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옥산서원, 독락당, 정혜사지

정인숙 2013. 1. 6. 11:46

지난해에 했어야할 숙제, 아직도 사진이 남아있다.

12월 15일 다녀오고 이제서야 올리는 옥산서원과 독락당.

몸이 아파서라기 보단 내 게으름이 먼저겠지.

그보다 먼저는 마음이 가지 않어서일테고.

 

세상이 온통 흰빛이다.

창밖으로 내다보기에도 눈이 시리다.

혹독한 추위가 삶을 움츠리게한다.

아이젠을 구입해 신고 어제 모처럼 저수지가를 돌았다.

마치 옛날 설피를 신은 모양새다.

그래도 미끄러지지 않고 근 열흘만에 한 시간 남짓 걸으니 기분이 상쾌해진다.

햇빛 좋은 시간을 택해 매일 걸어야겠다.

머리도 맑아지고 다리도 튼튼해지고.

 

 

 옥산서원은 회재 이언적(1491 ~ 1553)을 제향하는 사원이다.

회재 이언적은 동방오현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다는데...

동방오현은 누구일까.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모두 성리학을 이땅에 체계화시키고 고착화시킨 사람들이다.

이언적은 영남사림을 이끌면서 처음으로 사림파 이데올로기의 이념적 체계화를 이룩하였다.

회재가 죽은 지 20년 뒤인 1572년,

 지금의 자리에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옥산서원.

 

 역락문. 논어의 첫머리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에서 유래.

이 문을 지나면 누각건물이 길을 막는다. 무변루.

주변의 좋은 경관을 차단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전념하고자 폐쇄적으로 지었다.

 무변루 양쪽 누마루.

 

 

 옥산서원 편액.

 추사 김정희가 제주도로 유배되기 직전에 쓴 글씨로 굳센 힘이 드러나다.

 글씨 안목이 도무지 트이지 않는 내게도 강건함이 느껴지다.

 '철판이라도 뜷을 듯하다'는 평을 듣는 글씨라고.

 

구인당은 석봉의 솜씨. 대청에 올라서니 다시 편액이 보인다.

 오호라, 이제 눈이 뜨인다.

한석봉의 글씨, 옥산서원.

 

 

 

 

 1577년 세운 신도비. 글은 기대승이 짓고 글씨는 이산해가 썼다.

 

 

 나오는 길에 무변루 안쪽 깊숙이 걸려있는 편액을 발견하였다. 한석봉의 글씨.

 부기된 내용은 "모자람도 남음도 없고, 끝도 시작도 없도다. 빛이여, 맑음이여! 태허에 노닐도다."

 

 옥산서원 옆 계곡. 너른 바위와 오래된 나무들이 그시절 선비들의 멋을 간직하고 있으려나.

 

 

 

독락당 입구.

 

 

 

 

독락당은 회재가 중앙 정계에서 밀려나 7년을 은거한 집의 사랑채다.

 1532년 지어졌다. 살림집이고 문이 잠겨져있어 아쉽게도 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골목을 돌아 계곡쪽으로 나가니 담장에 살창이 나있다.

 사랑채인 독락당에서 밖을 내다보기 위한 것이라고. 

 

 

 

 

계정. 한국 건축사에서 중요한 정자.

바위와 물과 나무들... 자연과 호흡하고 어우러져있는 조선의 정자 문화를 엿볼 수있다.

 

 

 

"정자는 솔숲 사이 너럭바위 위에 있는데 고요하고 깨끗하며 그윽하고 빼어나 거의 티글 세상에 있지 않은 듯하다.

정자에 올라 난간에 의지하여 계곡을 바라보니 못물은 맑고 깊으며 소나무, 대나무가 주위를 감쌌다.

관어대, 영귀대 등은 평평하고 널찍하며 반듯반듯 층을 이루어 하늘의 조화로 이루어졌건만

마치 사람의 손에서 나온 듯하다.

집과 방은 너무 크지도 작지도 않아 계곡과 산에 잘 어울린다." _ 정시헌, 1688  

 

 

 이젠 한 눈에 알아보다... 한석봉의 글씨 ^^

 

회재는 집 뒤 정혜사의 승려와 친교가 깊어 계정 안쪽에 양진암을 만들어 머물게했다.

두 사람은 독락당과 정혜사를 오가며 차를 마시고 사상을 논하고 자옥산으로 화개산으로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을까.

독락당을 지나 5분 정도 걸었을까. 

정혜사지가 나온다. 

독락당 옆 계곡에 흙탕물이 흐르기에 이상타 여겼더니

그 위쪽에서 냇가 양 둑에 돌을 쌓고 시멘트로 튼튼히 바르고 있다.

감히 독락당 옆 계곡엔 손을 못대고 바로 그 위를 깔아 뭉개고 있다.

요 몇년 사이 어딜가든 보이는 흔한 풍경...

사람들이 독락당을 왜 찾는지 연유를 따져 보았을까싶다.

그것도 12월 말 추운 날씨에 공사를 감행하는 이유를.

 

 

 

 

 

 

 

 정혜사터 십삼층석탑. 

 통일신라시대 석탑으로 독측한 형태를 띠고 있다.

기존 석탑의 틀을 깨면서도 세련된 맛이 일품인 탑이다.

 

아직도 겨울비는 추적추적 내린다.

석탑 주변엔 누렇게 변한 은행나무 이파리가 겨울비에 젖어 뒹군다.

위를 올려다보니 세월을 가늠하기 힘든 은행나무들이 하늘을 가린다.

정혜사 십삼층석탑은 늦가을 황금빛을 받으며 더욱 찬란하게 빛날거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