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반딧불이들의 보금자리 - 반디교실

정인숙 2009. 2. 3. 20:00

“아래층에 사는 내 친구, 누구 누구 누구일까요♬ 인정 많고 예쁜 내 친구 한솔이 내 친구♬ 한솔이는 나랑 같이 공부방에 다니죠♬ 공부방엔 친구 많아 슬프지 않아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함께 하는 친구들♬ 공부방 친구들♬ 공부방에 있는 어린이 모두 모두 내친구♬”                      

 

고양시 능곡주민자치센타 5층에서 아이들의 노래 소리가 울려 퍼진다. 양 벽면에 아이들 작품과 사진이 가득한 강당으로 학부모와 후원자들이 활짝 웃으며 들어선다. 오늘은 ‘2008반디교실장기자랑과 후원의밤’이 열리는 날이다.

 

 

 

 △ 이은영교장과 반디교실 아이들. 상가 건물 이층(42평)에 월 46만원을 내고 세들어 있다.


공부방노래로 잔치를 시작했다. 1년간 활동한 모습이 영상으로 흐르고 애니메이션 기법으로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포착하여 순간 이동시키자 환호성과 웃음이 터져 나온다.


빨간 루돌프 뿔로 치장한 1, 2학년 어린이들은 앙증맞은 노래로 분위기를 띄우고 고학년 남자 어린이들은 무대 구석에 숨어 엉거주춤하니 합창한다. 이어서 임하빈(11)어린이가 시 ‘은행줍는날’을 고개를 푹 숙인 채 떨면서 낭송한다.


“은행줍는날, 내 동생이 잔다. … 에이, 왜 다은은 안 줍지, 짜증나게시리. 다은은 계속 잔다. 빨리 좀 일어나지. 같이 좀 줍게. 화난다. 쳇, 기분이 나쁘다. 은행 줍기가 끝났다. 내 동생은 아직도 자고 있다. 에잇, 이놈에 동생 아직도 자고 있어. 확 침 뱉었다. 하하 꼴좋다. 그런데 아빠가 화내셨다. 다시 닦아. 그렇게 생각해보니 왠지 미안하다. ‘미안’ 속으로 말했다.”


귀여운 1학년 장준영(8)어린이가 오카리나 연주를 끝내자 드디어 오늘의 역작 ‘흑설공주’ 연극을 시작한다.


“숙제와 공부로 매일 꽉 차있고 같이 놀 친구도 없고 꿈도 희망도 없이 메마른 우리들의 생활에 달콤한 물을 길어 올리고 싶어 이 연극을 준비했습니다.”


어린이 아홉 명이 무대 위에서 부산하게 오간다. 쑥스러워하며 구석에서 재빨리 대사를 외고…연극 내용과 상관없이 갈채와 웃음소리가 넘쳐나는 공연. 옆자리에 자리한 할머니는 손자가 무대에 오르자 눈시울을 붉힌다.


풋풋한 아이들이 내는 맑은 웃음소리와 따뜻한 눈길이 맛있는 음식 냄새와 어우러져 5층 강당에는 행복이 가득 흐른다.

 

△ 능곡주민센터 5층 강당에서 열린 '반디교실장기자랑' 시작 전. 아이들과 학부모, 후원인 백여명이 참석하였다.

 

 


 

혼자 있는 애들이 걱정스러워요

 

'반디교실'은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방과후 공부방이다. 공연 전에 공부방에서 어린이들을 만났다.


규태(12)는 3학년 때부터 이곳에서 숙제하고 책 읽고 저녁밥을 먹고 6시경에 집으로 간다. “밥이 맛있어서 젤로 좋아요. 개그맨이 되고 싶어 흑설공주 역을 자원했는데 어려워요”라며 연습에 몰두한다.


형민(11)이는 나이에 비해 몹시 의젓했다.


