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1일(월)
눈이 흩날린다. 아침에 깨어 밖을 내다보니 눈이 쌓여있다. 쉽게 개일 날씨가 아니다.
킨테스앞까지 남편이 데려다 주고 버스를 기다리는데 눈발이 거세어지고 추위가 몰려온다.
버스를 타니 40분정도 걸려 공항에 도착했다. 도중에 승용차가 눈길에 미끌어져 굴러져있다. 버스 타고 오길 잘했다.
공항에서 커피를 맛있게 마시고 입국수속을 하고 면세점에서 한시간 시간을 보내다. 아이크림, 립글로스, 홍삼정등 사려고 계획한 제품을 구입하고 구경을 다닌다.
원래 쇼핑에는 재미를 못붙이고 사는 사람이니 이런 시간 보내기가 힘겹다. 쇼핑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눈을 반짝이며 제품 구경과 가격비교하느라 시간이 모자르지만, 나같은 사람은 경제흐름에 도움이 안되겠지.
탑승을 하였지만, 비행기가 요지부동으로 이륙을 안한다. 눈이 와서 아침부터 이륙이 밀려있어서 그렇단다.
두시간이 지나 세시가 되서야 이륙한다. 점심은 기내식이니 그때까지 꼬박 굶어서 배고픔이 밀려온다.
드디어 이륙하고 차거운 일본식 볶음밥류가 나온다. 비행기안도 추운데다 늦게 먹는 점심이 차가워서 그리 맛나지가 않다.
스튜어디스는 젊은 여자들이 주류이지만, 가끔 30대후반쯤되는 여자들도 일한다. 스튜어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저씨들이다. 대한항공의 승무원들이 나이를 먹어간 모습이다.
승무원들도 노조를 통하여 평생직장(적어도 40대까지는 )으로 일하는
이제는 우리나라 항공기도 외국항공기들 처럼 나이드신 분들이 써빙하는 모습이 흔해질 모양이다. 잘생기고 예쁜 승무원들이 진한 화장을 하고 써빙을 하던 옛날보다 편안해 보이고 나도 편안해진다.
1시간 30분정도 걸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시간이 늦어 바로 쿠마모토로 이동한다.
저녁식사는 호텔내의 식당에서 이루어진다. 일본식으로. 각각 쟁반마다 조금씩 음식이 담겨서 개인용으로 나온다. 작은 화로위 된장국, 작은 화로위에 달걀과 고기 한점, 해초조금, 단무지 비슷한 거 조금, 김, 김치조금... 설겆이할 양이 많겠다싶다. 써빙하시는 분들이 곱게 화장하고 기모노를 입은 할머니들이다. 방은 다다미방. 온천이 딸린 호텔이라 저녁먹고 좀 쉬고 밖으로 나선다.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은 숙소덕택에 골목을 돌아나오니 쇼핑몰이 이어진다. 음반가게에서는 LP판이 즐비하다. 일행중 초등학교 여학생이 보아의 음반을 구입하니 3만원이 넘는다고..
백엔?에서 내일 필요한 물과 간식을 구입하고 이집 저집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쏘다녔다. 라면집에 들어서니 그집 주인이 직접 제조한 라면을 자랑스럽게 내놓는다. 장인의 자부심이 넘치는 표정이 보는 사람마음도 흐뭇하게 한다. 집집마다 라면이나 우동맛이 다르다는데 맛집 찾아다니는게 취향인 사람들이 오면 참 재미있겠다싶다. 여기 라면에는 돼지고기가 들어있다. 국물이 구수하니 맛있고 면도 맛있다. 약간 짜서 문제...
료칸식 호텔로 돌아와 보니 다다미방위에 홑이불을 씌운 이불이 깔끔하게 펼쳐져있다. 6층 온천으로 올라갔다. 음양의 조화를 이루느라 남탕, 여탕을 하루씩 바꾼다고 한다. 앞에 걸린 남탕 여탕 표시하는 천만 바꾸어 놓는 모양새다. 오늘은 노천탕이 남탕에 있다고 하니 내일 아침에 구경을 해야지. 물이 매끈매끈하다. 아토피가 있는 인순샘은 연신 얼굴에 온천수를 바른다. 오늘은 비행기만 타고 날라 왔건만, 몸이 왜이리 피곤할까?
