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향기 감도는 내포땅 예산
새벽부터 서둘러 약속장소로 향했다. 이번 답사 코스는 충남 예산. 예산에는 은근히 볼 것이 많다는데 오늘은 어떤 기쁨으로 다가올지. 서울을 벗어나 서해고속도로로 들어서니 가을 색으로 변해가는 산천이 아름답다. 가을 하늘은 투명하게 파랗고 나무들은 초록빛을 잃어간다. 간간이 눈에 띄는 민가. 고층건물이 시야를 가리지 않아 마음이 편안하다.
예산. 삽교리 세심천 온천을 끼고 걷는다. 수암산 자락에 자리 잡은 ‘석조보살상’은 어떤 모습일까. 키 큰 소나무는 시원한 그늘을 내주고 흙은 보드랍다. 십 분쯤 오르니 키가 5.3m인 보살상이 아침 햇살 아래 환하게 미소 지으며 너른 덕산평야를 내려다본다. 관을 쓴 머리 위에 육각형 모자를 이고 옷자락을 부드럽게 날리며 석장을 짚고서 우뚝 서 있다.
고려시대 보살상으로 주민들의 평안을 지켜주는 미륵불의 모습이다. 갓이 우산 역할이었을까. 다른 몸체에 비해 얼굴이 유달리 깨끗하고 뽀얗다.
“날마다 세수하고 단장하시나봐” 누군가 한 얘기에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흙길을 내려오자니 바람결에 솔 향이 은은히 퍼진다. 홍성 용봉산에서 수암산까지 위 능선이 10km 정도. 수암산이 해발 260m이니 쉬엄쉬엄 편안히 걸을 수 있으리라.
“예산 가서 옷 잘 입은 체하지 말고 홍성 가서 말 잘하는 체하지 말라”고 했던가. 조선시대에 덕산 상무사를 기점으로 각지에서 온 보부상들이 물건을 교류하던 광경을 ‘상무사유물전시관’에서 볼 수 있다.
전시관 안에서 엿장수, 소금장수, 옹기장수 등의 모습을 재현해 놓은 장날 풍경을 대하니 어릴 때의 장날이 떠오른다. 그 시절 장 구경은 얼마나 신기했던지, 약장사가 제일 인기였는데…. 나이 드신 분들은 일일이 살피며 옛 추억을 더듬고 아이들은 백 년 전도 더 오래된 옛날 일로 알고 바삐 지나간다.
“피 끓는 청년 제군들은 아는가 모르는가. 무궁화 삼천리 내 강산에 왜놈이 왜 와서 왜걸대나(광분하는가)…”고 울분을 토했던 윤봉길 의사.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들어서니 옷깃이 여며진다. 일신상의 편안함을 쫒는 지금의 삶이 스쳐가며 문득, 시대를 고민하며 갈 길을 찾으려 밤을 지새우던 이십대 시절이 떠오른다. 스무 살 안팎에는 건장한 청년이었던 윤 의사. 사형 즈음엔 볼이 움푹 패고 눈빛은 더욱 이글거리며 타오른다.
도중도(島中島) ― 두 물길이 생가 옆을 흘러 배 모양의 섬을 만들었다. 솟대로 꾸며진 다리를 건너니 윤 의사 생가인 ‘광한당’과 성장기를 보내며 직접 이름을 지었다는 ‘저한당(구할 저狙)’이 나무 숲속에 모습을 나타낸다. 민가로서는 제법 규격을 갖춘 농가로 당시 부유한 집안이었으리라 여겨진다.
덕산보통학교에서 수학 중 삼일운동을 맞아 자퇴하고 한학을 배우며 뜻을 세우던 나이가 고작 십대 초반이었다. 야학을 열어 농민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깨우치려 한 나이가 십대 후반이었으니 지금의 우리 교육을 되돌아 볼 일이다.
나이 23세에 ‘장부는 집을 나가면 살아 돌아오지 않는다’는 말을 남기고 떠나 돌아오지 못했으니 얼마나 고향을 그리워했을까.
생가를 둘러싼 돌담장 위로는 담쟁이 넝쿨이 가을빛으로 빛나고 숲은 아름드리나무들이 그득하여 아름답다. 윤 의사에게 진 마음의 빚이 어느 정도 위로가 되려나.
수덕사 앞 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된장찌개, 더덕구이, 도토리묵, 갖가지 나물종류……. 고추장에 버무린 나물이 낯설어 주인에게 물으니 ‘오가피순’나물이라고 알려준다. 반찬이 정갈하고 늙은 호박을 넣은 된장찌개가 일품이다.
느린 걸음으로 수덕사로 올라간다. '수덕여관’과 ‘수덕사선미술관’ 간판이 나란히 걸려 있다. 나혜석, 이응로, 김일엽, 박귀희 등 당대 인물들의 사연이 절절이 배어있는 수덕여관 객실에는 수덕사 주지 스님의 그림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스무 살 연하의 여자와 파리로 떠난 남편을 그리워하며 쓸고 닦으며 쓸쓸히 살았을 박귀희 여사. 그녀는 이십년 후에 다시 돌아온 남편을 깍듯이 모셨다지.
