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열번째] 가난하게 살아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은?

정인숙 2008. 8. 15. 22:07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 가난하게 살아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은?
리포터 : 정인숙 | 2008.07.24 | 조회 : 20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 지하1층은 식당, 프로그램실, 세탁실. 1층은 주차장, 창고. 2층은 사무실, 회의실. 3층은 침실, 건강관리실, 컴퓨터실. 4층은 휴게실/도서실, 취침실, 상담실. 5층은  취침실(침대), 상담실로  쓰인다.

 

오후 여섯시가 다가오자 식당 안이 분주해진다. 여섯시부터 자활근무자와 실무자가 식사하기 때문이다 .


 

오늘 저녁 반찬은 배추김치, 오이부추무침, 돼지불고기, 보리밥, 두부된장국이다. 백금자 영양사가 오이무침과 불고기, 조리원이 밥, 50대의 자원봉사자가 국 배식을 담당하고 필자 앞에는 김치가 놓여 있다.

 

서른 명 정도의 배식이 끝나고 '일꾼들'과 필자가  밥을 먹었다. 밥맛이 좋고 반찬도 깔끔하다.

640분이 되자, 사람들이 출입구너머까지 줄지어 서있다. 하루 200여명의 노숙인들이 식사를 한다. 처음 참가한 탓에 반찬 담아주는 손이 떨리고 어색하다.

 

옆자리 백 영양사는 “맛있게 드십시오. 어머! 선생님, 오랜만에 뵙네요. 어디 다녀오셨어요?” 자연스레 인사하며 안부도 묻고 반찬도 잽싸게 담아준다. 이곳에서 노숙인들의 호칭은 선생님이다. 선뜻 ‘선생님’이라 부르지도 못하고 식판 든 손을 살펴 표정을 어림짐작하고 김치만 열심히 내어준다. 7시가 넘으면서 식당 안이 꽉 찼다. 일반식당과 달리 식사시간이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조용히 혼자 먹고 일어서는 사람들...

 

720. 오늘 번호 176번을 마지막으로 배식이 끝났다. 조금 뒤, 한 명이 헐레벌떡 들어선다. 한 쪽에서 반찬통 설거지가 끝나가지만, 백 영양사는 남은 반찬을 챙겨 식판에 담아준다.

 

식탁을 닦고 그릇을 소독기에 넣고 바닥청소를 일사천리로 끝낸다. 모두들 하루 일과를 무사히 마친 안도감으로 식당 안에는 즐거움이 넘친다.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고 깨끗한 숙소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것...

평범한 사람들은 누구나 취하는 일상생활의 소소함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노숙인.

 

‘어떻게 해야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까’  

 

노숙인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이하 센터) 대표 임영인 신부(49)의 고민은 먹고 잠자는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어떻게 해야 인간다움을 잃지 않을까’로 나아간다. 임 신부는 80년대부터 빈민들과 함께 살아왔다. 경제적인 지원으로도 빈곤을 해결할 수 없었고, 상대적인 박탈감이 심해지고 행복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현상에 부딪치면서 고민이 깊어갔다.

 

 이선근 간사(왼쪽), 임영인 신부, 인문학 강좌가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실.

 

더구나 일자리 중심으로 생각하는 사회체계로는 거리생활로 몸이 망가지고 어려서부터 홀로 일어서야하는 노숙인들로선 노숙생활을 빠져나오기가 매우 힘들었다.

 

노숙인들에게 종합복지관 역할을 하는 센터. 기본적으로 숙소, 상담, 식당역할이 이루어지고 일자리 지원 자활사업, 의료사업이 펼쳐지지만 경제적인 지원과 훈련을 넘어선 그 무엇이 필요했다. 교육.

 

 센터내의 숙소 전경. 하루밤에  이백명 정도가  머문다.


 

“인문학은 가난하게 살아도 당당하게 살 수 있는 길을 보여줘”

 

교육은 사람을 생각하게 만들고 삶을 풍요롭게 하고 무엇보다 자신의 가치를 소중히 여겨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 센터에서는 사고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2005년 인문학교실을 개설하여 지금까지 교육하고 있다.

 

현재 수강생은 24. 빈곤에서 빠져나오려 급급하기보다 가난해도 인간적인 품위를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살 수 있도록 자존감을 높이는 교육을 하는 것.

 

“인문학을 통해 이야기하려는 것은 자신의 성찰을 통해 길을 찾으려는 것이다.

 

노숙인들이 인문학을 공부하겠다고 찾아와 ‘나도 가치 있는 삶을 풍요롭게 살고 싶어’ 시나 소설을 읽고 역사와 철학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나를 찾아나서는 글을 쓴다.

 

이 일을 99년부터 함께 한 이선근 간사(31)는 사회안전망이 부실한 우리 사회에서는 누구나 노숙인이 될 수 있다며 노숙생활은 결코 나쁜 생활도 열등한 삶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서울역 진료소에서 진료하는 모습(왼쪽). 평일 오후 7 30분부터 두시간 동안 하루 평균 30여명을 진료한다. 야간아웃리치 모습(오른쪽). 새벽시간까지 심야 아웃리치활동을 통해 상담과 응급구호활동, 물품지급 활동을 한다.