방에 모여 이야기꽃을 피운다. 주로 학교이야기...
나는 이미 퇴직한 사람모양으로 학교이야기에 흥미를 잃는다.
벌써부터 학교이야기에는 시들하니 정작 퇴직하면 나의 인생과 함께 한 학교울타리 27년 세월이 쉽게 잊혀지는게 아닐까?
1월 22일(화)
오늘 출발은 9시 30분.
아침에 눈을 뜨니 6시 40분. 누워 좀있으려니 인터폰이 울린다. 어젯밤 노천탕을 가보자고 송샘과 약속을 하여 서둘러 준비를 하고 나간다. 하긴 준비래야 유까다 걸치면되니 참으로 편리하다.
노천탕 문을 열고 들어서니 붉은 빛이 도는 밤색 통위에 접이식 덮개가 덮혀있다.
호기심이 발동한 송샘이 덮개를 걷어내니 따뜻한 물위로 김이 올라온다. 둘이 들어가니 꽉찬다. 하늘에서는 빗방울이 한두방울 떨어지고 몸은 따뜻한 물에 담궈져있어 머리속이 개운하고 시원하다.
목욕탕도 어릴 때 다니던 공중목욕탕 모습 그대로이다. 한쪽으로 욕조가 있고 한쪽으로는 거울앞에 개인용 수도꼭지가 줄줄이 달린... 우리처럼 대형화된 목욕탕이 아니어서 어릴 때 엄마와 목욕하러 행사처럼 다니던 일이 떠오른다.
호텔식당에서 개인용 식판에 조금씩 담긴 식사를 보니 달걀, 두부된장국, 김치, 생선, 연근등... 자극없고 몸에 좋은 음식만으로 이루어졌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쿠마모토성을 향해 들어가는 길에 가또 기요마사의 동상이 우리를 내려다본다. 임진왜란에 조선사람들을 무차별로 죽이고 공격해 들어오던 사람.. 돌아오는 길에 도공과 조선의 색다른 물건들을 가득싣고 와 일본에 전파했다지. 호랑이도 싣고 돌아와 토요토미에게 바쳤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원흉이지만, 일본인들에게는 영웅대접을 받는 사람. 치열한 전쟁속에 맥없이 넘어져가던 조선인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구마모토성은 한창 복원중에 있다. 구마모토성은 1632년 축성자인 가토 기요마사가 죽고 대신하여 호소카와 다다토시가 봉해져 호소카와 가문이 거주하는 성으로 에도시대 내내 지속된다. 이 성은 메이지(明治)시대까지 남아 있었으나 1877년 서남전쟁-메이지유신의 반발로 지방영주와 중앙정부의 전쟁으로 중앙정부의 승리- 때 소실된다. 현존하는 성은 1959년 복원된 것이라 한다.
서남전쟁 때 전투로 인해서 불타버린 것이 아니라 성을 지키던 장군 다니 다테키라는 인물이 성내의 병사들에게 결의를 다지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불을 놓아 소실 된 것이라 한다. 이로써 공격하는 사이고 다카모리가 이끄는 군대의 포위와 맹공에도 동요되지 않았다고 한다.
축성자 가토 기요마사는 축성의 명인으로 높은 석축을 쌓을 때 아소화산재의 연약한 지반위에 축성하기 위해 석축의 아래쪽은 넓게 펼치고 위쪽은 수직으로 쌓아올리며 곡선형을 이루는 석축을 구사하여 난공불락의 성으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특히 천수의 1층 부분은 석축보다 튀어나와 있어서 성벽에 붙은 적군을 공격할 수 있도록 사각이 없는 투석창을 만든 것이 주목된다. 또한 가토 기요마사는 축성을 계획할 때 그의 오랜 전투경험과 조선의 진주성을 공략할 때 얻었던 신지식에 오사카성 축성에 참가한 경험을 살려서 가능한 거석을 수집하고 거목을 이용하여 견고하게 쌓았다고 한다.
