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들이 만난 사람
내가 먹는 식품 - 알고, 선택합시다
“작은 애가 가렵다고 온몸을 긁적이는데 치료가 되지 않았어요. 어느 날, 우연히 안병수씨 방송을 보고는 이 책을 읽었어요. 마침 멜라민 파동도 있기에 과자가 나쁘다고 계속 알려주면서 과자와 청량음료를 일체 끊었더니 신기하게도 긁지를 않더라고요. 저도 과자나 청량음료가 나쁘다고만 막연히 알고 있었지 구체적으로 왜 나쁜지는 잘 몰랐었거든요.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니 사 먹을 것이 없네요.”
동네 서점에서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책을 빼 들자 주인이 덧붙인다. 어디에나 식당 간판이 눈에 띄고 상점마다 먹을 거리가 가득 쌓여 있어도 선뜻 선택하기가 주저해진다. 정제당과 정제유, 가공식품이 몸을 망가뜨릴 뿐 아니라, 마음까지 병들게 한다니 아무리 배가 고파도 집으로 발길이 향해진다.
깨달음이 ‘알려야 한다’로
라면, 스낵, 초코파이, 캔디, 껌, 아이스크림, 패스트 후드, 가공 치즈와 버터, 햄과 소시지, 바나나우유 같은 가공유, 끝없이 새롭게 태어나는 청량음료, 드링크….무엇이, 왜 나쁜지 글로, 강연으로 열심히 외치고 다니는 안병수씨(53세)는 무슨 이야기를 들려줄까.
강서구 등촌동의 한 오피스텔에서 맑은 얼굴의 주인공을 만났다. 사무실 한 쪽 벽면에는 일본어, 영어, 한국어로 된 식품관련 책들이 가득하다. 부엌 싱크대 위에는 각종 드링크가 가지런히 놓여있고 언뜻 보이는 화장실에는 기름병이 쌓여있다. 유명제과업체에서 과자 만드는 일을 성실히 수행하던 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안씨는 일본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식원성증후군> “과자회사에 신입사원으로 입사를 하면 품질관리와 맛에 대한 훈련을 받아요. 기술개발연구원들 앞으로 전 날 전국 각 공장에서 생산한 과자가 기다리고 있지요. 외관으로 측정한 후, 먹어봅니다. 밀가루 함량이나, 향료, 설탕 량이 적절히 들어갔나를 분석하는 거죠. 남들은 살찌는 것이 두려워 소량을 먹었으나, 저는 원래 마른 체형이라 걱정 없이 많이 먹었어요. 한 십 년 지나니 이상하게 무기력해지고 항상 피로하며 집중이 어려워졌어요. 무엇보다도 심혈관에 이상이 생겨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지요. 그때 일본의 과자회사 사장이 건네준 이 책이 눈에 띄어 밤새워 읽고 나니 문제점이 무엇인지 다가오더라고요.”
- 과자를 많이 먹어서라기보다는 회사라는 조직생활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회사를 그만두고 세달 쉬고 BT업계에 2년 정도 근무하였는데 일의 강도가 훨씬 강했어요. 그 당시 단것을 일체 먹지 않으니 육체적으로 힘들고 스트레스를 받아도 몸이 맑아지는 느낌이었어요. 과자회사 다닐 때보다 의욕도 생겼지요. 그때 스스로 깨닫고 저술에 몰두하는 계기가 되었지요.”
- 그런 깨달음이 식품 하나하나에 까지 분석하게 되었군요.
“<식원성>에서 소개한 책들이 궁금해서 계속 읽다 보니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되어 충격을 받았어요. 일본 책들은 식품문제를 넓게 다루었고 미국 책들은 깊이 있게 다루어 점차 자료가 쌓여갔지요. 처음에는 정말 인공감미료가 인체에 나쁜지 저도 혼란스러웠는데, 한 5년간 꾸준히 책을 읽으면서 깨닫고는 ‘알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2003년부터 집필에 몰두했습니다.”
- 사무실이 작고 혼자 일하셔서 놀랬습니다. 현재 활동은 어떻게 하시는지.
