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냄새가 많이 날수록 할 일이 많아져요.”

정인숙 2008. 8. 15. 22:05
[독거노인주치의맺기운동본부] “냄새가 많이 날수록 할 일이 많아져요.”
리포터 : 정인숙 | 2008.07.10 | 조회 : 12

옥수동 고갯길에 오르니 30여 년 전으로 시간이 멈춰진다. 난곡 산동네를 오르내리며 의료봉사활동을 펼치던 젊은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련히 맴도는 기억속의 풍경... 왕진 가방을 들고 아픈 사람들을 찾아 골목길을 오르는 하얀 가운의 의사선생님...과거가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길에 나섰다. 모두들 제 몫 챙기기에 몰두한 이 시대에 어떻게 변함없이 가난한 환자들을 찾아다니며 진료할 수 있을까.


백인미(49세) ‘독거노인주치의맺기운동본부(이하 독주본)’ 대표는 가정의학전문의로 옥수동에 위치한 어느 의원에서 일하고 있다. 

 

 
▲ 독거노인주치의맺기운동본부 백인미 대표. '독주본'에 전 인생을 바치겠다는 열정만큼 일터에서도  '씩씩한 의사, 활기찬 병원'이라는 신념을 보여준다.

 

백 대표는 특이한 이력을 지니고 있다. 그는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공부하고 유학을 준비하던 29세에 병이 났다. 병명은 뇌종양. 병을 계기로 방향을 바꾸어서 그 뒤 10여 년간 의학을 공부하였다.


전문의를 수료한 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왕진을 전문으로 하는 ‘방문진료센타’를 열어 아픈 환자들을 돌보며 ‘독주본’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사회공헌대상부문 보건복지부장관상’을 받아 ‘독주본’을 세상에 다시 한 번 알렸다.


인터뷰는 진찰실에서 시작하여 전화로까지 이어졌다.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의학 선택

-사회학에서 의학으로 바꾼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람과의 관계에 관심을 가져 사회학 공부를 하였는데 외롭고 힘든 투병생활을 하면서 의학 기술을 지니면 이웃사람들에게 좀 더 실체적으로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퇴원하고 곧바로 의대 준비를 했지요.”


-뒤늦게 의학공부를 하면서 힘들지 않았나요?

“10년 어린 친구들과 공부하면서 결혼하고 아기 낳고... 힘든 일을 한꺼번에 해버려서 사실 힘든지도 모르고 지나갔어요. 혼자가 아니라 시부모님과 남편이 많이 도와주었지요. 시부모님이 늙어가는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노인문제에  관심이 갔어요.”


-처음 활동은 어디서 시작했나요?

“1998년에 사당의원 원장님이 방문진료를 제안하셨어요. 사당의원에서 가난하고 연세 많은 분들에 관한 데이터를 받아 ‘방문진료센타’를 열었지요. 그 당시에 하루에 열 명씩 산동네를 누비며 왕진을 다녔고요. 아침 여덟시부터 새벽 한시까지 1년 동안 3,000건이 넘을 정도로 다녔지만, 결국 재정난으로 문을 닫아야했어요.”


-어떠한 방식으로 어느 범위까지 활동하나요?

“대학생 지킴이 봉사단 두명과 의사 한명이 조를 이루어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을  일주일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진찰하고 처방한 뒤에 평가를 해요. 상태가 심한 분은 의뢰서를 작성하여 관계기관에 의뢰하기도 하고요. 사실 손 잡아 주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는 듯싶어요. 주로 퇴근 후나, 점심시간, 병원진료가 한가한 시간에 다녀야 하니 멀리 가기는 힘들지요.


밖에서 환자가 기다려서 자리를 내주고 대기실에서 기다렸다.

“야! 너 참 착하고 귀엽게 생겼다. 아프지 않게 여기 좀 만질게. 이 상처에는 두 종류의 연고를 쓰셔야 해요. 집에 항생제 있으세요? 상처가 벌어진 데와 벌겋게 부은 데를 구분해서 바르셔야 해요.”


가깝게 지내는 동네 아주머니가 말을 건네 듯 어린환자를 일단 안심시키고 보호자에게는  권위적이지 않은 목소리로 시원스레 설명해주는 즐거운 의사선생님이다.


-방문진료 시 경비는 어떻게 처리하는지요?

“항상 운영 경비가 큰 문제였어요. 초반기에 오로지 방문만 다녔는데 결국 문을 닫았지요. ‘혼자 만족하기보다는 운동을 확산하는 게 의미 있다’는 주위 분들의 충고로 운동본부를 만들었지요. 현재 대한가정의학회, 대한노인병학회, 서울시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로터리 클럽 등이 후원하고 있어요. 지난 4년 동안은 SK Telecom에서 큰 힘을 주었지요. 물론, 의사들 주머니도 털고. 그래도 운영상의 어려움으로 ‘독주본’이 문을 닫은 적도 있어요.


