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기

남, 북을 넘나드는 손길 - 이정희 공부방 교사, 한국JTS 자원활동가

정인숙 2010. 9. 13. 22:59

“우선, 화학 반응식을 쓸 때 제일 먼저 주의할 것이 뭘까?

 ‘반응할 때 원자의 수와 반응 후 원자의 수가 반드시 같아야한다’죠.

 원자의 개수를 확인하고, 분자식으로 써야 하고요. 염화나트륨….”

 

중학교 3학년 과학 시간이다.

이정희 선생님(58)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대답하는 학생들에게 화학 반응식을 설명한다.

여기는 학교? 학원? 아니다. 복지관 공부방이다.

 

 

 

  

 

 

이정희 선생님은 2003년부터 일산 문촌7사회복지관에서 공부방 선생님으로 일했다.

현직 교사였을 때나, 퇴직 후나, 늦은 저녁부터 밤까지 이곳에서 아이들과 함께 고락을 나눴다.

 

미래의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오늘은 오후 6시 반부터 1학년 수업, 8시부터 9시 반까지 3학년 수업이다.

1학년 수업에 여러 학생들이 나오지 않아 최 란제 사회복지사가 이리저리 전화 연결을 해본다.

생일잔치에 참석하느라, 깜박 잠이 들어서, 친구들과 노느라 아이들이 느지막이 들어섰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 아이들이 수업 대신 야단맞고 있다.

아이들은 결국 3학년 수업을 마치고 밤늦은 시간에 보충 수업을 받기로 하였다.

  

"우리 아이들이 이곳을 다녀도 그만, 결석해도 그만이라고 생각해요.

그저 시간 때우는 식으로요.

아이들이 결석이 잦아 교사들과 복지사들이 합의했어요.

‘세 번 이상 결석하면 못 나온다’고요. 그 뒤, 출석률이 좋아졌죠.

그래도 아이들이 의욕을 느끼지 못하면 힘 빠지죠.

 

생활이 어렵고 돌봄을 받지 못하니 행동이 거친 아이들이 많아요.

아이들을 붙잡아서 생활 습성도 다잡고 의욕적으로 미래의 꿈을 향해 나아가도록 도우려고 해요.

옛날에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실현되지만, 요즘엔 학업에 흥미를 느끼도록 이끌기도 힘들어요.

 

이 아이들 가정 사정을 들여다보면 가슴이 아프죠. 아버지는 술로 살고 엄마는 일하러 나가고… .

복지관에서 아이 통장에다 지원해줘도 아이들 아버지가 술로 탕진하는 경우가 많아요.”

 

사회가 양극화되고 자본이 최상의 가치로 부상하면서 좌절하는 사람도 많아졌다.

예전에 비해 먹을거리 걱정하는 일이 드물고 아무리 못살아도 핸드폰을 지니고 살아가도

온전한 가정을 이루기가 힘들고 상대적인 상실감도 예전에 비해 더해간다.

그 와중에 아이들은 부모에게서 아낌없이 사랑받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는 아이들과 함께 학교 생활을 해야 한다.

아이들의 상처가 어쩔까.

 

“한 아이는 할머니 손에 컸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친구 할머니에게 부탁하였어요.

이 할머니는 책임감으로 무섭게 다뤘고요.

이 아이가 할머니 앞에서는 잘하고 밖에 나가서는 문제 행동을 일으키는거에요. 불을 낸다든지….

복지관에도 중3을 마치지 못하고 그만두었어요.

할머니가 아이와 정서적으로 교감하고 조금만 더 보듬어주어야 하는데….”

 

아이들에 대한 애잔함으로 이선생님 눈시울이 붉어진다.

공부방과 함께 한 긴 세월. 중간에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는지 묻자 즉각 대답이 돌아온다.

 

“그만두고 싶은 생각은 없었어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게 아니라, 일주일에 한 번, 두 번 가니까요.

몸이 아파 쉴 때엔 아이들 생각이 많이 나고 미안하지요.

아이들이 공부에 목말라 해도 과학교사는 구하기가 어려워 수업을 받지 못하니까요.

자격증이 필요한 게 아니니까 일반인도 할 수 있고 퇴직교사, 현장 교사도 참여하면 좋을 거 같은데….”

 

 

 

 

 

내가 와서 쓰일 곳이 있어 좋다

 

아이들과 지내는 즐거움을 듣고 싶어졌다.

때론 속을 썩여도 우리 사회에서 순수함을 잃지 않은 세대이기에 말이다.

 

“스승의 날이라고 아이들이 직접 만든 작은 선물로 고마움을 표시하고,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으로 공연도 해요. 요즘 학교 현장에선 누릴 수 없기에 가슴이 뭉클해지죠.

수년 전에 다녔던 아이들이 길거리에서 달려와 반겨주면 정말 고맙지요.

어떤 아이는 과학을 더 심도 있게 배우고 싶대서 따로 가르쳤는데, 후에 케이블방송에 나와 복지관 선생님이 잘 가르쳐주어 흥미를 갖고 주도적으로 공부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자잘한 것들이 기쁘죠.

