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솔꽃모루

고구마 캐기 - 땅속 깊이 박혀 살기

정인숙 2011. 10. 21. 12:17

 

10월, 일요일을 맞아 고구마를 캐기로 하였습니다.

아침 열시가 되자 이집 저집에서 호미를 들고 나섭니다.

고구마가 얼마나 될지 궁금해하면서요.

 

먼저 검은 비닐을 걷어내야지요.

검은 비닐을 걷고 리어카로 옮겨놓고...

한 고랑씩 맡아 캡니다.

 

" 와~, 여기 많아요!"

"에이, 고라니가 다 파먹어서 없어요. 고랑 잘못 잡았네..."

난 번에 밤고구마를 캘 때는 호미로 다 캤는데

호박 고구마는 땅속 깊이 자리잡아 삽으로 가장자리를 파고 호미로 조심스럽게 다가갑니다.

호박고구마는 물을 좋아하여 땅 속 깊이 세로로 박혀있다네요.

 

무, 배추도 이제 제법 자랐습니다.

갓과 쪽파도 열심히 자라고 있습니다.

뒤늦게 피어 난 도라지꽃이 제 존재를 알려줍니다.

 

가을 아침, 싱그런 공기가 상쾌합니다.

여럿이 힘을 합하니 한 시간만에 끝~~.

한 곳에 모아 열 집으로 나누니 그래도 꽤 많은 양이 돌아가네요.

 

오늘 점심은 수제비입니다.

어제 벼베는 날 먹고 남은 아귀 매운탕을 솥단지째 공수 ....ㅋㅋㅋ.

수제비만 떠 넣으면 됩니다.

수제비를 떠서 온 마을 식구들과 손님들까지 나눠먹고...

옥수수님이 저녁에 가마솥 밥을 해먹자고 제안하여

저녁까지 예약되어 있습니다.

 

오후 네 시가 넘어가자 슬슬 꾀가 납니다.

가마솥에 밥을 해서 비빔밥을 하려면 나물을 해야하건만...

언덕 너머 배밭에 다녀오니

엄마들이 벌써 미나리 뜯어 나물 만들고

시금치 솎아 무쳐놓고

무 생채 만들어 놓고...

살림의 여왕, 옥수수님 작품입니다.

 

제 임무는 밥하기...

어른 스무 명중에 가마솥으로 밥을 해 본 유일한 사람입니다 흠흠.

쌀을 안치고 불을 때고... 끓고 난 뒤, 물이 모자란 듯하여 물 좀 더 붓고 불 약하게 조절하고...

조금 기다려 솥뚜껑을 열어보니 하얀 쌀밥이 구수한 냄새를 풍깁니다.

맛을 보니 역쉬~~!

밥을 푸고 누룽지~~, 가마솥 밥의 꽃 누룽지가 잔뜩 눌렀습니다.

누룽지 맛이 환상입니다.

솥에 붙어있는 누룽지를 긁어 숭늉을 끓여놓고 저도 코 박고 밥을 먹었네요.

함께 먹으면 평소보다 훨씬 많이 먹습니다.

대가족에서 이렇게 자라던 어린 시절이 떠오릅니다.

아침에 일어나 오늘은 뭐하고 놀까 궁리하며 하루를 시작하고

놀다 들어와 먹고 다시 나가 놀던 그 시절....

시골에 사니 어린 시절이 한층 가깝게 다가오는 듯합니다.

 

배도 부르고 고구마도 가득 얻었으니 오늘도 보람찬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