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시니어들을 만나다 _ <희망사업견문단> ‘시니어공헌센터’ 들여다보기
북한산 자락, 평창동을 가노라면 늘 등산객을 마주친다.
중복을 앞둔 여름 한 낮, 사람들은 시원한 바람이 그리워 땀방울을 흘리며 산으로 발걸음을 내 딛으리라.
희망제작소 희망모울에 들어섰다. 오늘은 <희망사업견문단>이 ‘시니어공헌센터’를 들여다볼 참이다.
사회자 홍정구 선생님도 시니어다.
홍선생님은 참가자들이 서먹하지 않도록 서로 얼굴 쳐다보고 인사하기, 각자 소개하기 등 가볍게 이끌어간다.
참가자들이 엄마와 동행한 중학생부터 퇴직을 앞 둔 장년층까지 참으로 다양하다.
홍선생님을 쫓아 박수 치고 소리도 지르다 보니 한결 친근해졌다.
원유로(one euro) 맨이 아이디어 시초
김돈회 연구원이 무대에 올라섰다.
“‘시니어사회공헌센터’는 ‘해피시니어’란 이름으로 2007년부터 시작했어요.
원순씨가 독일에서 ‘원유로(one euro) 맨’인 ‘루거 로이케’씨가 아이디어의 시초입니다.
퇴직 후, 1유로를 월급으로 받으며 사회공헌활동을 하는 분이거든요.
또 한 분은 지미카터 전 미국대통령이 롤모델이 되었습니다.
해피시니어는 크게 두 가지 일을 합니다.
교육 프로그램인 ‘행복설계아카데미(이하 행설아)’를 운영하여 퇴직한 분들이 전문성을 발휘해 공익사업을 하도록 돕습니다.
3년 동안 357명이 수료하여 60% 가량이 각 단체에서 일하고 있고요.
연말에는 ‘해피시니어 어워즈’ 시상도 합니다.
또 다른 프로그램으로 ‘NPO 경영학교’, ‘퇴근 후 Let's’ 도 운영합니다.
다른 축은 연구, 출판 사업입니다.
그 외 ‘NPO정보센터’를 운영하고, 행설아 후속 모임인 ‘행설아회’를 통해 수료자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게끔 지원하고 있습니다.”
개안을 했다
행설아를 수료하고 각 분야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생생하게 현장 이야기를 전해줄 시간이다.
첫 번째로 한석규(62)선생님이 연단에 올랐다.
행설아 5기를 수료하고 ‘필리핀이주민공동체’ 자원 활동가이며, ‘희망도레미’를 설립한 분이다.
“저는 은행에서 32년 6개월을 근무했습니다. 직장생활 동안 개인 시간을 가질 수 없기에 퇴직하면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한 동안 여행 다니고 자유롭게 어학 공부도 하고 농장일, 손자 재롱에 즐겁게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버님 같은 장인어른이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시간이 기다려주지 않는다고 깨닫고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 희망제작소 문을 두드렸습니다.
현역 시절에는 내 가족을 위해 살았고 돈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했다면 앞으로는 내가 접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었지요.
행설아 교육 후에 ‘개안을 했다’고 스스로 평합니다. 구체적으로 나아갈 길을 알았으니까요.
또 박변호사님이 ‘가보지 않은 미답의 길이 많다’며 ‘함께 하면 만들어진다’고 용기를 북돋아주었지요.
‘필리핀이주민공동체’는 제 돈을 들여 일해야 하는 곳입니다.
이주민 임금체불이 발생하면 전화를 하거나 직접 방문하여 돕습니다.
오늘도 임금 35만원을 주지 않는 사장님한테 세 번이나 전화하였지요.
두 번째는 다문화 가정이 늘면서 부부 문제가 발생합니다.
중립적 입장에서 판단하고 도와주려고 법원, 병원등 관련기관을 찾아다니고요.
또 비자 연장문제를 해결하려고 출입국사무소에도 자주 갑니다.