망루로 쓰였던 천수성은 5층으로 이루어져있다. 일본은 안내인들이 평온한 얼굴의 노인들이다. 입구마다 지키며 신발과 우산을 비닐에 넣어 들어가도록 친절하게 안내한다. 어두컴컴한 긴 마루복도와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가니 한층씩 올라갈수록 면적이 좁아지고 밖이 멀리보인다. 어릴 때 옆집이 일본식 집이어서 그집에서 숨바꼭질하고 놀던 기억이 난다. 문 열으면 방이 연결되고 붙박이 장이 많아 숨기가 좋았던 그집. 목욕도 그집가서 하곤하엿지.
쿠마모토성 옆 가또를 모신 신사에 들어가본다. 죽은 사람을 신으로 모시는 신사에는 일본인들의 기원을 담은 쪽지가 가득 걸려있다.
아소산으로 버스가 오른다. 화산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아래쪽은 삼나무와 편백나무로 빽빽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구릉지대다. 비구름과 안개사이로 숲을 내다보면 숲속이 어두컴컴할만큼 나무가 빽빽하다. 가문비나무와 전나무로 산림이 잘 이루어져있던 독일이 생각난다. 우리나라도 개발보다는 이렇게 풍요로운 자연을 가꾸어야 할터인데 언제쯤 이루어질까?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칼데라호 화산지구는 날씨탓에 가스가 많이 분출되어 위험하다고 규제안내판을 내걸고 폐쇄하고있다. 차를 돌려 아소산 화산 박물관으로 향한다. 일본인보다 많은 한국인들로 와글와글하다. 초등학교 단체로 여행온 한 남학생에게 어디어디 갔었냐고 물으니 '무슨 성 같은데 가보구요. 아소산은 비땜에 못 올라가구요~~'하면서 저희들끼리 장난치느라 바쁘다. 학원 안가고 친구들과 여행온 것만으로도 아이들 얼굴에 행복한 웃음이 가득하니 보는 사람 마음도 흐뭇해진다. 날씨가 따뜻한 봄날, 쏟아지는 햇볕을 받으며 언덕길을 걸어서 내려가면 거대한 자연의 품에서 아늑해질 아름다운 길이다.
쿠사센리-천리나 이어진 초원지대-도 안개로 인하여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빗길에 산을 내려온다.
아소팜랜드는 버섯모양의 집들이 들어선 리조트다. 예쁜 집들이 엎어져있는 모습이 일본답다. 이곳에도 로얄빌리지와 일반 빌리지가 구분되어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이든 돈에 따라 구분을 시킨다. 자본주의 사회뿐이랴. 인류역사가 권력에 의하여 이끌어진 것을. 로얄빌리지는 작은 정원과 대문이 있는 집, 일반 빌리지는 문 열면 바로 방이다. 온돌로 되어있어 바닥이 따뜻하다. 과자가게가 펼쳐진 몰을 돌아다니며 모찌와 양갱, 과자를 주워 먹어본다. 주재료로 콩과 팥이 쓰인 것이 많다.
저녁을 뷔페식으로 푸짐하게 먹고 온천으로 향했다. 작은 수건만 갖고 입장이 가능하다는데, 앞서 들어간 송샘이 수건을 갖고 들어가는 바람에 입장을 못하게 한다. 영어와 바디 랭귀지를 동원하지만, 일본어로 무조건 안된다고 한다. 여기저기로 송샘을 부르니 노란수건이 떨어진다. 노란수건을 보여주니 그제야 입장이 허락된다. 노천온천이 12개를 드나들 수 있다는 곳. 노천으로 나가니 와인탕부터 시작이다. 자연과 어우러진 온갖 종류의 탕이 펼쳐져있다. 온몸이 풀어지는 느낌이다. 동굴모양, 대나무집모양, 아로마탕등 모양과 물의 느낌이 다른 온천탕이 군데군데 펼쳐져있다. 빗방울은 떨어지고 어두운 밤길을 불빛만 보고 이리저리 옮겨다닌다. 빗속을 알몸으로 뛰어다니던 풍경이 지금도 떠올라 웃음이 번진다. 이곳은 과자방 우유방, 치즈방등도 체험을 할 수 있다는데 5시에 모두 문을 닫아버려 오로지 온천 돌아다니다가 밤이 깊어간다.
