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올래? 아하! 제주 올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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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에 올래? 아하! 제주 올레~.” 올레는 제주 민가에서 볼 수 있는 거릿길에서 집으로 출입하기 위한 좁고 긴 골목이다. 제주올레 길을 소개하기 위하여 서명숙(53) ‘(사단법인)제주올레’ 이사장이 행설아 포럼 장에 들어섰다. 제주올레 모자를 쓰고 등산화를 신은 편한 옷차림으로 마치 친구가 그동안 걸어온 여정을 이야기하듯, 혹은 터키의 수피 춤을 추는 명상가를 연상시키며 잔잔하게 때로는 살아있는 언어로 청중들을 사로잡는다.
서명숙 (사)제주올레 이사장. '삶, 내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주제로 포럼을 이끌었다.
제2회 행설아 포럼 장에 90여명의 청중이 참여했다.
“30년 가까이 기자 생활을 하며 열정은 식지 않는데, 몸은 물먹은 솜처럼 가라앉기만 했어요. 퇴근하면 축 처져 손가락도 까닥하기 싫다가 습관적으로 일어나 다시 달려 나가는 생활… 어느 날 ‘내 인생의 후반전을 어떻게 풀어나가야하나’ 문득 떠올리니 나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더군요.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사회적인 ‘나’가 아니라, 나는 무엇인지 끊임없이 의문이 떠올라 나를 찾아가기 위한 여행을 떠나기로 했지요.” 우리나라 최초인 언론사 여성 편집장직을 그만두려 했을 때, 후배들은 사회적 모델을 원했고 어머니는 딸의 지위가 자랑스러워 극구 만류했다. 하지만 서 이사장은 어떤 집단의 대표로서 죽음까지 감수하고 싶지는 않았다. 건강이 나빠져서 걷기 시작한 후로 지나온 삶을 돌아보니 나를 살피고 싶은 마음이 사회적 역할보다 더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 뚜껑이 시도 때도 없이 열리고 마감시간을 철저히 지켜서 ‘왕뚜껑’ ‘마녀’라고 후배들이 별명을 붙여줄 만큼 일에만 매달렸어요. 1분 1초가 아까워 지척인 거리도 택시를 탓을 정도니까요. 40대 후반에 들어서서 건강이 나빠져서 새로운 애인으로 걷기를 택했지요. 처음에는 동네길, 공원을 걷다가 한강도 나가보고 보길도도 걸으며 대한민국에는 걸을 길이 너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걷기에 심취하면서 내가 살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두자고 결론짓고 시사저널 편집장 일을 그만두었어요.” 2005년 ‘오마이뉴스’편집장으로 다시 영입되었으나, 산티아고로 향한 꿈으로 2년의 임기를 채 마치지 못했다. 그리고 떠난 산티아고 길.
길치이고 덜렁이에 영어회화도 못하지만, 지인 한비야씨가 “도보여행은 표지판보고 가면되니 길치라도 상관없다.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싼 물건으로 준비해라. 말이 안 통해도 표정이 풍부하고 친화적인 성격과 기자라는 직업으로 단련되어있어 상관없다”고 용기를 북돋아주어 나를 찾기 위한 길을 찾아 나섰다. 내 인생의 하프타임 산티아고 산티아고 길은 전 세계 도보 여행가들의 로망이다. 국적불문의 남녀노소가 알베르게에서 하룻밤을 함께 보내며 우정을 쌓는다. 사람들은 길을 걷다가 만나 서로의 건강을 따뜻하게 챙겨주며 행복을 나눈다. 첫 며칠간, 서 이사장은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어디선가 휴대폰 소리가 들릴 정도로 직장생활을 떨쳐내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매달려있었다. 회사를 스스로 그만두었으면서도 왠지 밀려난 느낌, 패배한 느낌을 쉬 떨쳐낼 수 없었고 전화한통 없는 후배들에게 느끼는 서운한 감정과 싸우고 있었다. 그 길을 걸으며 6일이 넘어서자 온몸에서 기름기와 피폐해진 영혼이 빠져나가고 새롭게 부유해지는 것을 느꼈다. 모든 사람들에게 온유해지고 삶이 풍요로워지는 새로운 행복을 맛볼 수 있었다. 밥을 먹지 않아도 배부르고 마치 흙탕물이 가라앉은 듯 마음이 편안해졌다. 비오는 날, 부침개로 여행객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사랑을 한껏 받고 파울로 코엘료와 만나는 특별한 행운까지 누리며 산티아고에 푹 빠져 끝없이 걸었다. 그 길에서 33일째에 한 영국여자를 만났다. “산티아고는 내게 위안과 자유, 평화를 주었다.” “우리는 선택받고 행복을 만끽한 사람이다. 너희 나라는 지구 저쪽 먼 나라다. 사람들이 모두 이 길에 와서 행복을 누리기는 어렵다. 너희나라에 가서 행복을 누리는 길을 만들면 어떠냐. 너는 너의 까미노(Camino de Santiago)를 만들어라. 