 

행동이 거친 아이들을 다독거리면서 지내다가 아이들이 변한 모습, 고마워하는 모습을 대하면 제가 더 감사하죠. 내가 와서 쓰일 곳이 있으니 제일 좋고요.”

 

이정희 선생님은 경제적 지원이 최우선인 아이들에게 힘이 미치지 못할 때 힘들고 괴로웠다고 전한다.

가정환경으로 좌절감이 깊어가는 아이들에게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환경과 지속적인 심리 상담의 손길을 제공하는 사회는 꿈속의 이야기일까.

 

어떤 사람들이 공부방 자원봉사를 할까. 최 란제 사회복지사가 공부방 선생님에 대해 들려준다.

 

“우리 아이들은 여건이 부족합니다.

메말라있는 아이들이 마음속으로 의지할 수 있고 정서적으로 교감을 나누면 좋겠어요.

단지 성적을 올린다기 보다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알려주고 포기하지 않도록 의욕도 살려주고 살아가는 방향을 잡아주는... 내면을 의지할 수있는 게 중요하거든요.

퇴직자 분들도 참여하실 수 있어요.

체력, 시간 여러모로 할애해야하니 항상 교사 수급이 힘들지요.

 

이정희 선생님은 학교 선생님이었고 사회복지 공부를 하셔서 그런지 아이들 바탕을 잘 알고  내면을 잘 읽어주세요.

어떤 땐 호랑이 선생님으로, 때론 친구 선생님으로 아이들을 돌봐주시니 감사하죠.

또, 주변 교사들도 끊임없이 소개해 주시고 ….

본인 스스로 할 거리를 찾으시고 제안도 하시니까 저희에겐 큰 힘입니다.”

 

이정희 선생님은 행설아회 사무국장으로 일한다.

지난 2월말 퇴직, 3월에 행설아 교육을 받고 사무국장 일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사무국장일이 궁금하여 묻자, 선생님은 큰 소리로 답한다.

 “행설아 선생님들, 죄송합니다!”

사연인즉, 요즘 국제구호단체인 '한국JTS'일이 다급하여 행설아회 일을 잠시 놓고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맡은 일은 열심히 할게요"라며 인사를 남긴다.

 

현지에서 자원활동가를 모아 나눠줍니다

 

JTS에 나가 일한 지 두 달 남짓이지만, 짧은 시간에 많은 것을 배웠다며 눈빛이 빛난다.

 

“사실 북한에 대해 부정적이었어요.

방송매체에서 도와주는 것에 대해 부정적으로 알리니까 그 영향이었나봐요.

여기와 일하면서 생각이 바뀌고 돕는 방식이 내가 원하는 방향과 일치하니 일 하나하나가 기쁨이죠.

 

JTS에선 알뜰하게 도와줘요.

예를 들면, 아이티에도 대표 혼자만 가는 식이죠.

인건비에 들어갈 돈으로 물건을 구입하고 현지에서 자원 활동가를 모아 나눠줍니다.

인건비도 줄이고 현지인들에게 자국인을 돕는다는 자긍심도 심어주는 거죠.

실지로 다른 단체에서 5억 들여 하는 일을 여기선 3억으로 그만큼 도와줍니다.

 

JTS는 ‘배고픈  사람은 먹어야합니다. 아이들은 제 때 배워야 합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 받아야 합니다’ 정신으로

어느 곳이든지 도우러갑니다.

일하는 사람이 다들 자원봉사자이기에 돕는다는 자체를 당연시하여 일체감도 있고요.

 

 

 

                                  ' 한국JTS'는 지난 8월 27일 임진각에서  밀가루 300톤을 북한으로  전달하였다. 사진제공/JTS

 

무조건 하자

 

저는 북한에 식품, 생필품을 보내는 일을 맡았어요.

겨울용품으로 담요, 방한복, 양말, 털신, 장갑, 내의 등을 보낼 예정으로 물품을 구입하는 일이에요.

JTS는 물품을 구걸하지 않아요.

최고 품질의 물품을 저가로 구입해서 보냅니다.

몇 번이나 깎고 또 깎고 … 최대한 교섭을 하지요.

 

책임이 무거워 걱정이다가도 ‘무조건 하자. 두려워하지 말고 부딪치면 길이 생긴다’는 법륜 스님 말씀에 용기를 얻고 무조건 부딪칩니다. 하하.”

 

남한의 아이들이 물건을 함부로 쓰는 것을 보면 그 물건을 귀중히 쓸 북한 아이들이 생각난다는 이정희 선생님. 이 쪽 아이들은 내가 눈으로 보고 만지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그 쪽은 물건만 보내고 만질 수 없기에 북한 아이들을 직접 가서 보고 싶다는 선생님의 소망이 이뤄질 날이 언제쯤 올까.

 

[글/사진 _ 정인숙 해피리포터]