가정도우미로 일하려면 범죄사실 증명서가 필요하니 경찰서에도 빈빈히 드나듭니다.
한국어가 서툰 그네들에게 생기는 모든 문제에 개입하는 거죠.”
이주민센터가 개인적인 에너지를 쏟는 곳이라면 ‘희망도레미’는 축적된 경험을 나누는 장이다.
“ ‘희망도레미’는 소액대출 사업을 하려고 출범했습니다.
젊은이들이 적은 돈을 받고 그 일에 뛰어들기에는 무리라고 판단하여 틈새 일을 맡은 거죠.
최근엔 미소금융이 생겨 저희는 컨설팅 업무를 주로 합니다. 소상공인들을 대상으로요.”
한석규 선생님은 행설아회 총회장으로 수료생들의 든든한 기둥 역할도 한다.
앞으로 행설아 회원이 설립한 단체를 중심으로 수료생들이 활동하게끔 인도할 예정이라니 그 어깨에 실린 무게가 묵직해 보인다.
‘돈을 벌게’ 지원
이어 빨간 셔츠에 진 바지, 하얀 머리칼의 박재석(54) 선생님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
행설아 9기를 수료하고 ‘한국여성재단’ 여성경제사업단 부단장으로 일하는 분이다.
“ ‘한국여성재단’은 ‘딸들에게 희망을’이란 슬로건으로 일합니다.
여성NGO들이 활동하게 도와주고 빈곤한 여성을 지원합니다.
어떻게 사업하느냐.
자유공모사업을 해서 돈을 보태드립니다. 돈 조달은 모금이고요.
여성 활동가들이 여성리더쉽을 기르도록 교육하고 건강진단 사업도 하고 휴가도 보내줍니다.
또 시설 화장실 개보수 사업도 합니다. 또 이주여성 고향 방문사업, 교복지원 사업을 하죠.
저는 빈곤여성들이 창업하는 일을 도와줍니다. 전세금 대출도 하고요. 즉 ‘돈을 벌게’ 지원하는 사업이죠.
요즘엔 돌봄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에 도우미 양성소를 만들고 사회적 기업으로 육성하려고 합니다.
한 달에 열흘 정도 지방 출장을 다니고 있고요.”
여성들을 대상으로 여성들과 일하는 박재석 선생님.
본인이 전혀 여성스럽지 않은 유일한 남자 직원이다가 요즘 젊고 멋진 남자가 들어와 인기가 떨어졌다며 특유의 경상도 어투로 웃음을 선사한다.
“저는 회사 다닐 때 마케팅, 영업 관리, 채권 등 영업 담당이었습니다.
27년간 다녔지요. 퇴직 후, 1년간은 여행 다니다 슬슬 지루해지던 중 웹에서 행설아 교육을 만났습니다.
교육 받으면서 생각이 바뀌고 방향을 잡았습니다. 수료 후에 인턴으로 여성재단을 추천해 주더군요. 사회적 기업에 가고 싶었는데요….
제가 놀면서 심심하여 엑셀을 배웠는데 엑셀 일을 할 사람이 필요했대요. 제가 가서 엑셀 관련 밀린 일을 하루 만에 하고 …
한 달 동안 그 일만 했어요. 다시 한 달을 연장하여 마케팅과 강의 자료를 만들고 … 다시 아르바이트로 6개월 동안 돌봄 사업을 했죠.
그 후 정식 사원이 되었어요. 저는 일하면서 계속 할 일들이 생겨났으니 참 운이 좋은 사람이죠. 여러분에게 행운을 나눠주고 싶어요.”
직접 여성 채권자들을 만나고 돌보고 교육시키고 … 심리적으로 어려울 만도 한데 유쾌한 얼굴로 씩씩하게 이야기를 끌어 나가는 분이다.
사진을 배우다가 사진 일로 나서다
나종민(47) 선생님은 아직 시니어라기엔 젊은 분이다.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요즘 40대 중, 후반이 고민이 많습니다.
