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한 동이를 붓는 마음으로 은행잎이 도로를 가득 뒤덮은 늦가을 오후 송래형(66세) 씨와의 인터뷰를 위해 아름다운재단을 찾았다. 웃음을 가득 띤 맑은 얼굴에서 곧은 품성이 느껴진다. 송래형 씨는 아름다운재단 ‘은빛겨자씨기금’의 최초출연자이다. 그는 국민연금이 고갈될 위험이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후손에게 물려줘야 할 좋은 제도와 재원이 사라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만 60세가 되던 2003년 정년퇴직과 함께 국민연금을 받게 되자 기금출연을 결심했다. “연금 수령액의 절반정도는 회사에서 보조해 주는 돈입니다. 때문에 이것은 제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했지요. 평소 아름다운재단이 건전하고 투명하게 기금을 관리, 운영한다는 평을 익히 들어왔기 때문에 믿고 맡길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이렇게 미약한 힘이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을까 싶어 망설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도도히 흐르는 한강물을 보고 있자니 ‘어리석고 부질없어도 강물 한 동이를 부어 죽어가는 나무를 살리는 것이 의미 있지 않겠는가’ 라는 깨우침이 생기더군요.“ 그는 단순히 은빛겨자씨기금의 종자돈을 내놓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이후 본인의 국민연금을 전액 기부하기 시작했고, 주위사람들을 대상으로 ‘국민연금 1% 나눔운동’을 벌여 기금을 더욱 확장시켜 나갔다. 송씨의 꾸준한 노력과 열정 덕에 6년간 1만 명이 넘는 기부자들이 은빛겨자씨기금에 새로 동참했고, 어느새 기금총액은 6억 원을 넘어섰다. 많은 이들의 정성이 담긴 기금은 전액 홀로 사는 노인을 돕는 데 쓰이고 있다. 어머님을 생각하며 시작한 일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효도를 못한 것이 너무 가슴에 맺혔어요. 그래서 이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일찍 아버님을 여의고 어머님 혼자 저희 형제를 키우느라 고생이 정말 많으셨어요. 하지만 장성한 이후에 사업이 계속 어려워서 어머님을 큰누님 댁에 모셨어요. 그리고는 끝내 저희 집에 모셔보지 못하고 임종을 맞고 말았지요. 그래서 그게 늘 가슴에 남아요. 그 날 이후 언제나 제 어머님을 돕는 심정으로 불우한 처지에 계신 노인들을 돕고 있습니다. 기금의 명칭 가운데 ‘은빛’은 실버를, ‘겨자씨’는 기독교 윤리로 세상의 작은 씨앗이 부풀어 큰 열매를 맺는 나무로 커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불교도셨던 어머니와 달리 저는 기독교도입니다만, 그건 그렇게 중요한 게 아닌 듯 해요. 실제로 기금에 동참하고 있는 기부자 면면을 보면, 스님, 수녀, 목사, 유림, 전라도 사람, 경상도 사람,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 등으로 매우 다양합니다. 모두들 그저 낮은 곳을 지향하고 서로 소통하려 노력하는 사람들일 뿐이에요. 이제는 세상 사람들이 나에게 해를 끼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안 들어요. 언젠가는 내 일에 동참할 수 있는 선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믿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신뢰가 저절로 가네요.” 내내 차분했던 그가 ‘나눔’이야기를 시작하자 금세 상기되어 행복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작년 10월에 제가 시신을 기증했다는 기사를 보고 어느 수감자가 편지를 보냈어요. 본인도 장기를 기증하고 포장마차 장사하면서 불우노인을 돕겠다고 하더군요. 참 고마웠지요. 앞으로 효의 개념을 바꾸어야 해요. 내 핏줄에만 연연하지 말고 내 친부모가 아니더라도 사각지대에 놓인 분들을 돌보는 것이 바로 효입니다.” | |||||
아름드리 희망나무로 자라난 은빛겨자씨 그는 요즘 매년 꾸준히 배분하는데도 기금이 다시 채워지는 기적을 확인하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특히나 많은 초등생과 학부모, 교사들이 기금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고 있어 하루하루가 즐겁다. 우리사회가 이러한 희망을 만드는 사람들로 인하여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기에. 그는 경로우대대상(65세 이상)이 되어 대중교통 무료 탑승이 가능해진 뒤부터는 절약된 교통비를 모아 ‘티끌모아 태산기금’을 창안하여 불우한 노인들을 돕기 시작했다. 또 1999년에는 새 천년을 맞아 장기기증협회에 안구를 기증하기로 서약을 했다. 좁은 땅에 봉분 만드는 것에 반대하여 추념식수심기운동(1999.8)에 동참하였고, 아파트 층간 소음 줄이기 운동(2006.8)을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에 제안했다. 2006년에는 교통 분담금을 복지 기금으로 사용하자고 청원했다. 실로 놀라운 실천력이다. 언제나 나와 남이 따로따로가 아니라 함께 하고 있음을 온 몸으로 실천하며 보여 준 송래형 씨. 이미 많은 행복을 누린 그이지만, 남은 인생의 후반기에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저는 보약 한재 먹지 않아도 참 건강합니다. 해로운 음식을 먹지 않고 좋은 공기 마시며 늘 자연과 가까이 살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또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일관되게 실천하도록 늘 염두에 두고 살지요. 그렇게 나눔과 순환을 실천하며 살다가 때가 되면 자연의 품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삶, 성공한 삶이 아닐까요?” [글_ 정인숙 / 해피리포터, 사진_ 강홍수 / 행복설계아카데미6기] | |||||
이재흥 (weirdo@makehope.or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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