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나긴 싸움 ‘습지보존운동’의 원동력
일산(一山)은 산이 하나뿐이다. 고봉산. 고봉산 입구에는 ‘고양녹색소비자연대’ 푯말이 붙은 통나무 컨테이너가 있고 습지가 펼쳐져있다. 산을 오르내리며 긴 싸움을 지켜보던 시민들은 불도저가 나타나 산을 훼손할 듯하거나 쓰레기가 쌓여 있으면 즉각 연락을 취한다. 어디로? 경찰서나 시청이 아닌 ‘고양녹색소비자연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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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를 내려는 학교옆에 꽃밭을 조성하는 '녹색'회원들. 한창 꽃을 피우고 있는 고봉산 입구 아름다운 꽃길. |
처음에는 고봉산을 지켜야겠다는 한 시민의 의지로 싸움이 시작되었다. 2000년 봄에 창립하여 활동하기 시작한 ‘고양녹색소비자연대(이하 녹색)’는 생태환경을 알아보기 위해 고봉산 습지를 조사하다가 각종 천연생물이 살아있는 1급수가 흐르는 것을 발견하였다. 당시 대한주택공사(이하 주공)는 주변 사유지 5만여 평을 사들어 택지 개발 후 12층 아파트를 신축할 예정이었다. ‘녹색’은 주민들과 함께 습지보존을 고양시청에 건의하였고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2003년, 산을 깎아내리기 시작하자 산에 텐트 치고 교대로 지키기, 시청 앞 1인 시위 등의 싸움을 벌인다. 이 와중에 불도저에 맞서 저항하다가 산에서 굴러 떨어져 다치고 고발을 당하기도 했으나, 주공은 12층 아파트에서 저층 아파트로, 다시 생태마을로 입장을 바꿔가며 협상을 벌이다가 결국 습지를 보존키로 하고 고양시에 주변 1만 5천 평을 되팔았다.
습지는 보존하였으나, 도로 관통이 문제
하지만,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현재 습지주변 3만여 평의 산을 허물고 도로를 내고 있다. 도로 끄트머리에 ‘녹색’은 꽃길을 가꾸며 장기적인 싸움을 벌이고 있다.
습지 옆으로 차가 다니면, 배기가스와 소음으로 인하여 인접한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안전과 동식물의 생태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김은영 실장은 “시공업체는 주민들이 잠잠해지는 새벽이나 휴일에 공사를 강행하곤 한다”며 주민들의 지속적인 동참을 호소한다.
‘녹색’ 사무실은 주엽역 근처 건물에 세들어있다. 김 실장과 상담 담당자는 ‘고봉산생태지킴이활동청소년자원봉사자’ 상담을 하느라 전화에 매달려있고 이보라 간사는 생태지도자 심화과정을 진행 중이었다.
녹색 삶을 살고픈 사람들의 작은 실천 운동
김은영 실장은 “원래 녹색 소비자운동은 환경에 좋은 것을 구매하여 소비, 버리는 것까지 자연과 어울리는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작은 실천 운동”이라며 “주민들이 환경 영향 평가에서부터 1인 시위까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지금의 성과를 이룩하였다”고 주민들에게 감사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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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보라 간사와 김은영 실장. 회원들이 생태관련 자료를
직접 만들고 모았다. |
김 실장은 자신의 역할에 대해 “시민, 회원들이 함께 실천하고 녹색소비자연대는 격려하고 도움을 주는 역할”이라고 소개한다.
‘녹색’에서는 첫째, 소비자 운동, 둘째, 생태 관련 운동, 셋째, 생협 관련 일을 한다.
소비자 피해조사나 물가조사, 각종 소비자 문제를 전화나 방문으로 제보를 받은 후, 전문가와 함께 문제를 파헤치고 해결책을 모색한다.
소비경제교육은 직접 학교로 찾아가 신용, 금전관리, 용돈 관리 등을 구체적으로 시킨다. 또한, 숲 에너지교육(초등생 대상), 유해폐기물교육(성인 대상)을 하며, 생협 연대와 힘을 합쳐 광우병이나 공정무역 등 현안에 대해서도 올바른 정보를 알린다.