직장을 다니건, 잘리건 조만간 다른 것을 해야 하지만, 40대에 그만 둔 사람들에 대해선 여론 조성이 되지 않습니다.
애들은 커가죠, 직장은 달랑달랑하죠. 그 일을 그만두고 돈 벌 재주가 있느냐가 문제인거죠.
저는 외국회사에 오래 근무했습니다. 사회적인 잣대로 성공했다는 외국회사 지사장으로요. 하지만, 연봉과 스트레스는 비례합니다.
저도 한동안 불면증에 시달렸어요. 분기별 실적 보고 관계로 숫자 3, 6, 9, 12를 지우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돈을 벌지만, 잃는 것이 상당히 많은 생활이었습니다. 건강, 시간, 삶….
직장을 그만두고 내가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것을 생각했습니다. 영어와 사진 찍기, 두 가지에 몰두하며 살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혜택 받은 것을 나누고 싶었습니다.
인터넷을 통해 행설아를 접하고 수료할 즈음, ‘도봉숲속마을’에서 사진과 동영상을 촬영할 사람이 필요하다 하여 지원하였고 시니어 인력풀인 ‘LET'S'가 발족되어 간사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숲속마을에서 1박 2일 장애인 치유 프로그램에 참가하여 발로 뛰어다니며 손가락이 굽을 정도로 사진을 찍어댔죠. 딱 제 적성에 맞아 기뻤습니다. 요즘엔 노인복지센터에서 사진을 강의합니다. 두 가지 일을 하는 셈이죠. 또 조만간 사회빈곤층을 대상으로 하는 영어 교육에 참가할 예정이고요.”
나선생님은 일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솔직하게 전한다. 'LET'S' 영어 통번역단은 방학이라 영어 잘하는 대학생들이 넘치니 일자리가 부족하다고. 또 큰 NPO에서 받는 냉대… 하루 교육일지만 적고 나오자니 서글픔이 인다고.
나선생님의 웃는 얼굴, 사진 찍는 힘은 어디서 나올까.
“이틀 동안 발품 팔아 천여 장을 찍습니다. 밤샘 작업 후, 수료시간에 동영상을 상영하지요.
아이들이 자신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상물을 보면 환호성을 지르면서 기뻐해요. 그 환호성이 제게 그대로 전달됩니다.
희열감으로 피로감이 싹 날아갑니다.
더욱 기쁜 일은 제 아이가 인생설계 숙제에 아빠처럼 봉사활동 하면서 살고 싶다고 작성한 것을 보았을 때고요.”
영리단체의 효율성과 능률을 접목
질문시간이다. 청중들은 제1 직장과 제2 직장 사이의 생소함이 궁금하였다.
“스스로 차이점을 갖지 않으려고 한다. 모든 것을 물어보고 겸손하게 지내려고 애쓴다.”
“조직을 운영할 때 영리단체의 효율성과 능률을 접목시키려고 노력한다.”
퇴직할 예정인 참여자는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가 문제다.
“할 수 있는 것을 배워서 키워야 한다. 일종의 투자다. 막연히 봉사하겠다면 힘들다.
희망제작소가 뿌리 역할을 하니 우리는 가지치기가 수월하다. 든든한 기둥이다.”
작은 일, 대수롭지 않은 일을 기쁜 마음으로 하는 자세도 중요하다.
섭섭하게 맞아주어 서운해도 극복하고 장벽을 깨치면 내가 서있을 자리가 따뜻한 시선으로 채워진다고….
“몸은 힘들어도 나를 믿고 기다리는 눈을 생각하면 힘을 얻고 나간다.”
때론 함께 웃고 때론 함께 고민하던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청년 시니어를 만나니 몸과 마음이 시원해진다. 여름 무더위가 저 멀리 사라진다.
청중들이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하니 더욱 갈증이 가시는 듯하다. 다음 사업은 무엇일까.
[글_ 정인숙, 민들레 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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