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기소개 시간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나는 이번 강좌에 어떤 기대를 하고 있나?'
나에 대한 소개를 몇 십 년을 해왔건만, 직함을 다 떼어버린 지금, 아무 군더더기 없이 날 것 그대로 소개해야한다. 교육생들은 잘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열심히 발표문을 준비한다.
"저는 '생각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동안 회사 일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 40 초반이지만, 앞으로는 제가 진정으로 행복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그 후엔 귀촌하여 컴뮤니티센터에서 일하며 살고 싶습니다."
"외국계 엔지니어링 일을 했습니다. 앞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싶어 여기에 참여했습니다. 전원생활을 준비 중이라 지난주에 단기 실상사 귀농교육을 받았습니다. 비영리단체에 대해 알고 싶고 그쪽에서 일하고 싶습니다."
"저는 '글자'라고 자신을 표현하고 싶습니다. 현재 웃음강사로 틈틈이 시니어 관련 봉사를 합니다. 제 나름의 시간을 찾아 보람 있게 재미있게 보내고 싶습니다."
"1년 전 은퇴하고 열심히 놀았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입니다. 좀 더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겠기에 왔습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벤치마킹도 하고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면서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직장생활 마지막 해에 시민사회관련 업무를 맡으면서 희망제작소, NPO 등을 알았습니다. 사회에 약간이라도 기여하는 일을 하고 싶어 참여했습니다."
"현재 공무원입니다. 10년 후에 뭘 하고 살까를 생각하다가 여기서 희망도 찾고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고 싶습니다."
"학원 강사로 ‘번뇌가 많은 인간’입니다. 재작년에 아버지 돌아가시고 작년에 몸이 많이 아프면서 제 인생에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인생에 비전을 갖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모든 분들이 새로운 인생, 가치를 추구하는 삶에 대해 열정이 가득했다.
"대학은 카이스트 나오고 하버드에서 석 박사 학위 받은 아들을 둔 나잘란 여사 옆집에 사는 김 00 입니다. 화성에서 목장을 운영하며 사회복지 공부를 마쳤어요. 지역사회에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싶어요."
화성에서 오신 김선생님이 재치 있게 소개하자 긴장감이 풀리고 희망모울 온도가 갑자기 올라간다.
이어진 소개말에서 기어이 웃음이 터진다.
"국어교사로 학생들 앞에서 맨 거짓말하며 큰소리 쳤는데 지금 떨립니다. 둘째 아들이라 차대입니다. 제 형은 장대, 동생은 말대, 미대이고요…….저는 문제집을 여기저기 오려서 짜집기를 잘합니다. ……. 교육에 대해서 깊이 반성도 하고 여기 와서 많이 배우고 젊어지고 싶어서 왔습니다."
"금속공학도로 직장생활을 38년 했습니다. 남은 30년을 어떻게 지혜롭게 보낼 것인지 새로운 희망을 찾아 희망제작을 하고 싶어 참여했습니다."
"청소년 진로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격려해주는 '치어리더'역할을 하고 싶고 영원히 현역으로 살고자 합니다. 다함께 정지할지 말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합니다."
"은행에 30년 근무했습니다. 박원순씨를 존경하여 여기 오면 틀림없겠다는 생각으로 참여했어요. 열심히 배우고 활동하겠습니다."
"
"펜션을 운영합니다. 기웃거리는 심정으로 왔는데 여기 와서 희망이 커졌습니다."
"조각가입니다. 지금까지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아서 나누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IT관련 일을 합니다. 마라톤, 암벽등반, 에베레스트 등반 등 나이에 걸맞지 않게 용감하여 남들이 '도깨비'라고 부릅니다."
"IT쪽 일을 하며 외국 한국지사장으로 근무했습니다. 연봉을 많이 받은 만큼 스트레스도 컸습니다. 우리 사회에 40대 백수 시니어가 많습니다. 여기는 그 사실을 알고 준비하는 곳이라 여겨집니다. 지금껏 주변으로 부터 많은 것을 받았는데 이제는 돌려주고 싶습니다."
"기계공학도로 건설 쪽에 종사했습니다. 행복한 노년을 맞이하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은행에 근무했고 NPO를 창업하여 일하고 싶습니다."
"유통업에 30여 년 종사했습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과연 열심히 살았는지 회의가 듭니다. 이 과정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고 싶습니다."
다양한 곳에서 다양한 일에 종사한 사람들이다.
어떤 분은 <고마워라, 인생아> 책을 읽고 찾아오셨다고 들려준다.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하며 눈이 번쩍 띄어 앞으로는 '살아온 대로 생각하는 삶'이 아니라 '생각하는 대로 살기 위하여' 찾아오신 분이다.
소개말 중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가 '선택' '변화' '봉사' '희망' '행복'이다. '아내'도 자주 입에 오른다. 젊었을 때, 앞만 보고 달려오다가 이제 옆을 챙겨야하니 서툴다고 수줍어하신다.
송판심 선생님이 다시 숙제를 내놓는다.
"80살이 되었을 때 우리 인생의 이력서를 어떻게 써야할까요? 내가 먼저 적극적으로 가치지향적인 일자리를 찾아야하지 않을까요?"
덧붙여 '먼저 내가 낮추자. 다양한 달란트를 나누겠다는 마음, 함께 성장하겠다는 마음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하자'고 이끈다.
유쾌하게 피아노를 치는 90대 부부의 모습이 영상에 흐른다.