“강의와 글쓰기, 공부를 주로 합니다. 여기가 조용하여 혼자서 공부하고, 생각하고, 글쓰기는 참 좋습니다. 실험하기가 어려워서 조금 아쉽지요. 강연은 생협이나 한살림 주최로 주부들에게 주로 하고 학교에도 나갑니다. 크게 조직화하자는 제안이 있지만, 순수성이 깨질 것 같아 신중히 고려하고 있습니다. 현재 환경단체들의 자문을 맡고 있고… 시민단체에 소속되어 직접 활동에 나서기보다는 강연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선생님과 가족의 식생활이 궁금합니다.
“그전에는 인공조미료나 설탕의 유해성을 구체적으로 잘 모르니까 아들하고 줄곧 탐닉했어요. 기준만 잘 지키면 괜찮으려니 했지요. 그렇게 막연히 아는 것과 구체적으로 알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큰 차이가 있더군요. 지금은 쌀이나 콩류, 장류는 부모님이 농사지신 것으로 먹고 채소류나 과일은 생협에서 구입합니다.
오래 전부터 아내가 바깥 음식을 싫어하여 외식은 거의 안하고 사무실에 올 때는 현미밥으로 도시락을 싸 옵니다. 고기도 잘 먹고 친구들과 술자리도 즐기지만, 정제당과 정제유, 가공식품을 멀리하는 식생활이 습관이 되면 가끔 먹는 외식이나 술자리 음식 등은 몸 속에서 자연스레 정화가 되니까 큰 문제가 없어요. 유해성을 모르고 지속적으로 먹는 것이 문제입니다.”
소비자가 철저히 가려내야
-‘식생활을 바꾸어야 한다’는 불씨를 지피셨는데 확산된 불길을 현실적으로 구체화시켜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확산되었다고는 보기 힘들어요. 식습관은 쉽게 변치 않으니까요. 그래도 번져가는 관심을 조직적으로 이끌고 실적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합니다. 다행히 언론에서 소개해주어 효과적이고요. 앞으로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개발하려고 합니다. 참여한 아이들이 변하려면 얼마나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만드느냐가 관건이니까요.”
-책을 읽고 나니, 소비를 미덕으로 ‘빨리 빨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깨달으면서 느리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지시는 듯합니다. 시민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식품은 평생 먹어야 하므로 시간이 걸리더라도 성분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알고 먹으면 선택할 수 있고 억제할 수 있지요. 식품회사도 과거에 비해서 타르색소 같은 인공색소나 인공첨가물을 쓰지 않으려 하지만, 여론에 등 떠밀려가는 격이지요. 실제로 웰빙 과자인 냥 선전해도 향료나 유화제, 팽창제를 다 쓰고 있어요. 소비자가 까다로울 만치 철저히 가려내어 첨가물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건강을 지키는 첫 걸음이랄까요. 건강하게 자연의 혜택을 그대로 살린 프랑스의 푸알린 빵이나 캐나다의 오메가뉴트리션 유지 같은 제품을 만들도록 소비자의 의식이 높아져야 해요. 식품업자는 ‘나와 내 가족이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는 좋은 식품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만들어야 합니다. 양심적인 회사는 소비자의 선택으로부터 나옵니다.”
사람을 생각하는 소중한 마음, 생명을 지키고자 하는 열정으로 공부하고 글 쓰면서 바르게 먹기를 호소하고 다니는 안병수씨. 식품안전이 더 이상 거론되지 않으면 전원에서 한가롭게 바둑 두며 살고자 하는 그의 꿈이 이루어질까.
바깥은 이미 어둠이 깔렸다. 당산역에 닿으니 값싼 튀김류와 정크식품류가 하루 일과를 마치고 피곤에 절어 걸어가는 시민들을 향해 손짓한다. 시장 만능주의를 기본 정책으로 삼는 한, 빈부의 격차는 점점 벌어지고 거리의 음식은 식품의 위험성에 눈 돌릴 새 없이 살아가는 저소득층을 향해 뻗어 나갈 터이다.
면담 일시 : 2008년 11월 8일
*안병수씨는 1984년부터 16년간 국내 유명 과자회사의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가공식품의 유해성에 눈을 떠 회사를 그만두고 이 문제에 대해 강연 및 저술활동, 칼럼 기고, 언론홍보 등을 하고 있다. 저서로 <과자, 내 아이를 해치는 달콤한 유혹>, <내 아이를 해치는 맛있는 유혹 트랜스지방>, <과자가 무서워요> 등이 있고, <인간이 만든 위대한 속임수 식품첨가물>을 번역했으며, <식원성증후군>을 감수했다.
<꽃들>편집위원 정인숙 isuk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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