더불어 생활 속에서 놓치기 쉬운 플러그 뽑기, 분리수거 잘하기, 전자제품 재활용하기, 음식물 쓰레기 줄이기 등의 작은 실천 운동을 벌인다.
생협 운동은 식량이 무기화되어가는 시대에 대처하기 위해 유기농산물 생산과 식량의 자급자족을 목표로 생산자(농촌)와 소비자(도시)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생명을 지키기 위한 운동이다.
느리지만, 조금씩 변화하면서 성과 쌓여
현재 회원 수는 3백 명 정도이고 운영은 회원들 회비와 공모사업 참여 등을 통해 마련한다. 회원 수와 별도로 시민들로 구성된 모니터팀, 생태팀, 생협팀이 활발히 활동하며 고봉산이나 광우병 같은 민감한 사안일 경우는 많은 시민들이 참여한다.
김 실장은 2000년부터 일한 소감을 묻자“처음에는 시민운동이 무엇인지 몰랐어요. 일하는 것이 재미있고 신기하기도 하여 몰두하다보니 제 자신의 마음가짐 및 생활태도가 바뀌더군요. 좋은 분들을 만나 생활 속에서 실천하게 되니 기쁘고 보람 있지요” 라고 답한다.
“하지만, 시민운동은 성격상 느리게 변하는 것이잖아요. 목표나 욕심에 빨리 도달하지 못할 때는 조급해지고 안타깝죠. 이만큼의 시간이 걸려 내가 변했는데,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기는 얼마나 어려운가를 깨달으면서 조금씩 걸음을 내딛어요. 돌이켜보면 느리지만, 꾸준히 걸어온 것이 성과가 꽤 있었고요.”
아쉬운 것은 “좋은 프로그램이 있어도 경비가 부족하여 좌절될 때는 참 속상하죠. 앞으로는 사람들에게 녹색소비라는 단어가 생소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선택하는 날이 올 것이라 믿는다”며 다시 상담전화에 매달린다.
“자연공부는 마음공부” - 생태지도자과정
생태지도자연수과정에 빠끔히 문을 열고 들어갔다. 코딱지 강사로 유명한 유창의 씨는 “자연 공부는 철들기 위한 공부, 마음공부”라며 “어떤 것을 먹느냐에 따라 성질, 성격이 달라진다“고 열변을 토한다. 수강생들은 몸과 마음을 열고 주변 식물에 대한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자연생태계를 일상생활과 연결 지은 두 시간 동안의 열띤 강의가 눈 깜짝할 새에 지나자 강사도 수강생도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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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쇠뜨기 풀과 복숭아나무 잎, 엄나무 잎, 대추나무 잎 등을 인간의 역사와 연관지어 설명하고 있다. |
해마다 실시하는 생태지도자 과정을 비롯한 생태팀은 주변 전문가들의 도움으로 자랑할 만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이보라 간사가 전한다. 생태지도자는 서오릉, 고봉산 등 주변 생태조사 및 교육을 담당한다.
시민들의 삶에 다가서는 ‘녹색’
고봉산 습지 주변 사진을 찍고 있으니 지나가던 등산객이 다가온다. “‘녹색’에서 나오셨어요?”하며 “일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 묻고는 불도저 한대를 불안스레 쳐다본다.
한 건설업체는 습지 옆으로 도로를 놓느라 파헤치고 주공에서는 습지 위쪽으로 생태공원을 조성하려는데 시민 단체가 협조를 하지 않아 작업이 늦어진다고 주장한다. 봄볕에 올챙이가 커가고 가을 바람에 갈대가 흔들리는 습지는 언제가 돼야 편안하게 사람들 곁으로 다가올 수 있을까.
고봉산은 천천히 자신의 일부를 빼앗긴 채로 오월의 파란 하늘아래 싱그런 초록빛을 내뿜으며 우뚝 서있다. 녹색이 점점 사라져가는 도시에서의 삶은 생명을 잃는다. 시민들의 의지와 땀을 모아 우리 땅을 녹색으로 이끌어가는 ‘녹색’운동은 우리 삶을 녹색으로 가득 차게 하리라 믿는다.
[글/사진 :정인숙_해피탐사단]
고양녹색소비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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