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말이가 생각보다 어렵네요. 자꾸 한쪽이 찢어져요.”
남학생이 뒤집개를 양 손에 쥐고 열심히 달걀을 맙니다. 얼굴에 흐르는 구슬땀으로 짭짤한 달걀말이가 탄생할 듯합니다.
빨간 티셔츠에 반바지, 새집머리의 우석훈 선생님은 땀방울이 맺힌 얼굴을 갸우뚱하며 김치찌개 맛을 보시고요.
돼지고기를 넣고 김치를 넣고 양파를 넣고 두부를 넣고…
저쪽 팀은 얌전히 둘러 앉아 예쁘게 작품을 완성하고 있습니다.
얇은 무쌈에 각종 야채를 담아 조심스럽게 말고 그 위에 파란 실파로 돌돌 쌉니다. 한쪽에선 한창 멸치를 볶고 있네요.
전국에 덮친 장마가 잠시 소강상태인 7월 20일 오전, 습도와 무더위로 흘러내린 땀방울의 결정체들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드디어 반찬이 완성되었습니다. 무쌈 겨자채, 달걀말이, 고추조림, 멸치볶음이 식탁 위에 보기 좋게 차려졌습니다.
우석훈 선생님이 잠시 땀을 훔치고 시식하시네요.
“오우! 멸치볶음이 제일 맛있는데요. 멸치볶음 1등! 2등은 무쌈.”
‘1등이라니~~!’ 나는 손 하나 까닥하지 않고 멸치볶음 코치만 했는데도 부상을 받았습니다. 학생들이 우왕좌왕하기에 얼렁뚱땅 주부가 조금 코치했을 뿐인데요.
오전 9시 반부터 반찬을 만들기 시작하여 벌써 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여럿이 손을 합하니 몇 가지 반찬이 뚝딱 만들어집니다.
뒤늦게 ‘희망제작소’ 터줏대감 원순씨가 일손을 보태려 하시지만 이미 모든 일이 끝났습니다.
바로 ‘자신’이 희망
오늘은 회원 중 88만원 세대들을 특별히 모신 날입니다.
일행들은 이제 원순씨를 따라서 ‘희망제작소’ 투어를 시작합니다.
“JSB는 ‘지구에서 살아남는 방법’ 단체의 약자예요. 거기서 이 공간을 만들어줬어요. 주방 식당이 있으니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고 아주 좋아요. 여기는 천사클럽이에요. 평범한 주부인 정미영 선생님이 천만 원을 기부하여 시작되었어요. 천사클럽 회원 분들은 작게 자기 식으로 모으며 다양한 방법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기금은 일상 경비로 쓰지 않고 더 의미 있는 일을 위해 모으고 있어요. 이것은 백년 칼렌다입니다. 백년 앞을 생각하며 인생을 계획하고 있는 칼렌다죠.”
다음은 제일 궁금한 아이디어 뱅크, 원순씨 사무실입니다.
경제문제 자료, 지역기업을 키우는 아이디어, 우리 경제를 살릴 생협. 협동조합으로 경제를 살릴 방안 등 자료가 가득합니다.
원순씨는 91년에 간행한 영국 가드언지를 보여줍니다. 놀랍게도 모금에 관한 기사가 나와 있네요.
‘Check Included'란 기사가 바로 아름다운 재단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전하십니다. 지금도 모금의 중요성을 깨달아 희망제작소에 <모금전문가학교>를 개설하였지요.
“9월에 경희대에서 열리는 <천개의 직업을 드립니다>행사를 통해 아이디어를 나눠줄 예정입니다. 희망을 찾으실 분은 저 문을 열어보세요.”
회원 분이 문을 열자 거울 속에 ‘내’가 보입니다.
“네, 바로 '자신'이 희망입니다. 이쪽은 공공리더 교육을 담당합니다. 이 지도는 희망제작소와 인연을 맺은 지역을 표시하였습니다. 경주, 거창, 통영, 안산, 화성 등. 좋은 시장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함께 지역 발전을 모색하는 공공리더들입니다.”
좁은 공간에서 몸을 틀자 뿌리센터를 안내합니다.
“지역 내 여러 가지 문제들을 점검하고 대안을 찾고자 연구하고 있습니다.”