1월 23일(수)
아침 일찍 일어나보니 빗방울이 약해져있다. 아소팜랜드 전망대에 올라 사진을 찍고 동네를 돌아다녔다. 하수구로 흐르는 물에서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른다. 저 멀리 아소산은 안개가 반쯤 허리를 감고 올라가고 있다.
오늘은 쿠로가와 온천행이다. 쓰기(삼나무), 히노끼(편백나무), 대나무가 주종으로 이루어진 산길이 굽이굽이 이어진다. 산안개는 이리 저리 떠다니고 차는 빽빽이 이어진 숲속을 달려나간다. 창문을 열고 숲내음에 흠뻑 빠져들고 싶어진다. 아무곳에나 정차하여 숲속으로 들어가보고싶을 만큼 숲길이 아름답다. 한적한 길임에도 속도를 준수하며 천천히 달리는 차. 앞에도 뒤에도 사방이 초록빛이다. 간간히 동백꽃이 피어있어 봄이 다가옴을 느끼게한다. 이러한 자연을 지니고 가꾸는 일본이 새삼 우러러보인다. 15년전 일본여행을 다닐 때는 자연보다는 문명이 눈에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평화스러운 자연환경이 인상적이다.
문명이 어느정도 발전하면 자연을 소중이 여겨진다던데 우리도 이제는 반자연에서 자연으로 돌아오려나? 지방자치가 정착이 되면 자신의 마을을 소중히 여겨 가꾸고 닦아 문화재로 만들어내려나 ?
쿠로가와 마을로 들어섰다. 차는 산길 도로위에 주차해있고 마을은 저아래이다.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을 건너니 전통적인 일본 목조 주택들이 눈에 들어온다. 검은 목조 주택들. 집집마다 흐르는 작은 온천들을 보존하여 전통료칸을 꾸며 관광객을 받는다. 우리는 그중 세군데를 가기로 하였다.
첫번째 들어선 곳이 미인탕. 긴 복도를 걸어 계단을 오르고 다시 복도를 도니 요술처럼 노천탕이 놓여있다. 돌틈새로 뜨거운 물이 나온다. 열명 들어서면 꽉찰 듯 싶다. 좀더 깊은 곳은 대나무 그네를 놓아 팔걸이를 하게 만들어 놓았다. 돌계단 아래에 또하나의 노천탕이 있다. 조금 미지근한 물. 맑은 물이 미끈미끈하다. 30분즘 담그고 나와서 새로운 집을 찾는다.
동굴탕. 돌로 담장을 이룬 좁은 길을 걸어가니 입구가 나온다. 수증기가 가득차있어서 안이 들여다 보이지 않는다. 여기도 열명 들어갈가 말까한 작은 곳이다. 이곳은 철분냄새가 확 다가온다. 입구에 있는 물길이 동굴을 따라 연결되어있다. 수증기는 가득하고 ... 용감한 내가 앞장서서 동굴탐험을 한다. 몇걸음 걸으니 좀더 넒은 탕이 나온다. 갑자기 문설주로 가로막아놓은 다른 동굴에서 '부장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혼탕으로 아들들과 함께 들어간 송샘이다. 동굴을 따라 걸으니 다시 입구가 나온다. 이곳은 수증기가 자욱하여 물빛은 보이지 않지만 붉은 빛이리라. 물이 매끄럽지가 않고 철분 냄새가 강하다. 동굴탕 들어가는 오래된 좁은 길목에는 만화에서 본 일본식 검은 주전자가 장작불에 올려져있다. 추우면 불쬐면서 옛날을 추억하라는 뜻이리라. 찾아갈 옛집과 추억할 물건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는 것이 한 인간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위안을 주는지... 물이 끓고있는 일본식 주전자를 보니 노구찌 히데오 만화를 보며 눈물 흘리던 생각이 떠오른다. 집에서 몇권 보다가(13권이던가?) 수학여행을 가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노구찌 만화를 가져와서 계속 같이 보다가 차안에서 그만 눈물이 줄줄흘러 얼마나 무안했던지...
