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박승애 서울시문화유산해설사

정인숙 2008. 12. 2. 11:56

역사를 배우고, 문화로 소통합니다
박승애 서울시 문화유산 해설사



“이곳 석어당(昔御堂) 앞마당에서 허준이 귀양 가기 전에 무릎 꿇고 있었고, 인목대비가 광해군이 행한 서른여섯가지 죄목을 따졌었지요. 인목대비가 10년간 갇혀 지내며 눈물 흘리던 자리에 내 발자국이 겹쳐질 수 있다고 생각해보세요.”

잡상(장식)이나 양생(지붕 위 흰색), 단청을 하지 않은 조촐한 건물 앞에서 손짓하며 설명하는 박승애(51세) 서울시 문화유산 해설사(일본어)의 눈빛이 우리 역사에 대한 애잔함으로 잠시 흔들린다.
일본어책 번역을 하는 틈틈이 해설사로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박승애씨는 현재 덕수궁과 경복궁에서 활동하고 있다.
“어! 이 자리는 무슨 흔적이죠?”

관람객과 함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이제껏 무심히 지나치던 돌덩이까지 궁금하다.

“이 자리는 ‘드무’라는 솥이 있던 자리예요. 목조로 지어진 궁궐에 불이 날 경우 방화에 사용하려고 네 귀퉁이에 솥을 걸고 물을 담아 두었었지요.”

고종의 가족사진을 보면서 구한말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듣자 모두가 숙연해진다. 덕혜옹주의 유치원으로 사용하였다는 준명당(浚?堂)·에 이르자 박씨는 마치 어린 시절의 친구인 듯, 준비해 온 덕혜옹주의 사진을 보여주며 옹주의 슬픈 운명에 마음 아파한다.

전시회 관람 차 덕수궁에 몇 번 드나들었어도 우측 궁궐을 소상히 접하기는 처음이었다. 뒤뜰 소나무 숲으로 들어가니 정관헌이 운치 있게 모습을 드러낸다. 박씨의 설명을 들으니 정관헌에서 고종이 차를 마시는 듯 가까이 다가온다. 유현문으로 드나들며 영리해지고 싶어 한 덕혜옹주처럼 그 문을 지나며 모두들 역사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가을 햇살을 받아 퇴색한 아름다움이 더욱 빛나고 있다.

문화유산에 대해 배우고 가르치며 시민들과 소통한다는 박승애씨

역사가 이루어진 현장에 관심을

두 시간여 관람을 끝내고 근처 찻집에 마주앉았다.

- 서울시 문화유산해설사로 일하면서 어떤 보람을 느끼나요?

“배운다는 기쁨이 가장 크죠. 회원들끼리 소모임으로 공부하고 서울시에서 재교육을 한 달에 한 번 실시하니 매번 새로워요. 현재 6기까지 배출하여 130명 정도가 12개 코스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저는 3기 출신으로 2005년부터 활동했어요. 퇴직하신 분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는데 열정이 대단합니다. 자원봉사와 공부, 문화유적을 통한 사회와의 소통을 함께 할 수 있어 환영받지요.

그리고 친구도 사귈 수 있어요. 지난 번에 일본인 여성 한명이 신청을 해서 설명해주었어요. 우리에게는 생소한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는 직업이라네요. 마침 일본책 번역을 막 마친 후라, 책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눈 후 메일을 교환하며 친구로 지내고 있어요.

바쁜 생활에도 틈을 내어 이, 삼 일간 한국으로 건너와 유적들을 살펴보고 간다고 하네요. 반면, 일본인 남성 한 분에게 설명을 해야 할 때는 동양적 사고방식 때문인지 둘 다 어색해져요. 일본인들은 주로 문화유적 마니아들이 오기 때문에 긴장이 되죠.”

- 어려움이 있다면요?

“신청했다가 연락도 없이 안 오는 경우나 늦게 나오는 경우에 좀 난감하죠. 서로간의 약속을 지키는 작은 일부터 문화적인 품위를 지키는 첫 걸음이 아닐까요. 또 더운 여름철이나 추운 겨울에 어려워요. 비오는 날도 힘들고...

지난번에 전남대 학생 세 명과 약속을 했는데 공교롭게도 비가 몹시 세차게 내렸어요. 그래도 어찌나 진지하게 듣는지 힘들지가 않더군요. 사실 관람객이 역사에 관심을 갖고 의사소통이 이루어지면 외부조건이야 쯤이야 문제가 되지 않지요.”

- 시민들이나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이런 프로그램이 효율적으로 관리되어 시민들이 활발히 이용하면 좋겠어요. 이 앞을 몇 십년간 지나가도 덕수궁 내부에 들어오지 않았던 분들이 많아요. 덕수궁은 우리 역사의 아픈 흔적들을 담고 있어요. 임진왜란 후와 구한말 역사의 현장이지요.

IT강국을 상징하는 첨단과 오천년 역사의 전통이 함께 어우러져 서울의 랜드 마크로서 역할을 하도록 정책적 지원도 활발히 이루어졌으면 하고요. 드라마 촬영 장소에 광분하기보다는 역사가 이루어진 현장에 더 관심을 갖길 바라지요.”

사람에 대한 신뢰와 끊임없는 호기심으로 도전했다는 박승애 씨. 전통적인 한국의 여인처럼 차분하고 친근하면서도 적극적인 품성이 외국인들에게 더할 나위없는 친구가 되어줄 듯 싶다.

해설을 듣고 나니 대한문이 다시 보인다. 늘어선 고종의 장례행렬이 그 위로 겹쳐졌다. 비운의 역사는 오늘을 살며 힘겨워하는 사람들에게 새롭게 옷깃을 여밀 힘을 줄 수 있으리라.



[글, 사진_ 해피리포터 정인숙]

중고교 영어교사로 50세까지 지냈다. 글읽고 음악듣고 영화보기를 즐긴다. 나무를 살펴보며 걷는 새로운 즐거움에 빠져있다. 해피리포터로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나 가열차게 글을 쓰고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