“목포 내 일본식건물 지대에서 건물을 보존하여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서 더 나아가 이 공간을 예술가들이 활동하는 거리로 만들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입구 쪽 서가에는 희망제작소에서 발간한 도서가 가득 꽂혀 있습니다. 동탄 신도시 저탄소 도입, 거창 갈게리 숲길 복원작업 등 낮선 제목들이 흥미롭습니다.
2층으로 내려가는 복도, 별들이 반짝입니다.
“회원가입 코너입니다. 박물관이나 전시관을 돌고 나오면 물건을 팔잖아요. 여기는 물건 대신에 회원을 삽니다.”
원순씨는 참 재미있게 표현하십니다. 압박을 많이 받아도 늘 웃고 상황을 뒤집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십니다.
비관적인 상황이었어도 회원이 꾸준히 늘어 현재 회원은 5천명. 앞으로 매달 만원 회비 내는 회원 만 명이 목표라고 하시네요.
그러면 일상적인 연구를 꾸준히 할 수 있으니까요.
희망제작소만의 아이디어 명함, 멸종위기종을 짝꿍으로 만드는 이야기도 하십니다.
원순씨는 넓적부리 도요새지요. 참여자들은 ‘나는 어떤 동물을 짝꿍으로 할까’ 골똘히 생각에 잠깁니다.
시민 제안 아이디어 중 입영통지서에 전역날짜가 적힌 통지문이 신선하게 다가옵니다.
2층으로 내려가니 젊은 연구원들이 자료더미와 책자에 쌓여 코를 박고 일하고 있습니다.
희망제작소가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보는 듯해 모두들 흐뭇해집니다.
세대 내 경쟁과 세대 간 경쟁을 함께 하는 20대
11시 반이 넘었습니다. 다시 식당으로 올라갑니다. 어느새 식탁 위에 음식이 차려져 있네요.
우선생님의 노련한 솜씨가 녹아있는 김치찌개를 맛봅니다.
우선생님은 가정 일을 대수롭지 않다는 듯 쉽게 해결하시는군요. 다년간의 노력으로 생활화되셨나 봅니다.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우선생님이 간식으로 토마토를 직접 챙겨오셨네요.
식사를 뚝딱 해치우시고 트위터로 소통중이신 박원순씨. 건강도 챙기셔야죠~~.
<88만원 세대>의 주인공 우석훈 선생님은 기타를 튕기며 <일어나>를 부르십니다. 편하게 이야기나 나누자며…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네♬
이상은의 <언젠가는>을 서툴게 부르시고 박은옥의 <고추잠자리>도 들려줍니다.
굳이 잘 부르려고도 하지 않고 편안하게 거리낌 없이 자신을 드러내십니다.
솔직하고 당당한 태도에 참석자들이 압도당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저 자유로움과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
우석훈선생님은 <탈토건 1세대>란 제목으로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한 사람을 분석해봅시다. 아버지에게서 경제력을 받는 시기, 혼자 버는 시기, 다음 세대에게 주는 시기를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 시대는 50대가 많이 주고 20대가 받아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직업을 주지 않습니다.
직업을 가져도 세대 내 경쟁과 세대 간 경쟁을 함께 해야 하죠.
연공서열이 없어지면서 세대 간 경쟁으로 들어갔으니까요.
88만원 세대라 이름 붙인 20대는 대부분 비정규직입니다.
새로 시작하는 자리를 없애고 임금을 깎아 인턴으로 채용합니다. 앞으로 주급 제로 갈 거예요.
주급제로 하면 훨씬 열악해지는 거죠.”
우선생님은 이야기 도중, “술 처먹고… 남편××… 자빠져가고…” 등 비속어를 아무렇지 않게 사용하십니다.
한 인간을 껍데기를 벗고 알짜로만 만나는 느낌입니다.
경제문제에서 교육 문제로 이어집니다.
자기 글을 A4 한 장도 채우지 못하는 대학생들. 암기교육의 후유증이 아닐까 하면서 증거 자료들을 제시합니다.
빈곤한 독서량, 암기위주의 교육, 논술을 암기하는 세대, 난독증이 심해져서 일어나는 현상…
“20대한테 가야 할 복지가 시멘트로 가고 있습니다. 30대 이상은 정서가 토건입니다.