참석자들의 얼굴에 '이제 시작이다. 무엇이 두려우랴, 으라차차' 하는 함성이 솟구쳐 오른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엇을 가지고 있느냐 보다,
가진 것을 어떻게 비우고 나누었느냐에 따라 진정한 삶의 가치가 결정된다.
전반전의 삶은 많이 채우는 것이, 후반전의 삶은 잘 비워내는 것이 중요하다.
# 이번 시간에는 김신형선생님(1기 행설아 수료)이 은퇴 후의 삶을 보여준다.
모 은행 런던지점장으로 오랫동안 영국생활을 하신 분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은퇴가 왜 축복이 아닐까요" 하며 외국에서 은퇴를 축하하는 각종 행사를 보여준다.
'아직 젊은이 못지않은데 퇴물 취급을 하다니……. 내가 여기에 쏟은 열정이 얼마큼인데…….' 답답한 마음으로 쓸쓸하게 퇴장하는 우리네 은퇴 장면도 오버랩 된다.
"직장 그만두고 자유롭게 살다가 우연히 이 강좌를 듣고 제 삶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현재 활동이 행복하거든요."
우리 사회에서 직장이 생활의 중심인데 비해, 영국에서는 지역과 마을이 삶의 중심이 되어 은퇴를 미리 설계하는 것을 보고 김선생님은 은퇴 후, '시골로 들어가서 집을 짓고 내 시간을 3등분하여 1/3은 육체노동, 1/3은 정신노동, 1/3은 즐기며 살자'며 준비했다.
'자식의 세대는 어떻게 될까? 어떤 세상을 물려줄 것인가? 우리 모두가 행복한 삶은?' 등 고민을 계속 하면서.
강화도로 삶의 터전을 바꾸고 단순한 일거리인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을 하면서 사람들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강화에 들어가 제일 처음 한 일이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하는 일이었어요. 도시락 4, 5개 받아 배달하는 간단한 일인데, 도시락을 통해 인사를 나누고 호박을 받아오면서 지역 네트워크를 이루는 작은 일이 쌓여가더군요. 참고 기다리니 그런 기회가 왔나봐요. 보수가 작아도 넘치는 행복이 지갑을 채우고요."
할머니들이 텃밭에서 갓 딴 호박이며 고추를 들고 기다리신 거다. 그러던 중, 박원순씨의 라디오 강연을 듣고 곧바로 찾아왔다. 새로운 비전을 찾아서.
"은퇴가 주는 가장 큰 기쁨은 가면을 벗는거에요. 발가벗은 몸으로 하늘과 땅을 마주 보고 햇빛과 바람을 마주보는 거죠. 매주 주말마다 강화 나들길을 걷는 사람들과 햇볕을 쬐며 걷는 게 즐겁습니다. 특별히 골프니 등산이니 하지 않아도 건강합니다. 사람들과 어울려 강화 나들길을 새로 찾아내고 소통하면서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함께 일하는 삶……. 아주 즐겁습니다."
나를 위로하며
함민복
삐뚤삐뚤 날면서도
꽃송이 찾아 앉는
나비를 보아라
마음아
강화 나들길 추진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강화도를 온몸으로 느끼며 걷는 길을 찾아 나선다. 더불어 강화도 예술인들과 교류도 나누니 김선생님의 집은 늘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좋은 사람들과 같은 길을 가기에 새로운 일이 넝쿨지어 이어진다. 로컬후드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강화지역산물을 이용하는 로컬후드운동을 구상하는.
외국의 '앙코르 커리어(encore career)-인생 후반기에서 영리 목적이 아닌 공공의 사회적 의미와 영향력을 중시하여 교육과 환경, 건강, 정부기구, 사회복지와 기타 비영리 기관에서 일하는 것' 단체를 소개하며 NPO세상은 신대륙이라고 기쁨을 나누고자 한다.
'해월당주인장' 김신형 선생님은 환갑이 지난 연세여도 젊은 용모에 젊은 기상으로 모두에게 따뜻한 에너지를 불어넣어준다.
은퇴 후의 쓸쓸함과 허전함을 행복으로 채워 줄 자원이 무궁무진하다.
머뭇거리지 말고 무조건 도전하자!
# 오후 4시 반. 모든 일정이 끝났다.
역사는 밤에 이루어지는 법. 가까운 주점으로 발길을 옮긴다.
처음보다 훨씬 편안하고 정감이 간다. 한 잔으로 건배하고 또 한 잔하니
앞으로 30 년을 함께 보낼 친구들의 얼굴이 다시금 보인다.
'집사람이 일찍 일어나 따스한 밥 지어주며 잘 하고 오라고 했는데…….'
'우리 딸이 격려 문자까지 넣어주며 응원해 주었는데…….'
'여기 와서 새로운 친구 사귀며 가치 있는 일을 찾으면 좋겠는데…….'
'음! 오늘 분위기가 좋았어. 퇴직 두려움이 어느 정도 가셔지는데…….'
'오길 잘했어.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니 이렇게 좋잖아…….'
'오늘같이 좋은 날, 박변호사님 얼굴을 보지 못해 서운한데…….'
머리에 떠오르는 이런 저런 생각을 지우고 옆 사람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술 한 잔이 오늘따라 한층 애틋해진다.
'내가 쌓은 벽과 담을 넘어 새로운 삶으로. 이제 시작이다!'
새로운 세상에 성큼 한 발을 내딪었다.
앞으로의 삶에 이 친구들이 도반으로 든든히 지켜줄테니까.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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