한국인인 나도 옛생각에 젖어 마음이 푸근해지는데 일본인들에게는 마음속 고향처럼 정겹고 마음을 안온하게 해주는 곳이겠구나싶다.
세번째 온천을 찾는 길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있다. 슈크림 집이다. 공갈빵처럼 속이 텅 빈 빵에다 슈트림을 가득 집어넣는다. 이곳의 명물이라나. 일본은 지역 특색에 맞게 각기 다른 먹을거리도 발달해있다. 어디서나 똑같은 기념품과 먹을거리를 파는 우리의 관광지와 비교가 된다. 세번째로 찾아간 곳은 구로가와 온천. 이곳에는 넓은 노천탕이 있다. 수영을 할 정도의 넓은 탕을 평형으로 돌아다니니 온몸에 새힘이 솟아나는듯 하다. 유황탕으로 우유빛이고 물맛이 달다.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진과 화산의 위험속에서도 자연의 선물인 온천을 개발하여 관광지로 만든 그네들의 노력이 느껴진다.
오후에는 유후인 마을로 들어섰다. 산으로 둘러싸여 댐으로 수몰될뻔한 마을을 이 지역 출신의 의사가 나서서 마을을 복원하고 옛것을 가꾸어서 관광지로 만들어 가난한 마을을 살렸다고 한다. 구로가와 마을도 가난한 마을에서 부유해졌다고.. 낙후된 산촌마을이 지역 지도자와 주민들이 지역의 특성인 온천과 주변 경관을 살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을 살려냈다는 것이 인상깊다. 이 마을을 살리기 위해 기나긴 토론과 의견을 조율했을 사람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른다. 차에서 내리니 동네 앞을 흐르는 개울물에 물고기가 가득하다. 시냇가를 따라 걸으니 호수(긴린코 호)가 나온다. 작은 미술관인 샤갈의 집도 있고 달리의 사진도 보인다. 관람하고 싶지만, 시간이 허락치 않는다. 산에서 흐르는 찬 물에 온천수가 스며들어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주변의 높은 산자락에 연녹색빛과 녹색이 어우러져 봄기운이 감돈다. 봄이나 가을에 오면 더욱 아름다울 산색을 드러내겠지. 호수주변을 돌아보니 집집마다 도랑이 흐르고 온천수가 흐르는 곳에는 빨래터가 그대로 남아있다.
내 고향 이천에도 온천수가 흘러 겨울이면 엄마를 따라 나서서 머리도 감고 빨래도 하던 마음속의 장소를 이곳에서 만난다. 꽝꽝 얼어붙은 머리를 수건으로 감싸고 캄캄한 신작로를 따라 엄마 치마 잡고 돌아오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사라져 마음 속에 남아있던 풍경을 일본에서 마주치는 어처구니 없음.. 호수를 돌아나오니 마을을 끼고 있는 개천에는 물새들이 날아와 먹이를 쪼고있다. 우리 집앞에도 이런 개천이 있었는데 ... 지금은 그위로 몇차선 도로에 건물이 들어섰으니 그 자리가 어딘지 찾기도 힘들다 . 과거가 남아있지 않는 도시는 삭막함뿐이다. 인간도 추억할 과거가 없으면 얼마나 삭막해지는지... 갑자기 변해버린 내 고향 생각에 쓸쓸해진다.
자그마한 가게들을 돌며 아기자기한 물건들을 구경하는 일행들과 떨어져서 한동안 쓸쓸해했다. 우리는 이 다음에 어디로 고향을 찾아갈까? 호수옆 산에도 살짝 올라가본다. 대나무가 방풍림으로 가득하고 조그마한 사당 앞에는 대나무 빗자루가 놓여져있어 반갑다. 오랫만에 보는 대나무 빗자루...
이 마을은 살아있는 문화재감이다. 사람들에게 잠시 쉬어가며 속도를 조절하게하는 마을. 평화로움을 선사하며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는 마을이다. 특별한 유적지나 큰 건물이 있는 것이 아닌 조용한 옛날 마을이 사람들을 끌게한다. 산책로를 걸으며 하룻밤 조용히 묵어가고픈 산촌 마을이다.
