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아픈 사람은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열린 의사회>

정인숙 2009. 6. 2. 21:38

아픈 사람은 누구나 치료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열린 의사회>

“저는 엥흐진이라고 하고 8살입니다. 아빠, 엄마, 여동생과 함께 몽골에서 삽니다. 처음에 한국에서 의사 선생님들이 제 병을 고쳐주신다고 했을 때 너무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배고프고 추운 날이 많았지만, 제일 힘든 것은 (경직성 뇌성마비 때문에) 다른 애들처럼 자연스럽게 학교를 다니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애들한테 놀림당하고 같이 뛰어 가지도 못했기 때문입니다.

 

‘열린의사회’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수술과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쁩니다."

 

 

동대문 옆 충신동 ‘열린의사회’사무국 복도에 환자들이 진찰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다. 내과,

재활의학과, 치과 분야를 매월 첫째, 세째 일요일(오후 1시~5시)에 무료로 진료한다. 

 

 

‘열린의사회’는 1997년 의사 다섯 명과 자원봉사자 두 명이 순수한 봉사와 작은 사랑실천을 목표로 국내 외에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기 위해 설립한 단체이다.

 

초기에는 회사원이던 고병석(현 열린의사회 이사장)씨 사무실을 빌려 시작했지만, 현재 의료진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400여 명, 자원봉사자 300여 명, 후원회원 1000여 명이 활동하는 순수 민간의료봉사 단체로 성장했다.

 

1997년부터는 해외 무료진료 활동에도 발을 딛기 시작해, 지금까지 31회를 마쳤다.  몽골에서 가장 많이 무료 진료활동을 펼쳤고, 우즈베키스탄, 미얀마, 중국,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에티오피아, 필리핀 등을 방문하였다.

 

 

 

 

"치과진료 비싸요. 근데 여긴 무료에요."

 

오늘은 국내 무료진료사업을 하는 날이다. 간사들이 진료준비를 하느라 바삐 움직인다. 환자들은 차를 마시거나 환담을 나누며 기다리고,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은 웃으며 이들을 맞이한다.

 

 

 

 

 

“알타씨, 여기가 아프세요? 소변볼 때 불편하세요? 이쪽이 아프면 신장이 안 좋거든요. 다른 병원에서 정밀검사를 받으셔야 해요. 여기서는 검사가 안 되거든요. 정확한 병명이 나와야 약을 드릴 수 있어요.”

 

내과를 담당한 의사 이은주씨(강동구 보건소)는 "무조건 약을 달라고 할 때가 제일 난감하다"며 연이어 다른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했다.

 

“어르신, 여기 앉으세요. 어디가 불편하세요? 언제부터 아프세요? 보청기 없으세요? 기브스 큰거? 많이 아프실 땐 잠도 못 주무세요? 여기에 나란히 신경이 있는데 한쪽으로만 누워계시면 신경이 눌려 아파요. 너무 걱정 안하셔도 돼요. 파스 좀 드릴게요.”

 

재활의학과 의사 조상현씨(세브란스 병원)는 환자가 보청기를 끼고도 잘 듣지 못해 귀에 대고 설명한다.

 

“의료지원이 절실한 외국인 근로자분들이 많이 오시면 좋겠어요. 올해엔 주변에 거주하시는 내국인 분들이 많이 오시거든요. 거의 항상 이 지역 분들만 오시니 아쉽죠.”

 

치과에서는 한창 스켈링을 하고 있었다. 한 환자 당 30분은 족히 걸린다. 이가 썩었을 경우엔 아말감치료도 한다. 기기가 한 대뿐이라 의사 지원자가 많아도 받지 못하고 환자들도 많이 받지 못한다.

 

치과의사 허정선씨는 익숙한 손놀림으로 환자를 치료한다.

 

“6개월에 두 번 정도 (의료봉사를)나와요. 나오기 전에는 조금 귀찮고 쉬고 싶기도 한데, 막상 나오면 기분이 좋아지죠. 다만 진료활동 보조자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매번 다시 알려줘야 하니까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게 조금 안타깝죠. 치위생사와 일하면 좀 더 많은 환자를 볼 수 있을텐데... 외국인은 진료보험을 받을 수 없어서 몽골 분, 이란 분, 러시아 분들이 많이 오세요. 여기 치과는 외국인 환자만 받아요.”

 

 

                                 약사 윤필연(25,왼쪽)씨는 “오늘 처음 나와 설레인다”며

                                        “ 앞으로 꾸준히 해야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이란인 알리(35)씨는 2년 전에 한국에 와서 가구 유통업에 종사한다.  “6개월 째 이 치료를 받고

     있다”며 집이 신갈이라 멀어도 무료이고 친절하게 치료해주어 좋다”고 한다.  