내 마음을 읽듯 어느 분이 “나혜석은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았는데, 이응로 화백은 다시 돌아와 주인 행세를 하였으니 얼마나 불합리 하냐”며 언성을 높인다.
이응로 화백이 새긴 암각화 위로 감이 노랗게 익어 가고 있다. 무수한 사연과 잊혀진 세월을 감싸 안은 듯이 오래된 굵은 나무들에서 잎새가 하나 둘 떨어진다. ‘수덕사’ 오르는 길은 완만한 비탈길이다.
금강문, 사천왕문을 지나고 누각 아래 마지막 관문에 서 있다. 그 문에 들어서면 부처님이 보일까. 문안에 들어서니 경사가 높은 계단이 앞을 막는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러야 부처님을 뵐 수 있다는데, 한낱 소시민이 쉬이 얻을 수 있으랴. 대웅전, 고려말기 목조건물로 올해가 700주년이다. 쇠락한 단청이 더욱 담백하고 평온한 느낌을 주는 단아한 건물이다.
대웅전 안을 들여다보았다. 천정에 아무 장식이 없어 더욱 고색창연하다. 멀리서 측면을 바라보니 추상화 한편이다. 기둥, 서까래, 들보가 노란색 벽면과 조화를 이룬다. 못자리를 청동으로 동그랗게 입힌 모양새가 칠백 년 전 목공의 감각이 예사롭지 않았음을 말해준다. 잠시 저기에 매달려 작업하던 고려시대 목공들을 떠올리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나라 최고의 명당자리로 일컬어지는 ‘남연군묘’로 향한다. 예산 들녘은 어딜 가나 풍요롭고 포근하다. 곡식은 익어가고 잘 닦인 길과 꽃들이 방문객을 편안하게 한다.
흥선대원군이 폐사시킨 가야사 터에 앉아 잠시 숨을 돌리고 원래 금탑 자리였던 묘역으로 오르니 앞이 시원스레 트였다. 양쪽 산자락을 거닐고 언덕배기 양지바른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자리로 이장하고 2대에 걸쳐 허울뿐인 천제를 지내고 결국 나라가 망했으니 과연 명당일까. 그 꼴이 미워 저 멀리 계곡에 있는 돌부처가 돌아앉았다지.
덕산을 지나 봉산면으로 들어선다. 화전리 마을 입구에서 산길로 올라가니 호젓한 누각 안에 ‘사면석불’이 보인다. 평범한 바위덩이 사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다. 머리와 손은 잘린 채 불꽃같은 광배를 하늘로 올리는 형상이다.
땅속에 비스듬히 박혀 있던 석불을 발굴한 때가 1983년. 덕산 지방은 백제시대에 사신단이 당나라로 향하는 길목이기에 사방 어디서나 부처님이 보호한다는 믿음아래 사면불상이 세워지지 않았을까. 내려오는 길목이 온통 사과나무다. 석불이 지켜주어 이처럼 평화로운가.
신암면 용궁리 ‘추사 김정희고택’. 뒤는 동산이고 앞은 예당평야가 내다보인다. 증조부와 영조의 딸 화순옹주 묘역을 둘러본다. 추사가 중국에서 얻어와 심었다는 백송이 껍질을 하얗게 벗어내며 위태롭게 서 있다. 그 옆 토종 소나무는 기백이 청청하건만. 남편이 죽자 십오일 동안 금식하여 따라갔다는 화순옹주. 드라마 ‘이산’에 나오던 화완 옹주와 자매일 텐데….
고택은 대문채, 사랑채, 안채, 사당채로 이루어졌다. 대문을 들어서니 크지 않은 사랑채가 단아하고 기품이 있다. 아뿔싸! 해시계로 쓰이던 ‘석년’에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시각적인 아름다움을 주려 만든 작약 화단 탓이다. 선생의 실제 작품이라는데 실험을 해보지 못해 아쉽다.
안쪽 안채에선 규모 있게 살림하던 여인네들이 떠오른다. 양반가의 반듯한 기와집에 살던 반듯한 사람들 내음이 난다. 여러 세대가 살면서 불편하지 않도록 드나드는 문을 따로 내어 부엌문을 열면 바로 우물이 나온다. 며느리가 사당에 자주 드나들도록 쪽문도 따로 냈다. ‘내 사람 만들기 작전’이랄까. 명문가로서 자긍심을 갖게끔 집안 식솔에게 세심히 배려한 마음이 엿보인다.
추사 묘역을 돌아 나오니 곳곳에 소국이 소복하고 구절초 흰 꽃은 저녁 바람에 한들거린다. 예산을 벗어나는 길. 석양이 드리워진 들녘은 아침나절에 비해 더욱 누렇게 물들었다. 낮은 구릉지대 한 가운데로 길이 나있어 양옆으로 사과밭이 펼쳐진다.
평활한 땅으로 평온하고 여유 있으며 걸출한 인물이 태어나 뜻을 세운 강인한 땅이다. 예산이 고향인 내 친구는 늘 여유있고 부드러워도 결정적인 때엔 자기주장이 확실하다. 친구의 심성이 바로 이 땅에서의 삶과 무관하지 않으리.
꽃들 편집위원 정인숙(isuk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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