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울산지역 답사 - 석탑과 승탑을 찾아

정인숙 2013. 3. 11. 21:45

올해 첫 답사여행을 떠났다.

서산에서 올라가자면 쉽지가 않기에 간혹 포기할까 하다가도 다니다보면  희열감이 솟아난다.

그 맛을 잊지못해 다시 길을 나선다.

아침 8시에 건국대에서 출발하여 중부내륙을 통과하고 다시 경부로 달려 경주에서 점심을 먹었다.

다시 달려 울산 학성공원에 도착하였다.

이번 답사여행엔 건대 박물관장님을 비롯하여 전쟁사를 전공한 실장님까지 동행하여 상세히 설명을 해주신다.

두 분의 선생님을 모시고 떠난 여행이었다.

 

 

 

 

"계림으로부터 남쪽으로 가서 물이 돌고 산이 바귀어 하루 해를 다 가면 바닷가에 이르러 부(府)가 있으니 이곳을 흥례라고 한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계변천신이 학을 타고 신두산에 내려와서 사람의 수록을 주장했다 하여 혹 이곳을 학성이라고 한다. 성 서남쪽에 강이 있으니 이것이 대화강이며,....남쪽으로 대화사이다. 옛날 자장국사는 신라사람으로 중국에 법을 구하고 돌아오다가 이 터를 잡고 절을 세웠다." - 김극기의 글중에서.

 

 

울산 학성공원엔 동백꽃이 그득하다. 작은 구릉 전체가 새봄을 맞아 꽃을 터뜨리려고 때를 기다린다.

  태화사터 십이지상 부도는 학성공원에 있다가 지금은 울산박물관으로 옮겨갔다. 사진만으로 감상할밖에.

 복숭아연적을 연상시키는 이 부도는 감살형 사리공과 부도를 감돌며 조각된 십이지상이 독특하단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석종형 부도로 가장 오래된 부도로 판명되었다.

울산은 신라의 관문이다.  

그 옛날 문물교류의 영향으로 인도의 스투파를 닮은 이런 부도가 나오지 않았을까 추측한다고.... 

 

 

 

 

 

여기 성곽 형태는 왜성이다.

 우리나라 성벽은 돌이 메주모양이고 수직으로 쌓았으나, 왜성은 마름모꼴로 쐐기 박듯이 박고 비스듬히 쌓았다고 한다. 

일본장수 가또 기요마사는 임진왜란이 끝나고도 철수하지 않고 잔류하면서 1597년 10월부터 12월 중순 사이에 성곽을 쌓았다.

 이곳에서 조·명 연합군과 왜군의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서로 수많은 희생자를 냈다고 한다.

전쟁때 태어나지 않아 감사히 여기며 전투 이야기를 듣는다. 

 

 

 

 

 

 

 

 

 

 

 

산수유꽃이 활짝 피었다. 우리집 마당에선 터지려고 애쓰고 있는데...

첫 대면하는 매화꽃... 매화향이 그윽하다.

 

 

 

 

 

 

망해사(望海寺)터에 올랐다. 절이 망했나... 바다가 운무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날씨가 별안간 더워져서 땀이 솟는다. 망해사 부도 주변엔 배롱나무와 수국이 그득하다.

 한창 꽃이 피어나면 꽃동산에 가리워질 승탑 두 기.

 

 

신라 헌강왕 때, 왕이 울산 앞바다, 개운포에 나가 놀다가 갑자기 구름과 안개가 자욱해지는 바람에 길을 잃게 되었다. 일관이 말하기를 "동해 용의 조화이니 좋은 일을 행해 풀어야 한다"고 했다. 왕이 곧바로 용을 위해 그 근처에 절을 짓고 망해사라 했다. 그러자 용이 기뻐하며 일곱 아들을 데리고 왕 앞에 나타나서 춤을 추고 음악을 연주했다. 그 아들 하나가 서라벌로 와서 왕을 도왔다. 그가 바로 처용이다.

 

 

옛 망해사 터에 새 절이 들어섰다. 살펴보니 절 주변이 온통 꽃나무다.

동백꽃이 소담스레  피어나고  새싹이 땅을 뚫고 나와 꽃을 피운다.

꽃이 필 때, 새싹이 솟아날 때 참 아픈거라는데....

이렇게 잘 가꾼 절을 보면 '고맙습니다'가 저절로 나온다.

나무와 꽃을 가꾸는 고단함을 알기에 수행자의 노고를 생각하면서 그저 숙연해진다.

 

 

청송사터에 가는 길, 자켓을 벗고 봄볕을 받으며 걷는다.

70대 선생님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걸었다.

겨울내내 병환으로 고생하셨다는 옆 선생님께 무슨 말을 해야 위로가 될까 고민하면서...

 미나리꽝에 미나리가 새파랗다.

봄이 되니 새싹을  싹틔우는  생명처럼 우리 생도 그리되면 좋으련만...

 

청송사터 삼층석탑.

석탑으로 보아 통일신라신대에 창건된 절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져오다가 폐사됐으리라고 추측만 할뿐이다.

장대한 삼층석탑과 부도를 보면, 청송사가 규모가 큰 절이었을거다.  늠름한 기개가 보이는 탑. 보물 제 382호.

 

 

 

팔을 들어 승탑을 받치는 모습.

산스크리트어도 보인다.

 

 

 

 

 

폐사지에 저녁 햇살이 낮게 드리운다. 먼 길을 달려와 신라시대 발자취를 더듬었다.

울산시내 호텔에 여장을 풀고 따뜻한 물에 여독을 푼다.

편안한 숙소, 맛있는 음식, 숨겨진 보물 찾아다니기... 게다가 오랜 벗과 함께 하는 여행길이니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