나는 내 나라에 가서 나의 까미노를 만들겠다.” 우연히 만나 길을 함께 걸은 영국인은 서이사장의 마음을 뒤흔들었다. 대학 진학이후로 도시의 문명과 익명성이 좋아서 잠시 다녀가던 고향 제주도. 하지만 그 길을 걸으면서 유년시절과 줄곧 대화를 나누고 제주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에서 잠시도 벗어날 수 없었다. 영국인과 이야기하면서 제주의 풍광과 추억어린 길이 떠올라 자신감이 솟구쳤다. “그래, 내가 만들자!” 내 인생의 후반전 제주올레 산티아고에서 돌아와 중앙일보에 10회에 걸쳐 여행이야기를 쓴다. 여행 마지막 날 피니스떼레서 바다를 바라보며 마음이 탁 트이는 그 느낌을 실어 제주도에 걷는 길을 만들고자하는 열망을 간직한 채. 드디어 꿈을 펼친다. 지인들과 제주올레 코스를 탐사하면서 ‘이건 대박이다’ ‘나는 그동안 너무 큰 길로만 다녔다’ ‘떨어진 동백꽃이 너무 아름답다’ ‘야! 길 전부가 다 죽여준다’는 감탄사에 힘을 얻어 ‘(사단법인)제주올레’를 2007년 9월 발족한다. “이제는 대중들에게 홍보를 해야겠기에 유명 인사들을 앞세웠어요. 매월 한 코스 한 코스 개장식을 할 때마다 한비야, 손석희, 양희은, 오숙희씨 등이 참석하여 함께 걷고 올레꾼들과 교감을 나누었죠.” 이러한 노력 끝에 작년 한 해 동안 다녀간 사람이 3만 명을 넘어 4만 명에 이른다. 덕분에 주변 토속 음식과 소박한 숙소도 활황을 입으니 지역경제에 보탬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리라.
제주올레 길을 찾는 사람들 대다수가 여자들이다. 길에서 제주의 풍광과 음식과 사람에 감동하고 올레전도사로 변한다. 간세다리로 걸으며 평화를 맛보는 길 제주올레 길을 한번 걸어본 사람은 스스로 홍보대사가 된다. 친구를 부르고 가족을 부르고 함께 걸으며 그동안 못 나눈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간다. 올레 길은 소박하다. 포장도로가 아니고 차가 다닐 수 없는 흙길이다. 홍당무밭을 둘러싼 돌담길을 걷고 오름을 오른다. 모래밭 길, 해안 길, 마을 안 길…
제주의 속살을 드러내는 길이다. 때로는 막혔던 길이 살아난다. 사람들은 길을 걸으며 추억을 나누고 순수한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다.
서이사장의 길에 대한 철학은 속도 위주의 길이 아니다. “사람이 걸을 수 있는 곳은 다 길이다. 해풍을 맞으며 간세다리로 쉬엄쉬엄 걸으며 나를 놓아주는 길이다.” 또한, 제주 올레 길은 명상의 길이다. 어린 아들을 잃은 한 시인은 걷다가 바다를 바라보며 주저앉아 펑펑 눈물을 쏟아냈다. “아무도 나를 위로해주지 못했는데, 사람들이 한 천 마디 말보다 말없이 출렁대는 바다가 더 큰 위로를 해주었다.” 어느 시니어부부는 퇴직 후, 살아갈 날을 걱정하다가 올레 길을 딱 하루 걷고“왜 도시에서 살려고 연연하는가. 자연으로 터전을 옮기자 ”고 합의하여 양평으로 옮겨 살고 있다고 전한다.
“의식 있는 실버세대들이 전국 각지로 스스로 분산해서 살면 더 여유 있고 건강하게, 즐겁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아서 인생 후반기를 구상할 시간이 없었어요. 자기한테 작전을 구상하여 인생 후반기를 보내야하지 않을까요. ” 제주올레길을 따라 걸으며 긴 휴식을 허락하자고 한다. 간세다리로 휘적휘적 걸으며 햇살을 받고 해풍을 맞으며 평화를 맛보자고 유혹한다. “여행 한번으로 인생이 바뀝니다. 빠른 속도와 소음에서 벗어나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여행.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내가 행복할 수 있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여행… 내가 바뀌고 세상이 바뀝니다.”
제주올레 코스 안내(www.jejuolle.org). 각 코스별 버튼을 클릭하면 코스별 상세 정보를 볼 수 있다.
현재 올레 길은 193km, 12코스까지 열려있다. 앞으로 10개 코스를 더 열어 제주도를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제주사람답게 해풍에 까맣게 그을은 서이사장의 얼굴에 빛이 서린다. 산티아고에서 꾼 꿈을 실현할 날이 멀지 않아 그럴까. 행설아 5기 출신인 최정윤(53)씨는 용인시 근처에 숨겨진 옛길을 발견하고 또 하나의 올레 길을 만들려 꿈꾼다. 지친 마음을 위로하고 새롭게 힘을 얻을 수 있는 마을길을 만들고 싶어서다. 봄볕이 하루가 다르게 따뜻하게 다가온다. 마음은 벌써 제주도 해풍을 맞으며 쉬엄쉬엄 걷는 올레 길에 가있다. 그 길 위에서 오래 전 마을 길과 어린 ‘나’를 떠올리겠지. 아무래도 올 봄에는 올레 길에서 낯익은 얼굴들끼리 마주쳐 ‘아! 행설아’하며 즐겁게 소리칠 것 같다.
[글/사진_ 정인숙 해피리포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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