지금은 점차 장기요양보험이 적용될 정도로 복지 혜택이 제도화 되고 있지만, 2000년 처음 시작할 때는 돈 없고 병들은 노인들은 버려진다는 말이 실감났어요.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복지 분야에 희망이 보여 기쁩니다.”

 

 
 성동구 행당동 거주 독거노인 진료모습. 의료보장구, 의료비, 약제비도 지원한다.

 

    

제도적인 정착을 위해 사람들 끌어 모으기

 

- ‘초심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고 하는데 계속 유지하는 비결이랄까요?

“사당동이나 행당동에서 어느 날은 하루에 50번씩 왕진 다니면서도 참 즐거웠어요. 왜 의사가 되었는지 존재이유를 어르신들이 알려주거든요. 요즈음에는 왕진보다는 이 일을 알려서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이 일의 소중함을 주변의 의사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끌어들이는 데 주력하죠.


2006년 하버드대에서 공부한 것이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나아갈 길을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한 동안 병원을 비워 병원은 망했지만, 얻은 것이 많았어요.”


-하버드대에서는 무슨 공부를 했나요?

“‘방문진료’와 ‘NGO경영’을 공부했어요. 전 세계 NGO들과 토론하면서 의료복지, 방문진료, 방문진료연구회를 꼭 실현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직접 왕진 다니는 것도 기쁘지만, 제도적인 정착을 위해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도 새삼 깨닫고요. 의욕만 앞서서 두 번씩이나 병원 문을 닫은 것도 큰 경험이었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알리는지요?

“의대 1,2년생들은 사회봉사나 사회에 기여하겠다는 마음이 강하므로 그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합니다. 레지던트나, 개원의들에게도 일년에 두 번씩 열리는 학회 때 부스를 만들어 홍보하고 감동을 나누기위해 함께 진료 다니기도 하고요. 언론을 통해서도 적극적으로 홍보하여 뜻이 있는 기업체나 개인이 동참하도록 하는 게 주된 일이지요.”


 

“비영리단체일수록 가장 효율적으로 경영해야한다”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요?

‘참여연대’만큼 조직을 키워야죠. 하하하. 현재 서울, 경기, 천안에 조직되어있는데, 조만간 부산이나 인천에서도 생길 거예요. 온 국민이 ‘독주본’에 대해 알게끔 해야죠. 


어려움은 경비문제예요. 같이 일하는 사회복지사, 의사들이 보람을 느끼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야하고 함께 식사라도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자원 활동가들 교통비라도 주어야하고...


의사자원봉사자도 늘여야하고... 침구사, 물리치료사, 사회복지사들이 같이 일할 수 있도록 키워야지요. ”

 

 
▲ 교육워크샵에 '독주본'활동 의사, 물리치료사, 지역국회의원, 구의원, 주부, 대학생, 노인의료봉사단이 참석하였다.

 

희망제작소 박원순 상임이사의 “비영리단체일수록 가장 효율적으로 경영해야한다”는 말을 깊이 새기며 효율적 경영을 위해 연구를 거듭한다는 백인미 대표에게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본다.


-방문진료할 때 누추한 환경과 냄새에는 어떻게 대처하나요?

“사회학공부하면서 빈민촌에 많이 다녔고 ‘고용관계’를 주제로 논문을 쓰기위해 탄광촌인 사북에 혼자 보름동안 머문 적도 있어 낯설지가 않아요.


한번은 똥 범벅을 한 할머니가 있었는데 아들이 정신병자라 더 심했어요. 그럴 경우에 지역사회단체에 의뢰해서 아들은 시설에 보내고 할머니는 적절히 처치해요. 냄새에 따라 어떤 병인지 구분하기도 하고 냄새가 많이 날수록 할 일이 많아져요. 그래서 우리가 필요하구요. 하하하”


백 대표의 웃음은 시원한 바람이 되어 여름날의 더위를 식혀준다. 30여 년 전의 젊은이들도 이 사회 어디에선가 젊은 날의 꿈을 펼치고 있을까. 사회변혁의 꿈을 안고 고뇌하던 그 시절을 잊지 않고 조금씩 발걸음을 내딛으며 함께 나아가고 있을까.


길 위에 나서니 다시 언덕길이다. 한낮의 태양은 뜨겁게 내리쬐지만, 왕진 가방을 들고 이 언덕길에 오르내리는 한 사람을 생각하니 더위는 저만큼 물러나고 걷기가 한결 즐거워졌다.

 

 

 

[글_정인숙/해피탐사단, 사진_정인숙,독거노인주치의운동본부]


독거노인주치의운동본부

주      소 : 서울시 성동구 금호동1가 506-1 3층

전      화 : 02-6212-8885

Fax        : 02-2292-4885

홈페이지 : www.silvermed.or.kr

E - mail  : baikim6027@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