집값이 올라가면 국민경제가 좋아진다고 생각하죠. 20대는 어떨까요? 20대에겐 ‘집’이라는 키워드에 무반응입니다.
‘방’으로 개념이 바뀌면 반응이 격렬해집니다. 부모가 도와주지 않는 이상 20대가 앞으로 집을 가질 확률이 거의 없습니다.
아파트를 위주로 경제지표를 삼는 토건이 작동을 하지 않는 세대입니다.
직업이 있어야 수입이 들어오고 집을 살 계획을 잡잖아요.”
생태적 삶을 사는 20대
20대들의 삶도 등장합니다. 생태적 삶이네요. 조금 먹고, 조금 쓰고, 집에 계속 틀어 박혀서 컴퓨터 앞에 붙어 있고, 대중교통을 가장 많이 이용하는 세대… 의식이 생태적이지 않아도 삶은 생태적인 슬픈 삶.
한국 토건을 움직였던 아파트와 골프가 20대로 넘어오지 않으니 토건세대를 벗어날 거라고 우석훈 선생님은 주장합니다.
앞으로 한국사회가 의식하지 않아도 구조상 받아들여지는 것이 탈 토건이고 경제 위기가 더 악화될 거라 전망합니다.
그러면 20대는 어떻게 살아야하나. 의외의 해답을 찾습니다.
부동산 등 토건과 관련된 경제가 다 죽어도 20대는 죽을 게 없으니까요.
집값이 떨어져도 집이 없으니 무탈하고 융자 자체가 봉쇄되었으니 빚이 없어 더 이상 떨어질 게 없다는 논리입니다.
현재 대부분 비정규직인 20대들이 토건에서 탈토건, 지역경제 시대로 가는 운명의 그 날이 올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지가 20대 들의 몫입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즐겁게 요리에 참여하고, 희망에 찬 희망제작소 사업들을 둘러보며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희망에 들떠 있던 마음이 우울함으로 가득차집니다.
20대는 패배자인가. 그렇다면 20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탈출구나 해방구는 없는 것인가. 오후 두 시를 넘어가지만, 참석자들과의 열띤 질의문답으로 쉬이 끝나지 않습니다.
토건 경제가 깨진다
우석훈 선생님은 토건 경제가 깨지면 구조가 바뀌어 20대엔 유리할거라고 예측하십니다.
더불어 기계보다는 사람을 많이 쓰는 사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논리를 현대자동차나 유기농 농업을 예로 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경제 산업으로 돌아가게끔 힘을 합쳐야 한다고 전합니다.
“‘대운하 댐을 따라 도서관을 천 개 세우자. 도서관 길을 내자.’ 이렇게 하면 다 먹고 살 수 있습니다. 20대는 집단적 의사 결정이 약합니다. 혼자서는 문제를 풀 수 없고 사회적 관계 속에서 풀어야합니다.
자기가 어떻게 보이는 가에 연연해하지 말고 자기의 정신적 피부를 만들어야 합니다. 국가나 회사에 피부를 빌려 쓰지 말고 피부적 자아를 만들어야죠.”
‘취직 공부보다는 열심히 좋아하는 일 즐기면서 살자. 창의력은 좋아하는 일 즐기는 데서 생긴다’며 힘을 돋워 줍니다.
프랑스에선 자율성, 창의성을 기르기 위해 중 고등 학생들에게 1년씩 안식년을 주자는 논의가 나올 정도니까요.
더 이상 20대를 쥐어짜는 경제성장이 불가능하다며 토건 경제가 무너질테니 희망을 갖자고 하십니다.
현실은 암담하여도 오늘 우석훈 선생님을 만난 것만으로도 용기가 솟아납니다.
무슨 이야기든 통계조사와 학술조사로 근거를 대는 무한한 학습력의 소유자, 자신을 그대로 드러내 보이는 당당한 자신감을 보았으니까요. 이제 더 이상 우석훈 선생님의 부스스한 새집머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대신 반짝이는 눈이 도드라집니다.
희망은 주변의 가식을 벗고 난 후, 벼려진 알맹이로 일궈질 테니까요.
[글 _ 정인숙, 민들레사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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