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녘 빗소리에 잠을 깼다.
오늘 오전까지 100ml 내린다 했으니...
창 밖을 내다보니 비와 운무에 가려 뿌옇다.
오늘 우도를 걸을 예정이었는데 코스를 바꾸어야겠다.
비가 내려도 미끌어지지 않고 걸을 수 있는 길을 찾자...
우비까지 단단히 챙겨 나왔으나, 잠깐 비가 뿌리고는 멈추었다.
비가 내려도 걸을 수 있는 안전한 해안가길, 5코스를 걸어본다.
남원 바닷가에 시가 걸려있다.
읽으며 걷노라니 시간이 걸린다.
<복종>... 27년 전 결혼식장에서 성내운 선생님이 낭송해 주신 시다.
문익환 목사님의 <꿈을 비는 마음>과 한용운 스님의 <복종>을 낭송하시곤 잘 살라는 특별한 주례사도 없이 끝낸 자리.
그 당시에 왜 <복종>을 낭송하셨는 지 의아했었지.
'복종하고 싶은 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서로가 복종하고 살라는 의미였을까.
성내운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도 오래되었으니 여쭈어볼 수도 없고...
이곳에서 우연히 <복종>을 대하면서 지나온 세월을 되뇌어본다.
꿈을 비는 마음 / 문익환
개똥같은 내일이야
꿈 아닌들 안 오리오마는
조개 속 보드라운 살 바늘에 찔린 듯한
상처에서 저도 몰래 남도 몰래 자라는
큰엉 산책로. 나무가 우거져 그늘져있어 걷기가 편하다.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 소리뿐.
마을을 지나다 마주친 정자. 사진 찍지 말라시며 옷 매무새를 가다듬는 할머니.
성게알을 꺼내는 공동 작업장.
쉬운 길일거라 택하였지만, 가도 가도 끝이 없던 길에 끝이 보인다. 쇠소깍으로 들어가는 길.
민물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쇠소깍. 제주의 옛 통나무배 테우가 다닌다.
열시 40분부터 걷기 시작하여 중간에 한 시간 동안 점심을 먹고 내리 걸었는데도 오후 4시 반이 되어야 도착하였다.
포장도로 위를 뜨거운 태양 아래 걷느라 땀 찔찔 흘리며~~^*^.
공항 가는 길에 먹은 고기국수.
끝없이 나오는 돼지고기.
국물이 참 담백하다.
껄렁해 보이는 십대 아이들이 몰려 앉아 코를 박고 먹는다.
그 모습이 귀여워서 한참 웃었다.
김포에 도착하니 두 집 남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진희가 우리 부부 사진을 찍으라 권하고...
힘들었던 시절, 수없이 밤을 새며 이야기를 나누던 단짝 친구와 몇 십년 만에 같이 한 여행.
현재의 삶보다 과거 이야기를 끝없이 나누며 걸은 사흘 간 여행.
예전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나를 잘 이해해주고 인정해 주는 친구와 함께라서 행복했던 여행.
항상 내 편일거란 믿음으로 든든했던 여행.
친구야! 아이들 다 키우고 더 늙기 전에 다시 떠나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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