“일곱 살부터 집에 혼자 있다가 여기 다닌 지 세 달 되었어요. 집에 혼자 있는 어린애들이 걱정스러워요. 행동도 막 하고 욕도 심하게 하거든요. 공부방에 오니 친구들도 사귀고 공부도 배우고 밥도 맛있고 정말 좋아요.”


오늘 공연에서 신하 역을 맡은 나현(12), 디자이너가 꿈이라는 은솔(11), 피아노를 잘 치고싶다는 한별(11)이는 그 나이 소녀들답게 한껏 멋을 부리고 있다.

 

“공부방에 나이 구분이 없어서 피해가 많아요. 저희도 1학년 때부터 다녔지만… 어린애들은 너무 뛰어다니고 소란스러워요. 4학년부터는 방을 따로 쓰면 좋겠어요. 조용히 책 읽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싶어요. 더 넓고 쾌적한 환경이 필요해요.”


“엄마가 아파요. 빨리 나으시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가 돈 많이 버는 거요.”

 

“맘껏 놀면 좋겠어요.”

 

“좋은 집으로 이사 가면 좋겠어요.”


새해소망을 묻자 본인의 꿈보다 집안걱정을 더 많이 한다. 그래도 친구들과 스스럼없이 장난치고 낯선 이에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히 드러내며 쉽게 다가와 아이들 특유의 순수함이 묻어난다.

 

 

 


‘나눔과 어울림’을 체득

 

이은영 교장(44)은 공연 영상물을 점검하느라 좀처럼 틈 내기가 어렵다. 컴퓨터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반디교실의 설립 취지를 잔잔히 설명한다.


IMF이후 가족이 해체되면서 가정환경이 어려운 아이들이 방치되어서 돌보고자 2003년에 문을 열었어요.


반디에서는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어린이 교육공동체'를 목표로 학교공부는 물론 다양한 특별활동으로 ‘나눔과 어울림’을 자연스레 체득할 수가 있어요.

 

올해에는 아이들이 애니메이션 수업을 굉장히 좋아했어요. 일반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영역도 전문가들이 도와주셔서 좋은 성과를 낼 수가 있었지요.”

“이 지역은 한부모가정, 조손가정이 많아서 방과 후에 애들이 갈 데가 없고 학원도 갈 형편이 안돼요. 보호자가 신경을 못 쓰고, 기회가 없어서 자신이 뭘 잘하는지 찾기도 어렵고요.


여기에 오면 학습 외에도 미술, 종이접기, 도자기 만들기 등 체험학습을 많이 하게 되죠. 이것저것 접하면서 자신의 자질을 발견하고 키워나갈 수가 있지요.


최소한 반디교실 같은 공간이 필요치 않은 사회가 바람직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회가 빨리 오기도 요원하고… 사회적 문제가 낳은 불쌍한 아이들이 많아요.”


선생님, 저희 아버지 못 오신대요.”

 

“네, 슬기가 노래를 연습해야하니 일단 보내세요.”

 

“선생님, 책이 찢어졌어요.”

 

“고기와 반찬, 오징어무침 해주신다고 했어요. 집에 있는 거 옮겨주시면 돼요. 6시 반부터예요.”


전화가 계속 걸려오고 아이들은 시끌벅적하니 준비 상황을 알린다.

 

- 운영은 어떻게 이뤄지나요?

 

“아이들이 초등부에 34명, 중등부에 열 명입니다. 현재 상근교사가 세 명이고 자원봉사자는 인근 항공대학생들과 주부들 10명이예요. 일반교사는 학습을 지도하고 특별활동은 전문가들이 도와주고 있어요. 월요일부터 금요일, 오후1시에서 7시까지 문을 열어요. 중등부는 그 이후에 열어야하는데 교사 확보가 문제예요. 퇴직하신 분들이 오셔서 도와주면 좋겠어요.


그동안 후원금으로 운영하다가 정부가 보조해주어 좀 더 안정이 되었어요. 정부지원금으로 30%가량 충당되죠. 처음에 18평 빌라에서 시작하였어요. 공간이 좁아서 월세를 내야하는 이곳으로 이전했고요. 정부지원금보다는 주변에서 도와주는 작은 힘을 모아 자력으로 이끌어가려고 노력합니다.”

