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기

영천, 옛마을의 겨울

정인숙 2012. 12. 22. 13:20

12월, 한해가 저물어간다.

2012년... 무엇을 하였던가.

답사 출발 하루 전에 집을 나서야하고 결혼식 두 건이 있음에도 12월 건대답사에 합류하였다.

영천과 포항지역은 개별적으로 가기가 어려울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어 짐을 꾸렸다.

 

겨울철엔 버스창에 김이 서려 시야를 가린다.

버스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다섯 시간 정도 달려 영천에 닿았다.

 

 

 

매산종택

영천이 낳은 큰 인물은 정몽주이다. 영일 정씨들이 무리지어 살고 있는 땅... 임고면 삼매리 매곡마을에 매산종택이 자리잡고 있다. 마을 곳곳에 과수나무가 맨몸을 드러내고 있다. 나무를 매만지고 계시는 주민에게 물으니 복숭아나무란다. 영천 복숭아라... 다음에 영천 복숭아를 보면 이곳이 생각나겠지. 이렇게 나와 인연을 맺었으니 다시 돌아보게 될터이고.

 

매산 정중기(1685 ~ 1757)가 터를 닦고 그의 아들이 완공한 집.

 

매산종택은 매화낙지형의 명당에 자리잡았다고 한다. 뒷산은 매화가지요, 집은 매화의 꽃술이며, 건너다 보이는 앞산은 이 매화를 찾아 날아드는 나비에 비유하는 매화낙지형... 내 눈으론 그 지고한 뜻을 살피긴 어렵다.  앞산이 높아 계곡물이 흐르고 뒤산이 얕으막하다.

 

 

 대문에 이르는 고샅길.

 골목을 비스듬히 휘감아 대문을 세웠다. 한번 들어온 복이 다시 나가지 말라는 뜻이란다.

 

 

'골짜기에 봄뜻이 가득하다' '문에 맑은 기운이 가득하다'

입춘대길만 보아오다 이런 글귀를 보니 사대부집 대문에 들어선 느낌이 확연히 든다. 

  따뜻한 봄기운에 꽃들과 만물이 활짝 피어나는 동네를 상상해본다.

 

 

 

 돌로 축대를 높이 쌓았다. 여름날, 돌축대를 따라 담쟁이가 휘감은 풍경을 상상해본다.

 

 안채뜰.

여인들은 여기서 한바퀴 돌며 일생을 보낸다.

새로 시집오면 머릿방을 쓰다가 나이 들어 시어머니로부터 집안살림을 물려받으면 안방으로 옮겨가고, 늙어서 며느리에게 살림을 물린 뒤에는 아랫방으로 물러났다가 죽음을 맞이하면 골방에 눕혀진단다. 

 방 네 개를 도는 것으로 끝이 나는 여인의 한 평생.... 저 앞산에 꽃 피고 잎 지고 눈 쌓이고... 내 나이면 아랫방으로 옮겨 살 나이? 

 

 액막이주문.

"검불선생이 박을 숨거 고슈아비 ㅅ부릿근어 시들시들" 

식구가 가래톳이 섰을 때 환자의 키만한 높이에 이렇게 써 놓으면 가래톳이 삭는다고 ....

 

 사랑채 누마루 한귀퉁이.

그 옛날 이집 주인은 갓을 쓰고 장죽을 물고 저 앞산을 내다보며 무엇을 하였을까.

그의 기침소리, 호령소리에 아랫것들이 주루룩 머리 조아리고 대령하였겠지.

 

 대문 양 옆에 있는 마굿간과 마부의 방.

 

 마을 길을 따라 걸어간다. 골짜기를 따라 흐르는 얕은 내를 건너 정자에 닿는다. 산수정.매산이 글 읽고 산수를 즐기던 곳이다.

 

매화가 피지 않는 매화골이지만,

 봄이면 산수유, 사과꽃, 복사꽃이 차례로 피어나 앞산 뒤산 연한 봄빛과 어우러져 찬연한 봄날이 피어나는 곳에서 다가올 봄을 꿈꾸어본다.

 

 

 임고서원. 정몽주의 고향 임고에 세워진 서원. 평양 선죽교를 본따 만든 다리.

 

 

 영천향교 전경.

언덕길에서 바라봐도 반듯한 배치가 눈에 들어온다. 전학후묘의 배치.

 

유래루: 깨우치러 온다는 뜻이라는데... 검색어에 나오지 않는 한자.

400년 묵은 회나무가 든든히 서 있다. 향교나 서원의 뜰에는 주로  은행나무가 서있다. 행단이라 하여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서 제자들을 가르친 데서 유래한다. 회나무의 유래는.... 낙양 동쪽의 회나무숲에서는 선비들이 손수 쓴 책을 사고 팔고 강론을 하던 데서 연유를 찾을 수 있다고.

 

명륜당 안에서 '너영나영'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살짝 들여다보니 가야금을 켜는 단아한 모습이 발걸음을 머물게 한다.

지금껏 보아 온 향교는 거의 빈 집으로 잠겨져 있거나, 밀고 들어가면 녹슨 쇠소리를 내 썰렁하였는데,  

영천향교에선 왠지 훈훈한 온기가 느껴졌다.

영천향교를 감싼 따뜻하고 활기찬 기운이 바로 사람 내음이었다.

 

 대성전. 향교 뒷쪽에 자리잡은 유교사원. 공자님을 모신다.

 

 숭열당.

 세종 때 쓰시마 정벌에서 공을 세운 위양공 이순몽이 살던 집의 사랑채.

 

신월동 삼층석탑.

통일신라 후반기에 들어서면 석탑에 무늬가 들어간다. 팔부중상과 문비 조각. 

짧은 겨울해가 저물어가려한다.  석탑 보러 가는 길이 달라져 행인에게 물으니 고개를 젓는다.

이정표도 없고... 10여년 전 이곳을 답사하셨던 분들이 옛 기억을 더듬어 저수지를 따라 걸어가니 석탑이 우뚝 버키고 서있다.

 이런 석탑을 찾아 다니는 맛이 답사의 매력이랄까.

 

 

 청제비와 청제중립비.

신라시대에 처음 둑을 쌓은 내력과 고친 연유를 새긴 청제비(오른쪽).

 1688년에 흙속에 묻혀 있던 청제비를 다시 세우고 그 사연을 적은 청제중립비(왼쪽)

 

청못.

536년 이전에 축성. 4~5세기까지 맥류가 주작물이다가 5~6세기에 들어서서 벼의 재배기술이 확산되면서 수리관개시설 발달.

 저수면적이 11만 ㎡이고 저수량이 약 59만톤이라는데, 두동강 나있다.

 못 한 가운데로 경부고속도로가 생겨 자동차들이 관통...

답사를 다니다보면 문화의식이 보인다.

언제쯤 '잘 살아보세'가 끝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