차는 벳부로 향한다. 오늘 밤은 벳부에서 잠을 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숙소인 관해장. 벳부에 오니 여기 저기에서 연기가 오른다. 온천 물이란다. 도시 전체가 부글부글 끓는 느낌이다.
1월 24일(목)
아침일찍 일어나서 언덕을 내려와 동네로 들어서보았다. 바닷가라 그런지 바람이 거세다. 귤 나무와 동백꽃이 피어있고 매화도 곧 꽃망울을 터뜨리려 한다. 한적한 동네인지 사람을 보지 못한다. 다시 언덕길로 올라오는데 세일러복을 입은 여학생이 '오하이오 고자이마쓰'하며 인사를 건넨다. 당황하여 웃으며 어설프레 목례를 하고만다. 어디서나 자라나는 세대는 참으로 풋풋하고 어여쁘구나...
내려가는 길에 어느 집앞에 서있는 작은 부처상에 장삼같은 것이 걸쳐져있었는데 올라오다보니 바람이 세다고 부지런한 주인이 모자도 씌우고 두루마기같은 코트도 입혀놨다. 저절로 웃음이 나온다.
호텔로 돌아와 아침 식사를 한다. 일본식 - 달걀찜, 두부, 샐러드, 낫또, 작은 생선한마리, 무국등이다. 이렇게 먹으니 위장병도 안걸리고 장수하지..
벳부만 전망대에 오르지만, 바람이 거세어 5분도 서있지 못하고 모두 버스로 피신했다.
유노하나를 재배하는 곳으로 향한다. 뜨거운 온천이 나오는 곳에서 하얗게 피어나는 꽃, 하루에 1mm씩 자란다고 한다. 세모꼴의 초가집에서 재배하여 목욕제로 쓰인다. 어디든 온천이 있는 곳에서는 삶은 달걀을 판다.
바다지옥으로 향한다. 온천수의 색깔이 파란 바닷물빛으로 투명하다. 하얀 김이 안개처럼 솟아오르고 이제 막 피어나는 홍매화가 주변에 가득하다. 활짝 피어나면 장관이리라. 그곳 명물인 사이다와 달걀을 하나씩 사먹는다. 사이다를 천천히 마시라고 병안에 구슬이 들어있어 조금씩 나오는 것이 특이하다.
열대수련을 구경한다. 수련잎이 쟁반모양으로 자라서 20kg 이하인 아이들이 타도 가라앉지 않는다고 한다. 아시유 족탕 -뜨거운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앞산을 올려다본다. 주변은 야자수와 종려나무로 꾸며져있다. 지나치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일본인들의 생활습관때문에 야기되는 사회적인 문제나 청소년의 문제등을 들으며 찬바람에 앉아있다. 뜨거운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있으니 추위도 느껴지지 않는다.
아! 이 평화로룸이여~~
이제는 후쿠오카로 향한다. 고속도로옆으로 검은 목조주택이 한가로이 펼쳐져있고 농토가 깔끔하게 구획정리되어있다. 농작물도 어쩌면 저리 자로 잰듯이 심어놓았는지. 과수원은 봄채비를 하는지 잘라진 가지들을 모아놓고 한창 태우는 중이다.
후쿠오카도착.
다자이후텐만구라는 학문의 신을 모신 신사로 향한다. 일본내에서도 입학시즌이 되면 전국에서 기원하러 온 사람들로 붐비는 곳이라고 한다. 스기와라 미치자네를 학문의 신으로 모신 곳. 미치자네는 본래 학자로서 출세가도를 달리고 있었는데 모함으로 인하여 이곳 다자이후로 쫓겨났다. 이곳에 오기 전 자신의 집 정원 매화앞에서
東風吹かば ?ひをこせよ 梅の花 主なしとて 春な忘れそ
(동풍이 불어오면, 향기가 전해오네. 매화는 주인이 없어도 그 봄을 잊지 않았구나.)