 

밖에서 대기중인 몽골인 졸잘갈을 만났다. 그녀는 우석대 보건복지학과에 재학중이다. 울란바토르에서 1년 전에 왔다는데 한국말이 유창하고 한글도 아주 잘 쓴다. 이내 기자를 ‘이모’라 부르며 친근히 따르기 시작했다.

   

“치과 진료 비싸요. 여기서는 무료로 해주어서 서울에 올 때마다 들러요. 몽골 국립암센타에 근무하다 공부 더 하려고 왔어요. 오늘은 치과 들르고 방광도 좀 아파서...

이모, 내과 가면 될까요?”

 

 

열린의사회의 든든한 버팀목, 의료자원봉사자

 

5년 넘게 자원봉사자 총무를 맡고 있는 안명덕(55)씨는 시종일관 재미있는 이야기와 호탕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띄우며 열린의사회 전체 업무를 총괄하고 있다.

 

“한 번 진료에 자원봉사자 열 명 정도 필요해요. 보통 내국인 기초생활수급자가 스무 명 정도고 외국인은 몽골인, 러시아인이 많이 오죠. 한 땐 중국인들이 많이 왔었는데 요즘엔 불법취업자 단속 탓인지 보이지가 않네요.

 

치과진료를 지속하기가 제일 어렵고 약사님 수가 제일 부족하죠. 자원봉사자 지원자들은 많아요. 자원봉사 학생들이 착하고 성실해서 아주 예뻐요. 외국진료도 함께 다녀요. 몽골 헨티, 동고비, 에디오피아에도 함께 다녀왔어요.

 

진찰받을 수 있는 것도, 여기 와서 일하는 것도 큰 축복이지요. 서로가 기쁘잖아요." 

 

 

자원봉사자회 총무 안명옥씨(조끼착용)가 진료 절차를 설명하고 있다.

                      자원봉사자들은 정기 해외봉사에도 함께 참여해 진료를 돕거나 식사를 담당한다.

 

 

진료 준비하느라 분주하던 정명옥 간사가 세시쯤 되자, 잠시 숨을 돌린다.

 

“처음에 몽골을 의료봉사지로 정하고 활동을 시작했어요. 현지진료를 통해 한국에 온 몽골인들을 진료하게 되었고요.

 

주로 알음알음 전해져서 봉사자들과 환자들이 찾아오세요. 해외진료인 경우 약, 의료장비를 구비해야하기에 개인경비는 개인이 전액 부담해요.

 

해외진료를 다녀오면 '사는 것'이 긍정적으로 변해요. 인생철학이 바뀌는 큰 경험이랄까요.

 

1회성 진료를 피하려고 같은 장소로 매년 가고, 1년에 아이들 두 명을 한국에 데려와 수술하고 고쳐주고 있어요.

 

민들레울(은평구 증산동 중증 중복장애아동시설)에서 목욕봉사도 실시하는데 남자 분들이 많이 필요해요. 희망제작소 해피시니어분들이 많이 참가해주시면 좋겠어요.”

 

어느새 어둑하니 비바람이 일던 날씨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원활동가들 얼굴처럼 깨끗하고 투명해졌다. 다섯 시가 가까워오는데 아직도 치과 환자가 네 사람이나 남았다.

 

 

‘열린의사회’ 팀장 박인철씨(왼쪽)와 간사 정명옥, 임은혜씨

 

 

이곳에서 진료를 받은 외국인들은 잘 사는 한국 보다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아름다운 나라, 한국으로 기억하리라 여겨진다.

 

마지막으로 ‘열린 의사회’ 사람들은 어떤 소망을 품고 있는지 물어보았다.

 

"해외진료 때 치과진료를 많이 원하는데 장비준비가 어려워요. 워낙 고가이고 운반도 힘들고 …. 사람의 기술로 치료할 수 있는 것은 한계가 있잖아요.

 

국내진료도 장비가 좀 더 확보되어 완전한 진료가 이루어지길 바라지요. 엑스레이 찍는 장비와 치과기기 등…. 의료진은 훌륭해도 장비 문제가 있어 진료를 충분히 못하니까요.

 

해외진료 때마다 자금을 모으는데, 해외진료 규모가 커지니까 의료장비라든가 약품구입 등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제약회사가 대 줄 수 있는 양도 한정되어있어서요.

 

또 1회성 진료도 의미가 있지만, 현지에 의사가 상주하며 진찰하고 국내와 연결할 수 있는 작은 진료소를 차렸으면 합니다. 단기 진료가 아닌 장기 진료를 위해 필요합니다. "

 

 

(사)열린의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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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정인숙, 사진_황지은 / 해피리포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