 

-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6년 동안 이끌어온 힘이 있다면요?


“애들이지요. 1학년 때 들어와서 지금 6학년인 아이들이 육체적, 정신적으로 성장한 것을 보면 보람 있어요. 여기 아이들은 환경이 어려워서 그런지 나이에 비해 조숙해요. 집에서 궂은일을 맡아서 하고 살림걱정을 하면서도 여기서 어린 동생들을 잘 보살피고 남을 배려하며 생활하거든요.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삶을 배우고 자립적인 태도를 키우고 있지요.”

 

 


급식도우미가 당장 필요해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스스로  자라나고 있다니 참 기특하네요. 선생님의 새해 소망이 궁금합니다.


“재정 문제가 제일 심각해요. 현재 상근교사가 50만 원 정도 밖에 못 받아요. 좋은 마음으로 일하러 오시는 분들이니 만큼 처우도 잘 해 주어야하건만…


사실 이곳에 오려는 아이들이 늘어나는 데 지원은 오히려 동결이 되었어요. 한 예로, 지난 12월 17일자로 공공근로 급식도우미 지원이 끝났어요. 예년이면 1월에 다시 배치 받거든요.

 

그런데 내년부터 지역아동센타에 배치를 못한다는군요. 시 예산이 부족하다고 공공근로 인원을 400여명에서 200여명으로 줄인 탓이지요.


아이들이 여기서 저녁 먹고 돌아가거든요. 급식도우미가 없으면 교사들이 밥만 해야 합니다. 오늘도 교사들이 밥하고 국 끓이고 반찬 하느라 아이들 교육하기가 어려웠어요. 지역아동센타가 단순히 모여 놀거나 급식소 역할밖에 못하게 되는 거죠.


시에서 아동시설에 대한 마인드가 부족하고 현실을 몰라서 무조건 예산을 삭감하는데 윗자리 분들이 하루라도 함께 생활해보면 좋겠어요. 문 닫을 수도 없고 앞으로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캄캄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아이들을 돌보아야 한다는 철학이 필요하군요.


“원칙과 철학이 교사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이끄는 힘이지요. 식자재도 저희는 생협을 이용해요. 처음에는 ‘한살림’에서, 지금은 ‘흙살림생협’에서 구입하죠. 식비가 많이 들어도 좋은 걸 먹여야한다는 원칙이 있어요.


그래서인지 처음에 왔을 때는 푸석푸석하던 애들이 뽀얗지는 게 보여요. 잘 먹고 여러 애들과 지내니까 성격도 밝아지고 자존감도 생기고 사랑을 나누게 됩니다. 그만큼 소중한 보금자리이지요.”


인터뷰 내내 아이들이 사소한 일로 들락거려도 이은영씨는 한결같이 온화한 표정으로 다독인다. 아이들을 지켜내는 그 마음을 영상에서 엿볼 수 있었다.


“오염되지 않는 깨끗한 곳에서만 반짝일 수 있는 너희들의 불빛이 사라지지 않도록 우리 어른들이 너희를 지켜줄게. 혼자서는 밝힐 수 없는 반딧불이처럼 함께 모여서 커다란 불빛을 만들어야지…”

 

 

반디교실

주소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토당동 848-3 현대하이츠빌라 다동 102호

이메일 : todangbandi@hanmail.net

누리집 : http://cafe.daum.net/bandischool

연락처 : 031) 818-1236 / 019-377-9960 (이은영)

후원방법) 자원교사 및 봉사자 : 영어, 급식봉사, 간식도우미, 청소…….

          물품지원 : 도서, 교육활동 자료, 난방기구, 학용품 …….

          계좌이체 : 농협 738-12-050992 (예금주: 이은영)

 


[글/사진_해피리포터 정인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