로 이곳을 택했다.
터키엔 기독교의 역사와 어우러진 곳이 많다.
성경 내용을 어렴풋이 떠올리며 퍼즐 맞추 듯 꿰어나간다.
아치로 지어진 로마 문을 따라 들어가면 타워형 헬레니즘 문이 나온다.
페르게는 BC 2,3세기 헬레니즘 시대와 AD 2,3세기 로마시대에 전성기를 이루었다.
유적도 대부분 이시기 것이라고...
열주 도로 가운데로 흐르는 수로. 로마시대 건축술은 볼수록 놀랍다. 감탄~, 감탄~!
로마시대 하맘 (목욕탕). 8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목욕탕이다.
뜨거운 수증기로 땀을 빼고 물로 닦아냈다.
지금도 터키식 목욕탕은 이런 방식이라고.
아고라. 로마시대 장터.
정육점 간판.
모든 상점은 대리석에 조각을 하여 무슨 가게였는지 알렸다.
태양이 대리석에 반사되어 열을 내어 더 뜨겁다.
햇볕과 돌무더기 사이에서 혼미해진 두 사람.
열주 위에 얹어 있던 코린트 장식 조각은 땅에 떨어져있고...
교회도 살펴보고...
페르게는 일찌기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로마 문을 거쳐 나오며 뒤돌아 본다.
밖을 나와 도로를 따라 1, 2분 갔을까.
거대한 스테이디움이 보인다.
저기 관중석에 앉아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을 상상해보고...
스케일에 기가 눌려...
가이드가 돌무더기의 열기를 식히라고 숲속으로 데려왔다.
풀내음이 싱그럽다.
물 구경만 해도 더위가 떠난 듯.
우리네와 똑같은 물레방아가 돌아가니 반갑고 신기하다.
이런 숲 속 호숫물에 백조가 살겠지...
앗, 백조, 아니, 오리다!
피곤하고 더위에 지치고 남편은 계속 짜증내고...
숙소에 들어와 잠시 쉬었다가 머리도 식힐겸 공원에 혼자 나갔다.
'이 먼 곳에 와서 잘 지내다 가야지.
여긴 지중해잖아.
나도 내가 마음에 들지 않거늘 ....'
서운한 마음이 잦아든다.
에페소 맥주를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마음이 시들할 땐 술이 최고야... ^^.
바닷가 공원에 나가니 시민들이 많이 나와 저녁 노을을 즐긴다.
터키에선 커플 모습을 많이 본다.
이슬람 국가여도 유럽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듯....
그들의 행복해하는 모습을 훔쳐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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