라는 시를 읊었는데 다음해 봄에 그 매화가 이곳으로 날아와 피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 고목이 된 그 매화(신성시하여 온갖 종이부적으로 감아놓은)는 꽃망울을 터뜨리려고 한다. 신사에 들어가기전 우물에서 손을 씻는다고 하여 이곳 관습대로 차거운 물에 손을 담그고.... 입구에 있는 소(동상)를 만지면 만진 부위의 자신의 몸이 좋아진다고 하여 머리를 쓰다듬고... 기억력좀 좋아지라고.... 수험생들이 주로 오는 곳이니 머리부분이 닳아없어지지 않을까? 미치자네 사후, 매화옆에 신사를 짓고 학문의 신으로 모셨다고 한다. 학부모들은 신사안에서 연신 빌고 있고 마침 오끼나와에서 여행나온 학생들은 동전 던지고 박수 두번치고 공손이 두손모아 절을 한다. 어디서나 합격을 비는 마음은 한마음이다. 합격을 비는 나무 명패도 가득하고 부적종이까지 사람들로 바글바글하다.
뒤뜰로 가니 매화나무가 가득하다. 2월말쯤오면 장관을 이루겠다싶다. 가만히 들여다보니 홍매화, 백매화, 청매화 고목들이 줄지어 서있다.
주변산들도 연녹색으로 옷을 갈아입으려 한다. 바야흐로 이곳은 봄이 무르익어가고 있다.
신사를 나와 무병장수하게한다는 매화모양을 한 찰떡(속에는 팥앙꼬)을 먹고 canal city로 간다.
인공운하를 옆에 끼고 두채의 빌딩이 들어서있다. 현대식으로 세련된 빌딩이다. 운하를 따라 거닐게 되어있어 쇼핑족과 떨어져 일행중 쇼핑에 관심없는 초등생 남자아이와 건물을 살펴보았다.
운하를 따라 거니니 작은 공연장이 있고 입구는 청계천과 비슷하다. 누구의 아이디어가 먼저일까?
건물밖으로 나와 거리를 건너니 (우측통행이라 이리저리 잘 살펴보아야) 갯벌을 그대로 살리고 그위를 여러개의 목조다리(보행용)로 연결해놓았다. 자연환경을 훼손치않고 그대로 도시에 살려놓은 흔적이 보여 아름답다.차도가 어디있을까? 하고 살피니 다섯개정도의 목조다리 건너편에 차들이 즐비하다. 다리건너가니 천변 산책용 도로가 나온다. 야시장이 이제 기지개를 피려고 하고, 갈매기들은 먹이를 찾아 이리저리로 몰려다닌다. 일본에서는 까마귀가 흔하다. 나가사끼에 원폭이 떨어져 죽은 수많은 조선인 시체위에 까마귀떼가 까맣게 덮었더라는 소설이 (박범신의 '한반도'였나) 생각난다. 가로수 주변은 팬지꽃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기온이 낮지않은데 바람탓인지 추위가 몰려온다.
건물 안 서점에서 미스터 초밥왕부터 찾았보았지만, 내게 익숙한 만화들은 찾기가 어렵다. 초등생꼬마는 '도라이몽'인가를 찾아내고 반가워한다. 아직 한국에 나오지않은 신판이라나 . 확실히 세대차가 난다니까....
일행을 만나 일본라면으로 허기를 채우고 공항가는 버스에 몸을 싣는다.
경제성장률 제로인 나라라 그런지 우리나라같은 역동성이 와닿지가 않는다. 그 대신에 환경을 살리려 애쓰는 모습이 보이고 사람들 표정에서는 평온함이 묻어난다.
비행기에 올라 신문을 펼쳐드니 그 며칠새 주가는 곤두박질치고있고 영어교육이 1면을 장식한다. 영어수업은 물론이거니와 모든 과목을 영어로 수업한다? 이 사람들이 영어에 트라우마가 있나?
음.... 수많은 영어선생들이 무능력하면서 기득권만 수호하려는 이기주의자로 찍히겠군... 무한경쟁의 시대에 학교는 앞으로 5년동안 얼마나 시달릴까?....
일본은 영어간판도 찾기 힘들고 쉬운 영어도 못알아들어도 경제강국이건만, 영어 = 경제력이라? 글쎄요... 역시 다이내믹한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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