 

임 신부가 센터 소개를 마치자 동행한 희망제작소 행복설계아카데미수강생들이 질문하였다.

 

: 인문학 교육의 질을 어디까지 생각하느냐.

 

: 현대사회는 물질이 풍부하다. 소비를 많이 하는 현대인은 미래세대의 자원을 빌려 쓰고 있다. 우리는 좀 더 검소하고 살고 나누어야 하지 않을까. 빈곤계층은 어려서부터의 축적이나 노하우가 힘들어서 현실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가 힘들다. 자금 지원만으로 성공하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잘 사는 사람들을 쫓아가려 성공에 급급하기 보다는 가난하고 허술해도 꼿꼿한 삶을 영위하도록 가치관을 정립하면 어떨까. 가난해도 자존감을 갖고 내 방식대로 살아가겠다하는.

 

: 재정적 지원은?

 

: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이라 후원이 거의 없다. 서울시에서 기본운영비로 매달 700만원을 지원하지만, 매달 센터에 쓰이는 기본 공과금이 750만원이다. 나머지는 알아서 운영하라는 방침이기에 항상 부족하고 어렵다.

 

: 자활에 성공한 사례는?

 

: 노숙인의 30%는 고아원 출신이고 평균 나이는 50. 평균 학력은 초등학교. 약물중독, 폭력가정 출신이 대부분이고, 50% 18세 이전부터 생계유지하려고 노동했다. 이런 사람들에게 왜 제대로 살지 못하느냐고 닦달할 수가 있을까.

 

자원봉사자가 한 달에 약 500명이다. 이중에 아웃리치(out-reach)봉사는 거리 노숙인들을 찾아다니며 말벗이 되어준다. 처음에는 대인기피증과 우울증 등으로 벽을 쌓거나 본인을 과장시켜 말하던 사람들이 수 십 차례 만나면서 마음을 드러내어 세상과 연결의 고리를 튼다.

 

사람사이의 섬으로 살다가 진솔한 자기 이야기를 꺼내고 고민을 이야기 하는 것을 성공이라고 본다. 어려서부터 상처받은 사람들이 우리사회에 들어오려면 우리 자신들이 먼저 사랑으로 넘쳐있어야  이 사람들이 사회의 일원으로 편하게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 인문학 강좌 참여도는?

: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씩 이루어진다. 철학, 예술사, 문학, 역사, 작문 등 1 2학기제, 6과목 15강의 강좌를 기본으로 현장학습, 문화체험, 사례관리를 진행한다. 한 학기 평균 20명이며 이번 강좌에는 24명이 신청하여 현재 18명이 수강하고 있다.

 

변화는 놀랍다. 예를 들면, 초등 4학년 중퇴자가 ‘파우스트’를 읽고 글을 쓴다. 새로운 느낌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동적인 이야기를 쓴다. 강좌에 참여하면서 현실과 인문학 사이의 괴리에 힘들어하고 더 나아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자기 인생이 후회스러워 번민한다.

 

이곳을 거쳐 택시운전수로 취업하고서도 택시를 건물 앞에 세우고 강좌를 수강한 사람도 있다.  한 사람만으로도 성과 아니겠는가.

 

전통적인 마을 공동체를 꿈꾸다

 

거리는 저녁노을에 물들어가고, 용산구 갈월동 6호선 숙대입구역 근처 5층 센터 건물주변으로 노숙인들이 한 명, 두 명 모여든다.

 

유럽에서 ‘인간도서관’은 사회의 편견을 줄이는 목적으로 시작했다. 어느 날 런던에서는 26권의 책(인간) 100인의 ‘독자’가 교대로 빌렸는데, 가장 인기가 있었던 책은 노숙인이었던 사람으로 8명이 읽었다고 한다.

 

임 신부는 어쩔 수 없는 상황으로 겪은 노숙생활을 감추지 않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노숙인 라디오방송’을 설립하기를 꿈꾼다. 현재의 삶을 받아들이고 극복하여 다시 사람들 사이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사람들과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소통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숙인들이 일하는 사회적 기업을 세우고자하는 이선근 간사에게 시민들에게 부탁하고픈 말을 물어보았다.

 

“전통적인 마을의 모습은 어떠했는가. 어려운 이웃을 동네사람들이 함께 보살피고 문제 해결에 함께 힘쓰는 공동체 아니었는가. 이런 관점에서 노숙인들을 바라보면 무섭고 피해야 할 사람들, 쓸데없는 데 경비를 쓴다는 시각이 바뀌어 내 이웃으로 소중히 여기지 않을까싶다.

 

이 간사는 질문 하나를 덧붙인다. “우리 삶에서 과연 어떤 것이 성공적인 삶일까요?

 

저녁식사 한 끼, 피곤한 몸을 눕힐 잠자리를 해결하려 모여드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의문이 생긴다.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할 사람들은 어쩌면 일상생활을 습관처럼 살아가는 우리들이 아닐까하는.

 

 

[_해피탐사단 정인숙, 사진_희망제작소,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

 

다시서기상담보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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