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한 차례 먹은 후라, 빈그릇만 ㅎㅎ
아칭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오늘은 달모임 날이라, 모두 모여 물레산 넘어 마을길 걷고 저수지 주변에 쓰레기도 줍자고 계획했는데.
음식은 작년에 태어나 장닭으로 자란 닭들을 잡아 먹고 호박고지 떡도 해먹자 했는데. 어쩌나...
음식 준비를 다해놨으니 비가 와도 계획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찐순아빠가 닭장에 들어가 꼬꼬댁 소리를 외면하고 닭을 잡았다.
그 와중에 한 마리가 목이 비틀린 채 도망가버렸다나...
온 동네 풀숲을 뒤져도 없더니 어둠이 내리자 닭장 앞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더라고 쯔쯔 ...
비가 내리는 와중에 장작불을 지펴 물을 끓여 털을 뽑고 불로 그슬른다.
내장을 훝어내고 끓는 물속으로 첨벙!
마늘, 인삼, 황기, 잔대, 대추를 넣고 장작불을 활활 지핀다.
이제 죽 끓을 준비를 해야지...
불린 찹쌀과 녹두, 마늘을 더 가져오고
큰 국자와 스텐쟁반도 내오고 그릇도 내간다.
첫 해엔 준비물을 잘 몰라 앞 동네 은서엄마가 진두지휘했다.
이제는 우리끼리도 척척 손발이 맞는다.
첫 해보다는 두번 해가 수월하더니 올해는 척척 손발이 맞아 아침 열시부터 시작했어도 여유만만이다.
올해는 늙은 호박이 잘 익어 동네 엄마들이 호박고지를 만들었다.
해울이네 호박 세 덩이를 네 명이 앉아서 작업하여 말리고
복사꽃네 팥과 콩, 찐순네 울타리 강낭콩을 준비했다.
어제 떡집에 갖다주어 아침에 찾아놨다.
맛이 '음! 맛있네' 닭고기 먹어야하건만 자꾸 손이 간다. 달지 않으면서 호박의 맛이 풍기고 콩이 많이 들어가 구수하다.
한 시간여 끓였더니 드디어 닭이 익었다.
모두 모이세요~~
애들과 각 집에 온 손님까지 냠냠...
키운 닭 고기는 색깔이 거무스름하고 쫄깃하고 질기다.
발이 까맣고... 애네들 두리번거리던 눈길이 퍼뜩 떠올랐지만, 어쩌랴...
먹기 전에 사진을 찍어야하건만, 한참 먹고난 후애야 사진을 찍었다. 내년을 기다려야지 ㅎㅎ.
음식을 함께 해 먹으면 옛날 우리집 생각이 난다.
커다란 가마솥에 불을 피우거나 마당에 솥을 걸어놓고 닭 삶던 기억. 우물가에 애들이 쪼르륵 않아 아버지가 닭을 손질하던 손길을 쳐다보면서 신기해하던 일이. 닭이 다 익으면 큰 그릇에 찰밥을 한 국자씩 떠넣고 고기를 한 웅큼씩 넣어주던 엄마 얼굴이 떠오른다.
집 식구에 동네 사람들에 지나는 사람까지 모두 와서 먹었으니 어떤 때는 고기는 구경도 못해 울상을 지으면 엄마는 목에 붙은 고기를 깨끗이 발려 닭죽에 넣어주셨다. 동네 사람들과 같이 일해도 힘들어서 때론 하기 싫건만, 우리 엄마는 참 많이도 음식을 해대셨다. 그리고 아낌없이 나눠 먹었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싶어진다... 한 순간은 순간적으로 지나가니 순간순간 잘 살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엄마가 행동으로 가르쳐주셨으니...
닭죽까지 한 그릇씩 비우고 남자들은 자리를 떳다. 여자들은 한동안 수다.
중간에 성경엄마가 슬그머니 자리를 비운다. 눈시울을 적시고서.
이런 날이면 앞장서서 불 피우고 천막 쳐주던 사람좋던 늘 웃고 서있던 성경아빠 이야기를 꺼내서일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데 본인은 오죽하랴...
각 집마다 떡 세덩이씩 나누고 오늘 잔치를 마친다.
빈그릇과 각종 도구를 낑낑거리며 갖고 와보니 남편은 드르렁 드르렁 삼매경이다. 이런~~, 안주도 안먹고 술만 자셨나?
왔다갔다하며 짐을 나르고... 설겆이를 한바탕하니 나도 피곤해진다. 잠을 자려니 이상한 냄새가 나를 괴롭힌다.
화덕내가 온몸에 배었으니...
이렇게 세번 째해 닭잡어 먹기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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